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고민 끝에 이 당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당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종인 대표는 "제가 이 상황에서 나의 입장만 고집해 우리 당을 떠난다고 하면, 선거가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에 나름대로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고 부연했다.
비대위원들은 이날 김종인 대표를 비례대표 2번으로 올리는 내용의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확정했고, 김종인 대표는 이를 추인했다.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김종인 대표는 총사퇴 의사를 밝힌 비대위원들을 재신임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비대위원들은 "대표를 잘 모시지 못해서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김종인 대표의 사퇴를 만류했었다. (☞관련 기사 : 더민주 비대위원 '공천 파문' 책임지고 총사퇴)
비대위원들의 만류를 수용하면서도, 김종인 대표는 이번 '비례대표 공천 파동' 사태에 대해 '구습'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종인 대표는 "우리 당이 선거를 앞두고 수권 정당으로 탄생하려면 국민의 정체성에 당이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도 더불어민주당은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중앙위원들을 질타했다.
김종인 대표는 "저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이 당의 정체성 문제들을 거론할 때마다 과연 이 당의 정체성이 뭐냐는 것에 대해 의심도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중앙위원회를 거치면서 발언자들이 당의 정체성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나타난 표결 결과를 보면 말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제가 확인했다"고 맹비난했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당 관계자는 "(일부 중앙위원들이)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당선권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정작 투표를 하고 나니 그런 분들이 들어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체성 문제 해결해야 수권 정당…당 정상화 노력"
김종인 대표는 "근본적으로 총선이 끝나고 대선에 임하는 마당에서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 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면서 "모든 힘을 다해 이 당의 기본적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정상화시키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종인 대표가 총선 이후에도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의 정체성을 '중도'로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종인 대표는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교수, 관료 등을 배치하려고 했지만, 중앙위원들은 "사회적 소수자를 비례대표로 내세워야 한다"면서 일부 명단 순번을 투표로 뒤집었다. 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김종인 대표와 개혁적인 일부 중앙위원들의 가치관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격론 끝에 중앙위원회는 김종인 대표의 공천 몫으로 4명을 보장하고, 대신 청년·노동·당직자·전략 지역 몫의 4명을 당선권 안에 배치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한편, 김종인 대표는 자신이 비례대표 순번 2번으로 추대된 데 대해 "내가 무슨 큰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 욕심이 없다"며 "내가 이 당을 끌어가기 위해서 뛰어왔기 때문에 한 건데, 내가 이 당을 떠남과 동시에 비례대표 의원직을 던져버린다는 각오로 하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 더는 할 말이 없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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