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성남시에 공공 병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시민들에게 특별한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많은 당사자의 노력과 실천 가운데서도 2003년 이후 구심점 노릇을 한 시민의 사회적 연대(특히 현재의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를 기억하려 한다. (☞관련 기사 : "말기 암 할아버지가 죽어서도 하겠다던 그것은…", 성남시의료원이 '진짜' 공공 병원 되려면)
성남시의료원이 건립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공공 병원이 늘어나는 것 그 자체에 뜻을 두고 싶다.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공공 병원의 수가 적고 역할이 빈약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새로 공공 의료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중요한 '실험'이다. 단 한 개가 늘어난다고 해도, 압도적 주류 경향을 거스르는 '사건'이라 불러야 한다. 다른 지방 정부가 자극을 받고 중앙 정부가 긴장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시민들이 만들어낸 공공 병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대 이후 '공공 의료 강화'는 시민과 소비자, 환자들의 공통된 요구였지만, 성남시의료원과 같은 구체적 성과는 드물다. 행정과 현실 정치, '그들'의 결정이 아니라 주민과 시민이 참여하고 실천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과 주민이 주도한 '민주주의' 확대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더디고 힘든 민주주의의 실천, 그중에서도 더 어려운 지역의 민주주의 실험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단언하지만, 우리는 성남시의료원의 설립과 그 경과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보편'으로 확대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든 복지든, 지역에서 더 넓고 깊게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와 삶을 만들기 위한 토대다. 성남시의료원 '이후'를 주목하는 이유다.
셋째, 새로운 공공 병원 모델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각별하다. (☞관련 기사 : 뭉툭하고 거친 손을 가진 외과의사, 성남으로 가다) 또 하나의 병원 노릇을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지역 보건, 시민 주치의 사업, 시민 참여 등을 시험할 것이라고 한다. 바라건대, 성남시의료원의 존립 근거가 되어야 마땅하다.
모든 공공 병원이 골머리를 앓는 것과 달리 건전 재정의 가능성이 큰 것도 기대를 걸 만하다. 공공 기능을 수행하느라 생기는 피할 수 없는 적자는 시 정부가 감당하겠다니, 그보다 더 '공공성'에 유리한 조건이 없다.
어느 공공 병원보다 좋은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성남시의료원만으로, 또는 성남시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체 보건의료 체계는 물론 정부 시스템과도 떨어질 수 없는 데다, '현실'과 '현장'의 한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성남시의료원에 대한 시민의 높은 기대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의료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숙고'의 과정에 참여했겠지만, 그래도 '좋은 병원'을 바라는 기대가 다른 것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반 시민이 이해하는 현실 병원은 결코 '순수형'이 아니다.
물론 성남시의료원은 좋은 병원이어야 하지만, 다른 병원과 꼭 같은 의미에서 (구매 대상으로서의) 좋은 병원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진료에 한정하더라도, 좋은 의료란 단지 비싼 장비와 첨단 기술, 내로라하는 '명의'와 같은 뜻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하지만 지금 보통의 병원(대학병원이나 '빅5'도 마찬가지다)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정말 좋은 병원으로 부를 수 있다. 우리 형편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진료, 예방과 건강 증진, 재활을 포함한 포괄적인 서비스, 다른 의원과 병원, 또는 보건소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병원, 복지 서비스와 연계하는 것 등.
시가 일부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재정 사정도 걱정스럽다. 지금 시스템에서 제대로 된 공공 병원, 공공성이 높은 병원이 재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특히 오랜 기간 큰 적자를 본다면? 운영의 효율성이 상대적 개념이라고 할 때, 그리고 공공 재정을 두고 다른 분야와 경쟁해야 한다면 어떤 공공 기관도 재정을 의식하는 것이 당연하다.
성남시의료원도 기본 재정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튼튼한 목표와 명확한 기준치를 잡아 놓지 않으면, 병원은 끊임없이 좀 더 많은 '수입'을 요구받을 것이다. 시민을 위한 공적 기능은 자칫 공허한 약속이 되고 현실의 요구가 매일의 병원 운영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진료는 익숙하고 다른 공공 기능은 새로 개발되어야 한다면, 그 약속을 믿고 누가 얼마나 공공 병원의 '완성'을 기다려 줄 것인가.
무엇이 새로운 모델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성남시의료원의 미래는 결국 의료원을 둘러싼 '시민적 토대'에 달렸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공공 병원다운 공공 병원이 목표라면, 시민이 이해하고 뒷받침하지 않으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요약하면, '민주적 공공성'에 기초한 시민 참여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공공 병원이 왜 다른 병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시민의 문제 제기, 또는 필요하면 내가 세금이라도 좀 더 내겠다는 시민의 자발성 같은 것. 시민이 시 정부와 의회, 의료원 일꾼들을 압박하고, 나아가 중앙 정부를 몰고 가야 한다.
성남시의료원을 만들어낸 시민들이 충분히, 그리고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는 줄로 믿지만, 우리의 노파심을 보태고 싶다. 지금까지보다 개원까지 남은 시간, 1년 반이라는 기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더 많고 더 깊은 시민 참여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특히 성남시의료원은 지금 '운동'에서 '제도'로 바뀌는 자리에 있다. 행정 체계와 관료제와 어떻게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때다. 어느 곳, 어느 때도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조금 늦고 혼란스럽더라도 새로운 공공 병원 모델, 시민 참여와 민주적 공공성을 (현실적) 한계까지 밀고 가기를 당부한다.
불필요한 첨언이기를 바라지만, 최근 갑자기 바뀐 조건 한 가지가 걱정스럽다. 돌출한 데다, 민주적 절차도 지키지 않은 지방 재정 '개악'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요하는 지방자치제의 본질도 같이 물어야 하는 이 조처가 현실이 되면, 성남시의료원의 건전 재정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핵심은 재정이 건전한 일부 지장자치단체의 멀쩡한 재정을 중앙 정부가 '빼앗는' 것이다. 중앙 정부의 지원이 없이도 재정 운영이 가능하던 경기도 6개시의 돈줄을 죄겠다는 것으로, 성남시도 당연히(!) 여기에 속한다. 내년에 6개시에서 빠져나갈 조정교부금은 5000억 원에 이르고, 내후년 법인지방세의 공동세 전환으로 삭감될 재원도 3000억 원이나 된다.
중앙 정부의 시도가 성남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실험'을 파괴할 목적은 아닐 것으로 믿고 싶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의심은 쉬 가시지 않는다. 성남시만 하더라도 의료원, 청년 배당, 공공 산후 조리원 등을 시행하거나 시도했으니, 중앙 정부의 조처를 이런 시각에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남시의료원이야말로 한국 지방자치제의 첫 꽃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필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역설적이지만 중앙 정부가 또 하나의 위험 요인이다. 성남이 시도한 공공 산후 조리원의 경과를 보라. (☞관련 기사 : 성남시 "복지부의 공공 산후 조리원 불수용은 복지 퇴보")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의 복지와 의료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지원해야 한다. 국가 수준의 조정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가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도 성남시의료원이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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