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오세훈의 저주'가 문제다!

[기자의 눈] 오세훈은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다시 '정당 정치'를 시작했다.

여론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서울 종로에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다소 우위다. 오 전 서울시장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호감은 이른바 '오세훈 법'에 대한 추억과 맞물려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반부패 정치 개혁을 내세우며 정치 자금법, 공직 선거법, 정당법 등의 개정에 앞장섰다. (이런 움직임에는 이재오 의원, 천정배 의원 등 여야 의원뿐만 아니라 <한겨레> 등 진보 언론도 동참했다.) 당시는 여야를 막론하고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받고 있던 때라서, 이런 오 전 시장의 행보는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정수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다 결국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오세훈 법은 과연 한국 정치를 더 나아지게 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까?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 오세훈 법은 정치 개혁은커녕 정치 퇴보만 부른 법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오세훈의 저주'라고 할 만하다. 마침, 박수형 박사(정치학)가 최근 <한국정치학회보> 2016년 봄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오세훈 법이 한국 정치를 어떻게 망쳤는지 조목조목 짚었다.

오세훈 법 이후, 한국 정치는 깨끗해졌나?

오세훈 전 시장은 불법 대선 자금으로 상징되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 구조를 타파"하고 "깨끗하고 돈 안 드는 선거"를 만들려면 자신의 이름을 딴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과연 2004년 오세훈 법은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를 줄이는 데 기여했을까? 박수형 박사의 분석은 부정적이다.

부패 구조를 파악하고자 널리 인용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인식 지수를 보면, 2004년 한국은 조사 대상국 146개국 중에서 47위였다. 2013년에는 177개국 가운데 46위, 2014년에는 175개국 가운데 43위였다. 한국은 2004년에도 싱가포르, 일본, 대만(타이완) 다음 순위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수형 박사의 주장대로, 2004년 오세훈 법은 부패, 비리 문제를 줄이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오세훈 법,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기득권 유지

오세훈 법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오세훈 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당, 결사체, 시민의 정치 활동을 제약했다.

오세훈 법에 따라서 △ 정당은 지구당을 폐지하고 중앙당을 축소해야 했으며, △ 법인, 단체의 정당 후원이 금지됐으며, △ 심지어 정당 후원회를 통한 일반 시민의 정당 후원도 금지됐다(그나마 2015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정당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에 '헌법 불일치' 판정을 내렸다).

이런 조치는 어떤 효과를 낳았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박수형 박사는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 같은 기존 거대 정당은 다수의 현역 의원과 상당 수준의 재산, 지위, 명성을 지닌 예비 후보를 보유하고 있어서, 지구당이 없더라도 의원 지역 사무실을 포함해 현역 의원이 갖는 여러 이점을 활용하거나 개인 자산과 인맥에 의존해 정치 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에 그런 종류의 자원이 빈약한 (제3의) 정당은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선거 시기뿐만 아니라 상시적으로 지역 주민과 만나고 모임을 꾸리는 방식의 정치 활동에 주력해야 하기에 지구당 조직과 사무실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며 "오세훈 법은 진보 정당과 같은 제3정당이 발전하는 경로를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같은 법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의 기부까지 금지한 조항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박수형 박사는 "정치 자금 기부는 시민이 자기 이익과 요구를 실현하고자 행하는 정당하고도 효과적인 정치 참여 활동"이라고 전제하고 나서 "정치 자금 기부는 정당과 지지층 간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물론 수십억, 수백억 원 이상의 자산가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의 정치 자금은 1년에 10만 원, 100만 원도 안 되는 소액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평범한 노동자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십시일반 모아서 노동조합을 통해 기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세훈 법은 "노동조합이 친노동자 정당에 정치 자금을 기부하는 방식"을 원천 봉쇄했다.

박수형 박사는 "정당 후원회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며 "기존 거대 정당은 정당 후원회가 없더라도 그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배분되는 국고 보조금과 현역 의원 및 예비 후보에게 보장된 개인 후원회를 통해 큰 규모의 정치 자금을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소수파 노동자 정당 같은 제3정당은 정당 후원회가 없으면 정치 자금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 실제로 정당 후원회가 폐지되기 직전인 2005년 정당별 수입 내역을 보면, 한나라당(새누리당)과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은 수입의 절반 가까운 부분을 국고 보조금에서 충당하고 정당 후원회 기부금 비중은 미미했다.

반면에 당시의 민주노동당은 정당 후원금 비중이 당비 다음으로 높은 34.2%나 되었고, 액수 면에서도 다른 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박수형 박사는 "7년 후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가 있었던 2012년 진보 정당은 정당 후원회 폐지로 중요한 자금원을 잃은 반면, 양대 거대 정당은 그들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국고 보조금과 차입금으로 쉽게 충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박수형 박사의 분석을 염두에 두면, 오세훈 법은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정치인과 시민의 제3정당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말 그대로 저주였다.

오세훈 법,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변화도 가로막아

오세훈 법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기존 정당의 긍정적인 변화도 가로막았다. 박수형 박사는 "(오세훈 법) 때문에 정당은 시민의 생활 세계 속으로 뿌리내리지도 못하고, 사회의 이해당사자 결사체와의 연계도 어려워졌다"며 그 결과 "정당은 전문가 개인의 지식과 논리, 명성과 이미지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당 정체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 다퉈 대중매체를 통해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을 비례대표로 영입하고, 결코 보통 사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출신의 전문가가 각 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게 된 사정이 오세훈 법의 부정적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수형 박사는 "(오세훈 법이 내세웠던) 반부패 정치 제도 개혁의 결과는 시민의 기대와 달리 비민주적이라 부를 만한 것들로 나타났다"면서도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갖는 가치에 대한 인식과 그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한, 단순한 제도 부활이나 개선만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유익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오세훈의 저주가 한국 정치에 드리운 그늘이 생각보다 훨씬 더 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시장을 중도에 내던지고 나서, 이제 다시 국회의원으로 정계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다수의 호사가는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오 전 시장의 다음 목표가 2017년 대선이라고 말한다.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서 또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대통령이 되려고 저러는 걸까? 한국 정치는 언제쯤 오세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