터키 '에르도안 술탄시대' 돌입…법치 침해 우려

EU "쿠데타 후속조처 용납못할 수준…법치·인권·자유 존중하라"

터키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부에 사실상 초법적 권력을 부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에 돌입했다.

이에 국제사회는 터키가 비상사태 선포와 반대세력 대거 숙청의 명목으로 삼은 쿠데타 진압의 후속 조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며 법치 존중을 재차 촉구했다.

AP통신,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터키 의회는 21일(현지시간)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날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를 346대 115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의회의 입법을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칙령을 선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터키 의회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을 장악하고 있고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판검사 2천750명이 직위해제나 체포돼 입법·사법부 모두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터키 정부는 이날 국가비상사태가 유지되는 동안 유럽인권협약(ECHR)을 유예하기로 하고 이를 유럽평의회에 통보했다.

유럽인권협약은 보편적 인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조약으로 터키 등 유럽평의회에 속한 나라들이 준수 의무를 갖고 있지만, 협약 15조에 따라 전쟁 등 국가 존치를 위협하는 비상사태에서는 조약에 수반된 의무를 유예할 수 있다.

터키는 애초에 조약을 완전히 유예한다고 통보했다가 "국제적 의무와 충돌하지 않는 선"으로 제한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누만 쿠르툴무시 부총리는 비상사태선포가 쿠데타 가담자와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 추종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 일상생활은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상사태 선포 이틀째인 터키 정부는 쿠데타 진압 직후부터 체포·구금한 막대한 규모의 쿠데타 연루 용의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의 틀을 마련하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체포된 군인과 판·검사 등 9천여명 중 일부에 대해서는 구금 기간을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군에 새 피를 수혈하고 군 조직을 재구성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비상사태를 3개월에서 더 연장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해 고삐를 늦추지 않을 뜻을 천명했다.

이런 터키의 움직임에 인권과 법치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유럽평의회 대변인은 터키의 유예 통보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중요한 것은 터키가 평의회 사무총장에게 비상사태 동안 진행 상황을 계속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 성향의 현지 신문인 휴리예트의 잔 듄다르 편집장은 "(비상사태는) 법치와 자유가 유예되고 언론이 검열되며 의회가 제거된 억압적인 정권을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대표와 터키의 EU 가입문제를 담당하는 요하네스 한 집행위원도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터키의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쿠데타 진압 이후 교육계와 사법부, 언론에 가해진 조치들은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터키 당국에 법치와 인권, 자유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평화로운 시위, 사법권의 독립 등 헌법적 질서와 국제인권법을 존중하고 비상사태 하의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터키 당국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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