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떻게 떠날/보낼 것인가?

[의료와 사회] 죽음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대의료와 죽음에 관한 책에 대한 서평을 의뢰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홀로되신 시어머님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관련 서적이 많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현대 의료체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와 렌던 라일리의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를 소개하기로 한다.

1.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 아툴 가완디

이 책은 의사인 저자가 환자들과 부모, 친지들의 죽음을 함께 겪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 저자는 의사로서의 교육 과정에서 전혀 배우지 못했던 '나이 들어가는 법,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관해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회피하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점차 대안을 찾아 다양한 기관들을 찾아다니고, 가까운 지인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배워간다. 저자는 의사이지만, 이 책에서 저자의 직업은 죽음을 보다 자주, 가까이서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의 의미만 있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독자들도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저자와 동일한 시선으로 좇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부키
현대의학의 발달은 눈부신 성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전문성을 위해 포괄성 내지는 지속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포기해야 했다. 또한 의사들의 교육 과정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집중한 나머지 '그럼에도 생명이 다해갈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또한 환자들을 살릴 지식과 수기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받는 젊은 의사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망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조차 마지막 순간까지 기관삽관,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등을 필사적으로 시행하고는 한다.

저자와 함께 독자들은 기력이 쇠하고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실제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환자의 가족들이 재정적, 정서적으로 고통 받는 모습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한 가정의 자녀의 수가 감소하고, 대가족제도가 사라지는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대신해서 생겨난 요양기관들은 수용과 사고 예방을 중시하기에, 수용된 이들은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생활하게 된다.

"그들은 루 할아버지가 삶에서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곳에 옴으로써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그런 방면에서 자신들이 무지함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중략) 다시 말해 그들은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와 기쁨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관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다. '어시스트 리빙' 시설, '노인을 위한 생활지원 주택' 등 실험적인 단지들이나, 요양원에 동물과 식물 등의 생명체를 들여오는 실험을 한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의 사례, 스스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집에서 생활하며 각종 서비스를 지원받는 '비콘 힐 빌리지'의 사례 등이 그것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삶의 목표와 동기가 변한다는 것)이나 조시아 로이스의 '충성심의 철학'(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자신을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해석하는 경향),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설명한다.

"(생략)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기술에 의존한 의학적 처치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죽음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환자 본인도, 가족도, 의사도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용기를 내는 시기가 너무 늦으면 마지막 남은 시간과 선택에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브레이크포인트 대화(breakpoint discussion)'이다. 저자는 중요한 질문들을 놓고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솔직하게 대화할 것을 권한다. 대화의 주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상태를 설명할 것


병이 심해져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에 관해 물을 것
(예: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


현재 직면한 주된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아볼 것 (예: 통증, 구토, 재정적인 문제)


현재 이루고 싶은 목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예: 친구 결혼식 참석, 고향방문)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환자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예: 수술, 심폐소생술, 기관지 삽관 여부)


죽음 이후의 정리 (예: 유언, 장례식장)

사실 이런 질문을 먼저 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환자는 충격에 빠지고, 가족들로부터는 원성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를 이해하고 환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신뢰를 바탕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 같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된 후에도 환자가 원했던 방식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자가 '열악하다'고 표현한 그런 요양시설조차 부족한 현실이고, 실험적으로 시도된 시설들이 몇 년 지나서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종종 듣기도 한다.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지 않는 그런 제도, 나 자신이 실제로 이용할 그런 시설을 만들어갈 고민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이런 접근을 하는 기관들이 기존의 기관들을 이용할 때보다 전체 의료비 및 비용 지출은 더 감소하였으면서도 거주자의 수명은 더 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 존엄성의 존중이라는 기준을 근거로 해서는 움직이지 않을 여러 주체들도 비용절감이라는 당근에는 반응을 하지 않을까.

2.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 - 렌던 라일리

▲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One Doctor)>(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환자와 그 가족의 시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면, 렌던 라일리의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는 의사의 시각으로 현대의료의 현실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1인칭 화자인 저자의 시야에 비치는 병원 속의 만화경이 펼쳐진다.

이 가운데 저자는 의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 – 질병의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지, 혹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재하는지 –에 의해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주로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자들이 품위 있게 죽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의 틀이나 시설을 소개한 앞의 책과는 달리, 의학 기술의 사용, 의사의 역할과 사고방식, 의료비 지출을 제어하고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의사결정을 누가 하는지 등 의료 체계 안의 여러 주체의 역학관계를 조명하는 것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런 묵직한 주제보다는 현란한 의학적 결정 과정의 묘사에 지면을 지나치게 많이 할애한 나머지 저자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에 보다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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