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을 버리면 어찌할 것인가?

[현안진단] 제재만으로 해결? 평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남중국해의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안보

북한은 4차례의 핵 실험으로 핵무기의 실전 배치가 가능한 실질적 핵 능력 국가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보다 이미 실전 배치한 사거리 300~1300킬로미터에 달하는 스커드 및 노동 미사일이다. 1000여 기에 달하는 이들 미사일 대부분에 남한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이미 우리는 북핵의 실질적 위협 아래 놓여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사거리 4000킬로미터 내외의 무수단 미사일이 최근 4차례나 발사에 실패한 데서 보듯이 북한이 단기적으로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단을 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strategic patience)은 사실상 북한의 핵 능력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 이면에는 아시아에서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국면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A2AD(Anti Access Area Denial)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A2AD 전략은 사실상 미 항모 전단이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선 내에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모토로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을 구체화 하고 있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미 해군 전력의 60%를 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대상은 중국이다. 미국은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양자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을 포위하는 '안보 그물망'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같은 미-중의 대전략이 일차적으로 충돌하는 곳이 남중국해이며, 동중국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남중국해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중요한 해상 보급로(Sea Lane)이며, 재배치될 미 해군력이 활동할 주요 공간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구상 추진의 핵심 공간이자 앞마당이며, 동중국해는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에 해당한다.

시사군도, 난사군도, 중사군도의 영토 분쟁을 중심으로 하는 남중국해의 갈등은 직접적인 관련국들뿐만 아니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판세를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열도(尖角列島) 역시 미-중 대립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으며, '전수 방위' 원칙을 수정한 일본의 안보법제의 궁극적 목표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군사 활동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의 분쟁 지역이 모두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되고, 중국이 이를 군사 기지화 할 경우 역내에서 미 항모 전단은 심각하게 제약을 받게 된다. 반대로 중국의 시도가 실패할 경우 중국은 아시아에 집중 재배치될 미국의 해군력에 의해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된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의 분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핵 문제에만 집중하는 사이 거대한 체스 게임이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역내 군사적 긴장의 파고를 높이고 있다. 여러 조사 결과들은 아시아에서 군사 분쟁이 일어날 1순위 지역이 남중국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6월 3일 싱가포르에서 개막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도 미-중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충돌했다.

마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는 탄도 미사일 요격 체제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 논의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과 맞물려 있다. 이는 한반도의 핵 문제가 한국의 안보라는 관점이 아니라 남중국해의 미-중간 패권 경쟁 여부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의 안보 전략 중점이 한반도에 있지 않고 남중국해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다.

도널드 트럼프 발언의 교훈

사드 레이더가 한국에 배치된다면 중국의 A2AD 전략의 움직임을 사전 탐지함으로써 미 항모는 자유로이 중국 주변 해역을 드나들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까지 나서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다.

사드는 탄도 미사일 방어에 도움이 되지만 완벽한 방어망을 제공하지 않는다. 한국에 배치 예정인 1개 포대의 사드 요격 미사일은 48발에 불과하며, 예비탄을 고려해도 1000여 기에 달하는 북한의 핵탄두 탑재 가능 탄도 미사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매달리는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방장관은 올해 6월 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이 강력히 반대하는 사드에 대해 '배치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한미 간에 이견이 없다고도 했다. 이미 미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미 대선 공화당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이 미군의 주둔비를 100% 부담해야 하며, 주한 미군 철수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일회성이 아니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 국민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오랫동안 미국은 한국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며, 한미 동맹을 혈맹으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왜 우리가 그 비용을 내느냐? 우리가 그들(동맹)을 방어해 주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트럼프의 인식은 미국이 한국에 방위력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음은 물론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취지이다. 트럼프는 한미 동맹은 영원한 혈맹이 아니며 이해관계가 맞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는 계약 관계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인정해 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도 미국이었으며, 빈약한 신생 한국군을 중무장한 북한의 군사력 앞에 방기한 것도 미국이었다. 1969년의 닉슨 독트린은 "향후 미국은 베트남 전쟁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할 것이며, 아시아 각국은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한 미군 철수를 거론한 미국의 유력 정치인은 트럼프만이 아니었다. 미군은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미국 국익에 따라 행동한다. 주한 미군 역시 미국의 국익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트럼프가 알려주는 평범한 상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애써 외면할 것인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국 주도의 북핵 해법

북한은 7차 당 대회를 통해 핵 보유국을 선언하고 기존의 핵 전략을 항구적 전략 노선으로 천명했다. 경제-핵 병진 노선은 사실상 '선 핵보유, 후 협상론'인 셈이다. 이란과 달리 핵을 체제 수호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이 순순히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기에 강력한 압박과 국제 공조는 북핵 문제의 해결에 유효한 수단이기는 하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유엔(UN) 차원에서 현재 수준 이상의 획기적인 대북 제재 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난제이다. 이미 현 상황에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독자적인 추가 제재에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간다와 쿠바 같은 북한의 우호국에 대한 협력 강화의 효과에 기대를 거는 것은 난센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중견국인 한국이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양국은 남중국해에서 필사적인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북핵의 가장 실질적이고도 직접적 위협 대상이라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미·중의 패권 경쟁 구도를 벗어나 북핵 문제의 해법 모색에 있어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수단은 남북 관계 이외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위기에 처한 북한의 체제 내구력으로부터 기반하며, 핵을 체제 생존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청와대(좌)/연합뉴스(우)

남북한 간 적대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구축될 경우 북한이 대북 제재를 감수하고 핵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한국 주도로 북한의 비핵화를 지향하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구상을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북한과 실질적인 관계 개선의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북한의 지속적 도발과 핵 개발이 남북 관계를 악화시킨 주요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일방적인 강력한 통일 드라이브를 전개한 현 정부의 전략과 협상력 부재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엄연히 상대를 전제로 한 통일 문제에 있어서 우리만의 일방적인 정책이 가져온 결과가 북핵 위기의 심화와 남북 관계의 전면교착이라는 점에 대해 엄중하게 성찰할 때다.

북한의 비핵화는 단기적으로 달성되기 어려운 과제라는 점에서 대화의 시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에 북핵 협상 구도의 기약 없는 장기화와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한 암묵적 동의 역시 용인될 수 없다. 남북 정상 회담은 위기로 치닫는 북핵 문제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고 남북한 간 적대 구도의 완화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붕괴나 흡수 통일이 아닌 공존형 점진적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비핵화와 병행하는 북미 간 평화 협정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북미 간 대립 심화가 한반도 긴장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가 실전 배치되는 상황은 모든 수단을 다해 방지해야 한다. 북핵의 실전 배치는 감당하기 어려운 안보 고비용 구조의 형성과 아울러 통일 환경에도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심화되는 북핵 위기 국면에서 임기 말로 접어든 현 정부가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시기는 올해 하반기밖에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올해 8.15 경축사를 통해 북핵 위기를 해소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한반도 신평화 구상'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핵 문제 및 한반도 평화 체제 형성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직 보국안민의 각오로 특단의 조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북 제재의 강화만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평면적 사고에서 벗어나 압박 국면에서도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의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새로운 남북 관계의 형성을 통해 북핵 해법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의 환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스라엘 동맹 체제에서 국면을 주도해 온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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