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치 뇌관 건드린 '파나마 페이퍼스'

[강준영의 차이나 브리핑] 시진핑 정국 운영의 새로운 부담

세계 최대의 법률 사무소로 꼽히는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에서 유출된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조세 회피 문건 때문에 세계적 유명 인사와 각국 주요 지도자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이슬란드 총리는 자국 내 반발이 거세지자 전격 사임했고 대만의 새로운 총통 당선자 차이잉원(蔡英文)의 오빠도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 문서에는 중국의 전, 현직 주요 인사들의 친인척도 포함돼있어 거국적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는 시진핑 지도부의 정국 운영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 조세 피난처인 파나마는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경제 활동에 대해서만 과세를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사업 주체는 제3국에 있으나 소재지는 파나마로 등록된 소위 역외 페이퍼 컴퍼니(유령 회사)에 조세 피난과 재산 은닉을 위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한다.

자산의 소유 관계를 불명확하게 만들고 금융 투명성을 흐리는 주범이라는 국제 사회의 눈총 속에서도 파나마는 이러한 조세 환경을 이용하여 상당한 금융 자본을 끌어들여 자국 경제 발전의 초석으로 삼고 있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국의 일부 권력자들과 재벌들에게도 파나마는 해외 진출, 불법 재산의 형성과 은닉, 탈세 등에 이상적 환경을 제공하는 채널로 잘 알려져 있음은 불문가지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연루된 중국 전, 현직 권력자들

무려 1150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파나마 페이퍼스에 의하면, 적어도 8명의 전 현직 중국 공산당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의 가족이 연루돼 있다고 한다. 지난 2014년 9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진핑,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펑(李鹏), 덩샤오핑(邓小平) 등 전, 현직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친인척이 조세 피난처에 유령 회사를 만들어 운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중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음모라고 강력히 비난했지만 이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중국의 전, 현직 권력자 일가 중에 현직으로는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의 매형 덩즈구이(鄧子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당의 선전 업무와 이데올로기를 담당하는 류윈산(劉雲山)의 가족,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국무원 부총리인 장가오리(張高麗) 가족의 이름이 올라 있다.

전직 주요 인사로는 전 국무원 총리 리펑의 장녀로 중국의 '전력 여왕'으로 불렸던 리샤오린(李小琳), 전 정치협상회의 주석 자칭린(賈慶林)의 외손녀 리쯔단(李紫丹), 전 정치국원 보시라이(薄熙來)의 전처 구카이라이(谷開來) 등이 역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재산을 은닉하고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 중국에서는 해외 기업 설립을 통한 경영과 투자가 모두 불법은 아니며 합법적인 용도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공산당 당규에 당 관료는 권력을 통한 이익을 도모할 수 없으며 친척들도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이익을 편취할 수 없다는 명확한 규정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을 통치하는 유일 정당인 중국 공산당의 일부 주요 간부와 정부의 권력자들은 개혁 개방 추진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돕는 '관다오(官倒)'라는 경제 브로커를 자임하기도 했으며, 이들의 2, 3세 자녀들을 일컫는 태자당(太子黨)의 일부도 부모들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거대 국영 기업과 민영화된 기업들의 대주주가 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 고위 권력자들 중 재산 축적이나 친인척, 특히 자녀들의 재산 형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현상이 현실 정치 참여가 제한적인 일반 국민들의 원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2년, 공산당 제18차 당 대회를 통해 중국의 최고 권력으로 등극한 시진핑은 민심 수습과 자신의 확고한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한 방법으로 강력한 반부패 사정 운동을 전개해 왔다. 작년(2015년)에만도 약 30여만 명의 당원이 부패 관련 조사를 통해 처분을 받았으며, 지난 3년간 장차관급 이상의 고위 인사 100여명이 낙마했다.

시진핑 주석도 자신의 누나에 대한 출국 금지 명령을 내릴 만큼 성역 없는 반부패 운동을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있으며 올해도 그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도 궈보슝(郭伯雄) 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아들을 비롯한 14명의 전, 현직 장성급 군 인사들이 부패 관련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파나마 페이퍼스'는 시진핑 지도부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2013년 2월에 열린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모든 관료들의 해외 재산 공개 등 반부패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적극 집행 중에 있는 상황에서 핵심 지도부가 연루된 이 문건의 등장은 중국 지도부를 머쓱하게 하고 있다.

반부패 운동,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나?

특히 지나친 반부패 운동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전, 현직 관료들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은퇴한 지도급 인사들이나 각종 규제로 힘이 약해진 간부들과 활동 범위가 축소된 공무원 등도 암암리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일부 힘을 얻고 있는 부분도 있다. 급기야 반부패의 끝이 어디냐며 시진핑의 '청렴'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건들도 출현하고 있으며, 문건이 폭로되자 일부 네티즌은 시진핑에 대해 '더 이상 중국을 미래로 이끌 능력이 없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망당망국(亡黨亡國)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반부패 사정을 이끌고 있는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파나마 페이퍼의 출현은 분명 커다란 도전이다. 특히 시진핑 지도부는 강력한 반(反)부정부패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일부 세력에게 '사람이 떠나면 차가 식는 것은 당연한 이치(辯證看待人走茶凉)'라며 은퇴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지속적인 반부패 운동은 분명히 다양한 효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매년 미화 100억 달러 가량으로 추산되는 경제 부패를 척결하면 경제 활동 환경이 공평하고 투명하게 바뀌면서 비용과 시간이 절약돼 오는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을 0.1~0.5%포인트 높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반부패 운동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이는 향후 미화 약 7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 효과와 함께 정치 사회 안정이라는 '보너스'를 수반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와 함께 확고한 통치기반 확보라는 이중 목표를 가진 반부패 운동은 시진핑 지도부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시진핑은 취임 후 인터넷 정보 소조를 신설해 직접 책임자를 맡을 만큼 향후 중국 정국에서 인터넷 정보가 가진 파급력을 우려해 왔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는 파나마 페이퍼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원천 봉쇄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신랑(新浪)이나 웨이버(微博), 쩡신(徵信)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빨리 파나마 페이퍼의 중국 관련 내용 481개 문항을 삭제하고 관련어 검색을 원천 봉쇄하는 등 인터넷 통제도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음을 중국 당국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산당의 청렴을 강조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중국 지도부가 일부 권력 귀족들의 행태를 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반부패 투쟁이 단지 권력 투쟁으로 흐른다면 이는 시진핑 지도부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권력 지위가 계속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국민들은 자괴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당이 통치하는 정권의 미래는 어둡다.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개혁의 가장 큰 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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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이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및 중국 문제 시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중화민국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현대 중국정치경제학을 전공해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에 관한 100여 편의 연구 논문과 <한 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중국의 정체성>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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