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국내 인터넷 기업 가운데 최초로 대기업 집단(재벌)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 설립연도가 2006년이다. 창업 10년 만에 대기업 집단이 됐다는 건, 한국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카카오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둡다. 재벌에게 적용되는 규제를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당장 카카오가 설립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이 장애물을 만난다.
23일 카카오 측에 따르면, 카카오 기업 집단의 총자산은 3월 기준 5조 원을 넘긴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집단 지정 요건을 갖출 수 있다. 공정위는 매년 4월 계열사 자산을 합쳐 5조 원을 넘는 기업 집단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한다. 지난해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49개 민간 기업 집단과 한전 등 공기업 12곳이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민간 기업으로 여기에 속하면, 흔히 '재벌'이라고 불린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곧 재벌 총수가 될 수 있다. 국내 인터넷 기업 가운데 1위로 꼽히는 네이버는 아직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네이버는 시가 총액 및 매출 등은 카카오를 앞서지만, 총자산은 4조3000억 원대다.
현재 카카오 기업 집단은 총 45개사다. 카카오는 지난 2014년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을 계기로 2172억 원이었던 자산이 2조7680억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초 음악 콘텐츠 회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대기업 집단 반열에 오르게 됐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4%(금융위 승인으로 10%까지)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이런 상태로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기 어렵다. 반면 금융 거래에서 정보기술 업체의 역할을 확대해야 하고, 그러자면 현행 은행법을 고쳐야 한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입장이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두 건의 은행법 개정안은 금융위원회의 입장이 반영돼 있는 것들이다.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은행 지분을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신 의원 안과 다른 점은, 예외 조항 없이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신 인터넷전문은행은 그 은행의 대주주와 대주주가 지배하는 기업 집단에 속한 회사에 신용공여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가운데 신 의원 안이 통과되면, 카카오는 현재 보유한 지분 10% 이외에 추가로 인터넷 전문은행 지분을 인수할 수 없다. 사실상 '카카오 은행'은 아닌 것이다. 카카오 측이 당초 구상한 그림과 달라진다. 김 의원 안이 통과되면, 카카오 입장에선 한숨 돌린다.
그러나 다른 변수가 있다. 오는 4월 총선 이후 국회가 새로 구성된다. 따라서 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그 뒤에나 이뤄진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을 크게 늘리고, '경제 민주화'를 내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권이 세진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를 허무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사금고처럼 쓰는 위험에 대한 불안감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곧 국회에 들어갈 김종인 대표가 이런 입장에 선다면, 카카오의 은행 진출은 새로운 난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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