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대란, 증세로 돌파하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세를 걷자

누리 과정 예산 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미봉책을 전전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과 경기도 교육청이 유치원에 대해서는 수개월 분의 예산을 편성해서 급한 불을 껐지만, 아이사랑카드로 어린이집 비용을 결제하는 3월이 되면 다시 불씨가 살아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미봉책으로만 일관할 것인가?

솔직해져 보자. 숫자는 정직하다. 지방 교육청 재정이 어렵다는 것은 중앙 정부도 잘 알 것이다. 누리 과정 예산을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계획을 세웠던 2011년, 중앙 정부는 2015년이 되면 지방 재정 교부금이 49.4조 원이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39.4조 원밖에 안 되었다. 교육청이 2015년에 6.1조 원, 2016년 3.9조 원 지방채를 발행하여 교육 예산을 메우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교육 재정이 정상적이지 않고 큰 무리가 따르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중앙 정부 살림도 여유가 없긴 마찬가지이다. 2015년 추경 예산 기준 관리 재정 수지가 46.5조 원 적자로 나왔다. 2013년에는 23.4조 원, 2014년 25.5조 원 적자였으니 3년 동안 적자가 총 95.4조 원 발생했다. 같은 기간 동안 국가 채무도 152조 원이 늘어나 2015년 말 추정치는 595.1조 원에 달한다.

중앙 정부의 예산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도 죽을 맛일 것이다. 2015년 예산을 편성할 때 교육부가 요구한 누리 과정 예산 2.2조 원을 기획재정부가 삭감한 것도 교육 예산에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중앙 정부 살림살이가 빠듯해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누리 과정, 이제 와서 포기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리 과정을 축소할 것인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2011년과 2012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누리 과정(무상 보육) 정책을 도입했을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 부담이 되는 줄 알지만 누리 과정을 도입한 것 아닌가? 이제 와서 누리 과정을 포기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뿌리가 깊고 강력하다. 굽힐 줄 모르는 박근혜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정책을 뒤집은 경우가 2015년 연말 정산 아닌가? 국민들의 세금 규탄이 커지자 논란이 되는 공제를 모두 원상 회복시켰다.

그런데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에는 내가 낸 세금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내 주변 이웃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복지 체험이 부족한 것도 주요한 배경이다. 세금 걷어서 쓸데없는 개발 사업, 선심성 행사에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이 세금에 대해서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10년부터 시작된 보편 복지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상 급식에서 시작해서 누리 과정 그리고 기초 연금까지 하나씩 보편 복지 제도를 도입해 왔다. 초등학교 이전의 자녀를 둔 부모, 초·중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그리고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부양하는 가족들 모두 무언가 정부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주변의 이웃에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이제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이 쌓이고 쌓이면 세금에 대한 불신, 저항이 조금씩 녹을 수 있다.

사회복지세 도입해 누리 과정 재정 해결하자

누리 과정을 부담할 재원이 지방 교육청에도 없고 중앙 정부에도 없다면, 국민이 조금씩 부담하는 것은 어떨까? 누리 과정 예산을 위한 사회복지 목적세를 만들어서 다 같이 부담해 보자. 누리 과정의 필요성과 혜택을 체감하고 있으니 시도해 볼 수 있다.

목적세를 설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2016년 예산상 법인세가 46조 원이니 법인세에 10%를 부가하여 사회복지 목적세를 걷으면 4조 원의 재원을 만들 수 있다. 어렵게 만들어낸 저출산 대책을 걷어차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누리 과정 예산을 보통 교부금이 아니라 목적 교부금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지방 교육청의 다른 예산과 섞지 말고 별도로 관리하자는 의미이다. 여기서 꼭 필요한 것은 그에 따른 재정도 추가 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발 나아가서 그 재원도 별도로 만들자. 사회복지 목적세로 거두어 우리의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자.

이러한 별도 예산이 필요한 것은 누리 과정뿐만이 아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초 연금도 조만간 중앙 정부와 지자체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처음 도입부터 소득 수준에 따라 일부를 배제하고,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국민 연금 가입자 역차별을 만들어 두었는데, 앞으로 재원이 부족하다고 점점 더 누더기로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누리 과정뿐만 아니라 기초 연금의 안정적인 재원 조달을 위해서도 사회복지 목적세는 필요하다.

보수 정부의 성과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누리 과정과 기초 연금은 보편 복지 바람이 낳은 성과이고,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합의한 정책이다. 더구나 구체적인 기획은 보수 정부가 한 정책이다. 그 정책들은 일회성으로 민심을 얻자고 만들어낸 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나온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이 재원 문제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 정책을 기획해낸 고민이 물거품이 된다. 반면,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여 예산 문제를 해결해 그 정책들이 정착된다면, 보수 정부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재정 토대 마련에 기여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야당도 증세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수권 정당임을 자임한다면 재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자신이 집권당이 아니라고 복지 정책이 고사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도, 집권의 비전을 가진 정당의 자세도 아니다.

4월 총선 공약으로 누리 과정 예산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보편 복지를 위해 최근에 도입했거나 앞으로 도입할 정책을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누리 과정 시한폭탄이 조금씩 다가오는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홍순탁 회계사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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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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