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은 안철수당"? 원조는 종로 천막에서...

녹색당 하승수 "비례대표는 마이크 쓰지 마? 정책 홍보 말라는 것"

5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앞. 녹색당 하승수 후보와 선거 운동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선거 운동에 나선 당원들은 "녹색당을 국회로"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승수 후보는 20여 킬로그램 정도 돼 보이는 확성기 하나를 들고 거리에 섰다. 그 흔한 선거 유세 차량도 없었다.

하승수 후보는 "이번 총선은 정책이 실종된 선거였지만, 녹색당은 거리에서 정책을 홍보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역구에 난무하는 개발 공약은 서민과는 상관없다"면서 "녹색당은 소수자, 약자의 입장과 동물의 입장까지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소개했다.

정책 홍보 내용은 지나가는 시민이 누구냐에 따라 바뀌었다. 마침 한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자, 하승수 후보는 미세 먼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초미세 먼지는 마스크를 써도 안 됩니다. 미세 먼지를 줄이는 것은 정책과 정치로만 가능합니다."

이번엔 젊은 청년이 지나가자, 일자리 얘기가 나왔다. "녹색당은 세계 9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정당이고, 많은 나라에서 녹색당이 국회에 진출해 실제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독일 녹색당은 (재생 에너지와 관련한) 36만 개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선거 운동에 나선 녹색당 당원들은 "투표 용지는 두 장, 정당 투표는 녹색당"이라고 적힌 손팻말과 녹색당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조화를 들었다. 몇몇 시민들은 지나가며 "녹색당도 있어?"라고 말하며 관심을 보였다. 초록색인 당 상징색 때문인지 "거기 안철수당 아니요?"라고 묻는 노인도 있었다. 하승수 후보는 관심을 보이는 시민에게 일일이 '1인 2표제'를 설명했다.

▲ 5일 서울 혜화역 앞에서 하승수 후보가 선거 유세에 나섰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례대표 후보는 마이크 쓰지 마?

하승수 후보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가 아니다. '정치 1번지'라는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낸 지역구 후보다. 그의 목표는 하나다. 녹색당이 정당 득표 3%를 얻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가 선거 운동 기간 자신의 지역구를 넘어 경기도와 서울 곳곳을 찾은 이유다.

지역구 후보인 그가 다른 지역에까지 '정책 유세'에 나선 것은 현행 선거법 때문이다. 선거법 79조 1항은 "후보자(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는 제외)는 선거 운동 기간에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 홍보를 위해 공개 장소에서 연설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바꿔 해석하면 비례대표 후보는 마이크를 들고 정당 정책을 홍보할 수 없다.

선관위는 '전국에서 정책을 홍보해야 하는 비례대표 후보자의 특성상 지역구 선거 운동을 제한한다'는 취지라지만, 하승수 후보는 이 조항에 대해 "지역구 후보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는 정당은 선거 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녹색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40개 지역에서는 정당 정책도 홍보하지 말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고심 끝에 그는 선거법상 지역구 후보가 '출마 지역에서만 선거 유세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음을 역이용했다.

종로구 이외의 지역에서 선거 유세를 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처음에는 중앙 선관 위원들이 "비례대표 후보는 마이크를 쓸 수 없다"고 제지하러 나왔지만, 하 후보가 지역구 후보임을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500만 원으로 선거 운동, 왜?

지역구를 넘나드는 선거 운동 외에도 하승수 후보는 특별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우선 선거 유세 차량이 없다. 번듯한 선거 사무소 건물도 없다. 대신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천막 선거 사무소'를 차렸다.

현 선거 제도는 '돈 많이 쓰는' 시스템이다. 선거 기탁금만 1500만 원, 유세 차량 대여비만 13일에 최대 2000만 원, 사무실 임대료와 사무실에 대형 현수막을 거는 비용만 두세 달에 1000만 원이라고 한다. 원내 정당은 이 돈을 세금(정당 보조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 원외 정당은 이 돈을 고스란히 직접 내야 한다.

하승수 후보는 "선거에서 돈을 적게 쓰게 하고 모든 정당에 정당 보조금을 골고루 나눠줘야 하지만, 현행 선거 시스템은 거꾸로다. 돈을 많이 쓰게 하고 거대 정당에 보조금을 몰아준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그는 "500만 원으로 선거 운동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거대 정당에만 유리하게 짜인 '돈 많이 쓰는 선거 시스템'에 저항하겠다는 취지다. (☞관련 기사 : 하승수 "총선 종로 출마…500만 원으로 선거운동")

▲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녹색당 하승수 후보의 천막 선거 사무소. ⓒ프레시안(김윤나영)

"녹색당 의원 한 명이 국회를 바꾼다"

종로구에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지 않은 점도 특이하다. 대신 "숨통이 트이는 정치, 정당 투표는 녹색당"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5일 찾은 그의 천막 선거 사무소에는 △전월세 상한제 △모두에게 매월 40만 원 기본 소득 △원전 대신 안전으로 △초미세 먼지 강력 대책 △최저 임금 1만 원 △차별 없는 평등 세상 △행복 농업, 건강 먹을거리 △동물에게 존엄을 등 대표 공약이 적혀 있었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녹색당 국회의원 한 명이 들어간다고 정치가 바뀔까? 하승수 후보는 단 한 석이 들어가더라도 다른 정당에는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녹색당의 원내 진출로 다른 정당이 '녹색 정책'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녹색당 지지율이 나오면, 연정 대상에 들어가지 않아도 다른 정당도 유권자를 의식하게 돼요. 영국과 캐나다는 한국처럼 소선거구제라 연정이 없는데도, 녹색당이 국회에 진출한 후에 보수당이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바뀌었어요. 한 석이지만 위협적인 거죠. 호주 녹색당의 경우는, 여야 의석수가 동수였는데 녹색당 한 석이 캐스팅보트를 쥐었어요. 그 결과 호주에서 탄소세가 도입됐죠. 지금은 정권이 바뀌어서 없어졌지만."

이날 오전 7시부터 성신여대 입구, 수유역, 혜화역, 천막 사무소를 들른 하승수 후보는 저녁 6시 반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다. 12시간에 걸쳐 발로 뛴 강행군이었다. 그는 "그만큼 녹색당이 정당 투표를 3% 넘겨야 한다는 절박성이 너무 크다"고 호소했다.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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