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250명, 미운 사람 데리고 절벽서 뛰어내리면…"

[세월호 2주기, 다시 기억 ③] '세월호 인양 감시' 동거차도 1박2일 르포 下

동네 슈퍼마켓에서 생수 몇 병이라도 사갈 생각이었는데, 오산이었다. 서른 가구 남짓 사는 동거차도에는 변변한 가게 하나, 음식점 하나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도 별 도리가 없다. 뭍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와야 한다. 동거차도에 오는 유가족들은 일주일 치 음식과 여벌 옷 등이 든 박스를 지게에 이고 지고 산꼭대기까지 나른다. 맨몸으로 쉬엄쉬엄 오르기도 녹록지 않은 산비탈 길을, 윤민 아빠 또한 몇 번이고 다녔다.

마을에서 쌀과 채소를 씻은 뒤 산 꼭대기 천막으로 향하는 길, 중턱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윤민 아빠가 말했다.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니까? 여기 오면 등산해야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도보 순례해야지, 안 그래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동거차도 텐트까지 생필품을 나르는 지게. ⓒ프레시안(최형락)

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바람이 몸을 덮쳤다. 똑바로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헐렁한 천막이 철골을 때리는 소리도 요란했다. 이렇게 심한 바람은 처음이라며 윤민 아빠도 혀를 내둘렀다.

"오늘은 작업도 글렀응게 맛있는 물이나 마시쥬."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소연 아빠가 '맛있는 물'을 찾았다. 술이었다.

"오케이, 안주는 좀만 기다려요."

윤민 아빠는 공식 '셰프'였다. 밥 안치고 채소 다듬는 손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뚝딱뚝딱 칼질 몇 번에 샤브샤브 재료가 차려졌다. 뜻밖의 호사였다.

"운 좋은 줄 알아요. 다른 반 아저씨들 만났으면 스팸에 햇반, 컵라면이 끝이야. 그런데 몇 번 그렇게 해보니까 안 되겠더라고. 잘 먹어야지 이 짓(감시)도 하겠더라고."

식탁 대용 종이박스를 넓게 깔고, 가스 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 보글보글 육수가 끓자, 아빠들은 아낌없이 쇠고기를 투하했다. 섬을 나가려면 아직 나흘이나 더 남았는데 이렇게 다 써도 되냐 물으니, 오늘 내로 먹어치워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꽁꽁 언 식재료라도 아이스박스에 있으면 3일이면 다 녹는다는 것이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인양 작업 중인 바지선. ⓒ프레시안(최형락)

"나한텐 친구고 애인이었던 소연이를 잃었으니…"

만찬에 술까지 곁들이니 아빠들 얼굴이 불콰해졌다. 고기 몇 첨을 후루룩 넘기던 소연 아빠가 비어있는 취재진의 밥그릇을 보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기자 선생님은 왜 이렇게 안 먹는대유? 우리 소연이는 고기 엄청 좋아해서 겁나게 많이 먹었어유. 밥도 두 공기씩 먹었어. 자다가도 '고기, 고기' 했다니께. 그래서 내가 겁나게 사줬구먼유. 나는 우리 소연이한테는 한 개도 안 아까웠시유. 만날 옷도 이쁜 놈, 다른 놈 입힐라고 겁나게 사줬구만유. 나한테는 우리 소연이밖에 없었당게요."

"에이그. 우리 형님 또 소연이 얘기 시작하셨네."

웃으며 소연 아빠를 타박하던 예슬 아빠의 눈에 어느새 안타까운 빛이 돌았다.

"형님이 4살 때부터 소연이를 혼자 키웠거든. 그러니 얼마나 더 힘들었겠어. 아주 알아주는 딸 바보라니까."


윤민이네는 세 자매, 예슬이네는 두 자매, 그리고 소연이네는 소연이 혼자였다.

"엄마도 없고, 형제도 없어서 소연이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워낙 우리 소연이를 좋아하니께, 우리 소연이도 그걸 알아서 나한테 참 잘해줬어유. 내가 재혼할라고 하니까 울 정도였으니까. 나한텐 친구고 애인이었지. 그런 애를 잃었으니, 내가 죽고 싶지 않았겠어유? 술 없었으면 나는 진즉에 죽었시유."

소연 아빠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예슬 아빠가 다독이며 말했다.

"형님, 근데 하늘에서 소연이가 형님 재혼하는 거 지금도 반대할까? 아닐거야, 아마."

▲밤이 되면 바지선은 노란 불빛을 낸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 유가족, 착한 게 아니라 참는 겁니다"

예슬이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워낙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던 예슬이. 그러나 예슬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예슬 아빠가 눈을 감고 입술을 감쳐 물었다. 무언의 신호였다. 더는 묻지 않았다.

이게 딸 아이의 부재를 견디는 아빠들 각자의 방식이었다. 소연 아빠는 술 한잔에 생전 소연이 이야기를 하나 두 개 꺼내 놓는 것으로, 예슬 아빠는 가슴에 묻어두는 것으로, 다들 그렇게 아직도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었다.

▲예슬 아빠 박종범 씨.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쩜 그렇게 잘 버티냐고, 착하냐고들 하죠? 우린요. 정말 그냥 참고 있는 거예요. 미치겠는데, 나 하나 잘못된 행동 하면 가족들한테 다 피해가 가니까, 참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예슬 아빠가 입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윤민 아버지도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 다 삶에 미련 없는 사람들이에요. 단원고 부모 250명, 못된 사람 미운 사람 한 명씩 데리고 여기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있어. 언젠간 폭발하면 그렇게 되리라고 봐요. 그런데 기다리는 거야. 왜? 우리가 풀어야 할 일을 우리 자식 세대한테 넘기기 싫거든.

윤민이 언니 윤아가 그래요. '엄마 아빠들이 진상규명 못 해도, 나중에 우리 세대가 풀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요'라고. 그런데 나는 싫어요.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고통 넘겨주고 싶지 않거든."

▲어둠이 내려앉은 동거차도 천막. ⓒ프레시안(최형락)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하는 예슬 아빠와 소연 아빠. ⓒ프레시안(최형락)

"우리 얘기 딱 10%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천막 밖으로 나오니, 지게며, 의자며 바람에 나동그라진 지 오래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데다 안개가 껴 바다인지 산인지조차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몽롱한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정통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야 했다. 낮은 포복으로 침낭이 있는 막사까지 갔다. 아직 막사 두 동의 불이 환했다.

"왜 두 군데 다 불을 안 끄는지 알겠어요?"

예슬 아빠가 질문을 던졌다. 무섭기 때문일까? 속으로만 대답했다.

"전시 효과예요. 바지선에서도 우리를 보라고. 이렇게 환히 불을 켜두고 너희를 감시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지."

혹시라도 새벽 작업이 있을까 봐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그러나 제대로 잠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천막이 퍼덕거리는 소음이 새벽 내 귀를 때렸다.

▲권영빈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과 함께 절벽 아래로 내려가 바다를 바라보는 동수 아빠 정성욱 씨. ⓒ프레시안(최형락)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맞은 다음 날 아침, 아빠들이 손님맞이에 분주해졌다. 세월호 특조위의 방문이 예정된 탓이었다. 4.16 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인 동수 아빠 정성욱 씨와 진상규명분과장 준형 아빠 장훈 씨도 특조위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특조위는 이날 오전 바지선에 올라 상하이샐비지 측의 인양 작업 과정을 지켜 볼 계획이었으나, 풍랑으로 인해 무산됐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2주기를 맞아 바지선에서 직접 인양 상황을 파악하고 국민과 공유하려고 했는데 안타깝다"며 "재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특조위 일행과 함께 이곳을 떠날 시간. "식사값 안 내고 벌써 가느냐"며 윤민 아빠가 첫 인사 때처럼 개구쟁이같은 웃음을 띠었다.

"식사값, 다른 거 없어요. 딱 10%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 10%만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어. 그거면 우린 더 바랄 게 없어."

바람은 여전히 광폭하게 휘몰아치고, 바다 또한 일렁이고 있었다. 진실은 저기 어디쯤에 있는 걸까. 모든 진실의 10%만이라도 알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2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세월호 2주기, 다시 기억>

(1) "세월호 수업, 듣고 싶은데 왜 막나요?"

(2) "세월호 2년, 왜 아직도 살려달라 외쳐야 하죠?"

(3) 딸과의 거리 1.5km…벼랑 끝에 사는 아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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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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