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안 되는 진짜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출판의 미래>

출판 시장의 불황이 이어지고 전자 출판이 세계 출판계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종이책 중심의 출판계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디지털 경제의 확산과 모바일 라이프의 대중화는 출판 시장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출판을 통해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영상, 음원,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 시간 점유율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플랫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전통적인 출판 생태계는 독자의 이탈과 분산으로 인해 변화의 소용돌이에 접어들었다. 기존의 사업과 조직 구조에서 매출과 이익의 감소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무엇보다 출판사의 생존과 성장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서점 중심의 출판 유통과 마케팅도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출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필요하다. 선언적인 구호나 단기적인 정책이 아닌 현장에 뿌리를 둔 전문가의 통찰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시점에서 세계 출판 시장의 빠른 변화를 직시하고 한국 출판계의 담론을 제언하는 책, <출판의 미래>(장은수 지음, 오르트 펴냄)가 나왔다.

스스로를 '읽기 중독자'로 소개하는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는 오랫동안 민음사에서 굵직한 출판 기획과 편집 분야를 주도하면서 대표까지 역임한 출판 평론가다. 국내외 문학과 인문학 분야 등 각계 전문가들의 책을 만들었지만, 이번에 본인의 이름으로 낸 첫 번째 책이 <출판의 미래>다.

▲ <출판의 미래>(장은수 지음, 오르트 펴냄). ⓒ오르트
그는 디지털의 거대한 파도가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세계 출판계의 현장에 주목했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참관 및 세계 출판계의 중요한 변화 사례와 전문 자료 분석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외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출판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키워드를 ① 생태계, ② 전략, ③ 저자와 독자, ④ 마케팅, ⑤ 제작, ⑥ 조직 관점에서 풀어간다.

책에서 저자는 출판 시장의 변화를 독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출판 콘텐츠를 하나의 '지식'으로 정의하면, 책을 읽는 사람은 '지식을 찾는 사람'으로 봐야한다. 출판 산업의 중심이 저자에서 독자로, 독자에서 지식 이용자로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 기업은 유통을 지배하면서 이제 콘텐츠 제작으로 진출하고 있다. 빅(Big) 5로 불리는 대형 출판사도 몸집을 불리면서 유통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야말로 '슈퍼 자이언트(Super Giant)'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독자를 중심에 둔 출판은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 요인이 되었다. 모바일 서비스 환경의 급성장으로 인해 독자들은 무수한 지식 정보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기존의 콘텐츠는 분해와 결합을 통해 가치가 재탄생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오늘날 저자가 생산한 정보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조각난 형태로 소비된다. 페이스북에서 독자들의 인용을 통해서 주로 소비되는 구절들을 생각해보라. 구절은 책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콘텐츠이며, 소비이면서 동시에 연결과 공유를 통해 책 전체의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홍보 콘텐츠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조각난 형태로 제공되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책은 지배적 미디어 도구인 화면에서 소비되기 쉽도록 잘게 분할한 후 메타 데이터를 입힌 채 지식이나 정보의 형태로 흔히 소비된다. 종이책이라는 컨테이너에 담긴 번들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콘텐츠만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형태로 소비되는 것이다. (34쪽)

독자에게 최적화된 형태로 그들이 원하는 시점에 가려줄 수 있는 편집과 서비스 역량이 출판계에 필요하다. "우리가 잘 만들면 알아서 잘 사겠지?"라는 식의 출판 기획과 마케팅이 통하는 시대는 쇠퇴하고 있다. 지식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의 취향을 맞춰주는 서비스 모델과 플랫폼의 인기가 높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편집의 귀환'은 출판 기획에서 말하는 편집의 범위를 넘어선 큐레이팅(curating)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 말하는 큐레이션은 책 제작과 유통을 연결한 사업 구조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곧 책의 발견성(discoverability)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출판사와 서점이 중심이 된 출판 마케팅에 독자들은 식상해하고 있다.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지식 욕구를 채우려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필연이든 우연이든 독자의 생활 속에서 책이 노출되고 발견되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는 다른 미디어 콘텐츠에 비해 무겁고 느린 편인 책이 극복해야할 중요한 과제다.

오늘날 대다수 출판사들은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충분히' 알릴 수 없다. 발견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일단 독자 눈앞에 책을 노출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오늘날 출판 산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전 세계에서 이를 해결하려고 크고 작은 아이디어들이 해마다 쏟아지는 중이다. (51쪽)

전통적으로 출판 마케팅 현장을 주도하는 것은 출판사와 서점이었다. 저자(작가)는 원고를 작성하는 역할에 집중하면서 직접적인 마케팅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성장으로 저자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편리해졌다. 저자와 독자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출판 마케팅을 기존과 다른 판(板)과 성과를 만든다. 출판사와 저자와의 관계는 한 배를 타고가는 공동 운명체와 같다. 이러한 관계를 발전적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전략 수립은 출판사의 몫이다.

최근 전 세계 출판 산업에서 가장 크게 늘어난 것이 저자의 마케팅 활동이다. 한국에서도 저자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이 대단히 활발해졌다. 도서관 강의, 북 콘서트, 사인회 등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일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활동을 비롯해 각종 사인회나 강연회까지 마케팅 관련 활동이 저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96쪽)

책에서 저자는 출판 사업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현재 출판계는 독자들의 심각한 이탈 현상에 대한 원인을 콘텐츠의 문제로만 분석한 측면이 많다. 이제 '무엇을 판다'는 것을 '상품 그 자체'로만 보지 말고, 그 상품을 '구입하고 이용하는 가치' 측면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읽기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출판 사업의 목적(目的) 변화를 이끌어낸다.

읽기를 파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들에게 '읽는 습관(Reading Habit)'을 들이는 일이다. 오늘날 출판사들은 고객들이 더 편리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종이든, 화면이든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어떠한 기기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할 때 독자들은 더 많은 책을 소비한다. (108쪽)

디지털 기반의 모든 산업은 데이터(data)를 통해 이용자들이 남긴 모든 흔적을 모으고 활용하고 있다. 기존의 인구 통계학적 데이터 분석은 결과에 대한 후순위적 평가라는 측면이 강하다. 최근 빅 데이터(big data)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데이터의 중요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이용자와 보다 밀접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출판사도 직접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산정하고 수집해야 한다.

출판사는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빅 데이터를 수집할 수는 없지만 스몰 데이터, 출판사가 필요한 만큼의 독자 데이터는 수집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 데이터를 비롯해서 타깃 그룹별로 행동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기획에서 마케팅에 이르는 전 프로세스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144쪽)

스낵 컬처(Snack culture)와 MCN(Multi Channel Network) 등 독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플랫폼도 급변하고 있다. 다시 보기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서 콘텐츠를 이용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종이책도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의 이용 환경에 맞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POD(Print on demand), 챕터별 판매, 북러닝(book learning) 등 플랫폼 대응력을 높이는 출판사에게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디지털 출판 프로세스에 유연성(flexibility)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점은 여전히 종이책을 소비하는 중심 공간으로 남겠지만, 전체 콘텐츠 소비 총량에서 서점 공간을 통한 콘텐츠 소비는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또 책 형태를 통한 콘텐츠 소비 역시 시간 점유율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출판은 현재 존재하거나 미래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콘텐츠 플랫폼에 대응할 줄 알아야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 (158쪽)

저자는 출판사의 약점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을 제기한다. '슈퍼 자이언트'처럼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자본의 부족하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콘텐츠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마케팅 방법론에 관심이 덜한 편이다.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콘텐츠'에 투자를 집중한다. 물론, 틀린 의미는 아니지만 대중 독자와 플랫폼의 움직임과는 방향과 속도에서 차이가 있다.

출판사가 내부에 디지털 기술 역량을 갖추고 이를 사업화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디지털 혁신 부서의 절대적 독립성과 강력한 사업 추진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출판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실패할지라도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는 시도하는 자의 편"이라는 팀 오라일리의 말처럼 디지털 미래를 믿고 흔들리지 않으며 비전을 현실로 바꾸어가는 굳은 의지와 추진력,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규모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177쪽)

저자는 출판 시장의 위축 현상을 인정하지만, 책 세상 그 자체는 충분히 혁신적임을 강조한다. 출판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여전히 출판계는 새로운 필자들이 등장하고, 편집에서 디자인에 이르는 제작 기술은 효율성을 더하고 있다. 현재 출판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은 저자와 독자가 만나고, 책과 독자가 맺어지는 세계의 속도를 출판 산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출판의 미래>를 관통하는 가장 큰 명제(命題)다. 저자는 책의 본원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를 현실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본원적 가치는 저자와 출판사에서 주도하지만 산업적 가치는 독자가 결정한다. 출판 산업의 혁신을 주장할 때 독자의 가치를 늘리지 못한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콘텐츠 소비 구조가 모든 연결되면서 정보를 주고받는 초연결 사회(超連結社會)에 있기 때문이다. '연결이 지배하는 사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전략적 실행은 출판사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미래의 출판을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든 10가지 키워드(슈퍼 자이언트의 시대, 편집의 귀환, 세계화 2.0, 저자의 소출판사화, 읽기 습관, 가용성, 팬덤, 데이터, 유연성, 제휴)를 토대로 '출판사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소출판사를 위한 몇 가지 제언'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네 가지 주요 경로'라는 저자의 혜안을 책의 말미에 보강했다. 오늘도 출판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출판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은 '재미있는' 출판 사업을 위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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