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가습기 연쇄 살인을 못 막았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⑦] 미나마타 60주년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돈은 한 푼도 필요 없어. 그 대신 회사의 잘난 사람들, 위에서부터 줄줄이 수은모액(水銀母液)을 마시라고 해. 위에서부터 차례로. 42명이 죽을 때까지. 그 부인들도 마시라고 해. 태아성 미나마타 환자가 태어나게. 그리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69명, 미나마타병에 걸리라고 해. 그리고 또 100명 정도 잠재 환자가 돼보라고 해. 그거면 충분하니까!" (<슬픈 미나마타>, 292쪽)

이것은 이미 죽은 자의 영혼 혹은 생령(生靈)의 원한 맺힌 말이라고 <슬픈 미나마타(苦海淨土)>(김경인 옮김, 달팽이 펴냄)의 저자 이시무레 미치코는 말한다. 미나마타병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사람과 결코 나을 수 없는 병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내뱉은 말들이다.

올해 5월은 일본 최대의 공해병이자 유기수은 중독증인 미나마타병이 발생한 지 60년이 된다. 회사와 보상 교섭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시민들은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몹쓸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취급하며 박해와 무시를 하는 가운데 나날이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자 피해자들은 이 같은 분노를 터트렸다.

60년의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최대의 원흉인 옥시레킷벤키저는 피해자들에 대해 오랫동안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 피해 배상 소송을 건 피해자들을 살균제가 원인이 아니라 세균이나 황사 등 다른 원인이라고 압박하면서 화해를 유도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을 주며 무마하려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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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간부와 김앤장 변호사들 감방에 넣어 가습기 살균제 틀어줘야"

가족을 잃은 지 5~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지옥 같은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이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恨)을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피부로 느낀 시민들도 미나마타병 환자 못지않은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옥시 대표는 물론이고 왜곡된 보고서를 낸 서울대 교수, 살인 기업을 뒤에서 교묘하게 옹호해온 김앤장 변호사들 모두 좁은 감방에 처넣은 뒤 매일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넣은 가습기를 하루 종일, 1년 내내 틀어주는 벌을 주어야 해. 그냥 감옥살이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가습기 살균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옥시와 옥시를 변호하는 일당들에게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다면 스스로 가습기 살균제를 계속 들이마시겠다고 자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만들거나 안전하다고 주장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중증 폐 손상을 입고 죽거나 폐 이식을 받아야 될 정도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들이 저지른 죗값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나마타병은 임신부가 유기수은에 오염된 생선 따위를 먹을 경우 태아에까지 유기수은이 전이돼 심각한 질병으로 나타나는 태아성 미나마타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4년 전 작고한 하라다 마사즈미 구마모토 의과대학 교수가 밝혀낸 것이다. 하라다 교수가 이를 밝혀낸 배경에는 태아성 미나마타병 아기를 낳은 환자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반이 원인 미상 중증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혀낸 결정적 계기도 이와 비슷하다. 피해자 가족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것 같다며 사용하다 남은 살균제 통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에게 일찍이 주었고 이를 서울대 교수가 나중에 환경성 요인이 의심된다고 역학조사반이 밝히자 조사반에 이런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미나마타병 환자 첫 진단 의사 즉각 보건소 신고, 한국 의사는 어물쩍

▲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달팽이 펴냄). ⓒ달팽이
1956년 4월 21일 신일본질소공장의 병원에서 걷거나 말하기 힘들어하며 경련 증상을 호소하는 다섯 살 11개월과 두 살 11개월 된 자매가 잇따라 방문해 진찰을 받으면서 미나마타병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의사는 다른 집에도 이와 비슷한 어린이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지역 보건소에 원인불명의 중추 신경 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1956년 5월 1일이었다. 만약 이 의사가 어린이 환자들을 진찰한 뒤 내버려두었다면 상당 기간 병 발견이 늦어졌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는 이런 의사가 없었다. 2000대 초반부터 환자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고 2006년에는 집단 발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기와 어린이 사이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런 폐 질환이 유행해 병원을 찾았음에도 이를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에 질병의 원인을 밝혀줄 역학조사 신고를 하지 않았다.

50년 전(2006년 기점)의 일본 한 작은 병원 의사보다 50년 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병원 의사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감염병에 집착하지 않고 또 이를 몇몇 병원 의사들이 아니라 대규모 역학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나마타병은 미나마타 시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질병의 원인이 유기수은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사이에 1965년 니가타 현 나가노 강 유역에서도 690명의 대규모 집단 유기수은 중독 환자가 발생했다. 그 뒤 3년이 지난 1968년에서야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유기수은 중독 때문임을 공식 인정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연구 위한 국가, 사회적 기관 세워야

우리 사회는 아직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일본은 미나마타병과 관련해 국가 책임을 분명히 물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12월 처음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나서도, 2009년 7월 8일에야 미나마타병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미나마타병 피해자를 빠짐없이 구제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사건이 모두 마무리된 뒤 국립미나마타병연구소를 미나마타 시에 세워 수은 중독에 대한 연구와 미나마타병 환자의 만성 장해 연구와 함께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저개발 또는 개발도상국에 제2의 미나마타병이 생기지 않도록 매년 관련 심포지엄을 여는 등 교류협력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일어난 바이오사이드 집단 사망 사건인 만큼 피해자 배상이나 치료, 관리 등에만 머물지 말고 국립미나마타병연구소와 유사한 국가 기관 또는 공익적 사회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60주년을 맞이한 일본의 미나마타 비극에서 진정으로 교훈을 얻는 길이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2011년부터 피해자 실태와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한 수십 편의 글을 6년째 기고해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 총괄편집인을 맡았으며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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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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