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언제까지 부모 등골이 휘어야 하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어린이 병원비, 5000억 원이면 된다

그건 발레가 아니다. 두 발꿈치를 맞대고 포르르 새가 날아가듯이 사뿐 날아오르는 발레 모양과 얼핏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 아름다운 일은 절대 아니다.

아이의 발은 한 쪽이 바깥으로 틀어지고 있다. 그것도 저절로 말이다. 어느 틈에 오른발과 왼발이 서로 엇박을 이루며 아이를 엉거주춤하게 만든다. 또래보다 키도 훌쩍 크고 부끄러움도 많은 아이는 그 발 때문에 늘 애가 타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발맞추어 포르르 날아가 버리는 친구들을 따라잡지 못해 엇갈리는 발을 하고 뒤에서 애타게 친구들을 불러대야만 했다.

그런 아이에게 홀로 있는 엄마는 힘이 되어 주지 못한다. 엄마의 허리도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 친구들 뒤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아이를 엎고라도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입에 풀칠을 하는 일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그 허리로는 장담할 수 없다.

아이의 다리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뒤틀어지고 있었다. 악몽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는 자꾸 걸을 때 몸매무세를 바르게 해보라고 아이를 타박해보지만, 그런 지청구가 공연한 것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가 괜히 짓궂은 짓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억울해하며 훌쩍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더 속이 탄다.

속 시원한 진단이라도 나왔으면…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찾는다고 금방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도 쉽지 않지만, 마음먹고 간 병원에서 뭐라고 속 시원히 진단이라도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눈으로 봐도 그냥 알 수 있는 틀어진 발을 의사들은 엑스레이를 찍어놓고도 멀쩡하다고 하니 환장을 할 노릇이다. 멀쩡한 발이 무엇인지는 다른 한 쪽 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멀쩡하다는 것은 그 발처럼 꼿꼿하게 바르게 설 수 있는 발을 말하는 것이지, 저 혼자 제 멋대로 바깥으로 향하고야 마는 그런 발을 두고 할 말은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작은 병원의 의사들은 뭘 몰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형 병원을 찾아가 기웃거려 보지만 그곳은 마치 거대한 암호와도 같아서 안내소 부근을 맴돌다 말 뿐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다시 작은 병원을 들러 의뢰서를 받아오라는 말뿐이니, 엄마는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으로 입구만 맴을 돌다 돌아올 뿐이다. 그러니 일단 발목뼈가 잘못된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원인이라도 알려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난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크게 안도가 된다.

사실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굳이 이상스럽다고 병원을 전전하는 것이 더 이상스레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난치병이나 원인 미상의 질병 등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질병을 앓고 있는 아동들은 치료 과정에 들어가는 첫 관문부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증상을 본 적이 없는 경우 의류진의 오진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제대로 질병으로 인식되지도 못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치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비슷한 증세를 보였던 동네의 다른 아이의 다리가 교정이 된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수소문해서 다리를 고쳐주었다는 의사를 찾아갔더니 이렇게 다리가 바깥으로 휘는 경우는 처음 보는 사례라 당신도 확답은 어렵지만 우선 교정기를 해보자고 치료법을 제시해주는 그마저도 천운이다 싶었다.

그 동안 대부분의 의사들이 원인도 모르겠고 심지어는 멀쩡히 보이니 괜찮을 거라고 돌려세우기 바빴는데, 그래도 발목과 발등의 뼈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말만이라도 들으니 그만만 해도 희망적이다 싶었다. 그래서 선뜻 무엇이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급한 마음에 대답을 해버렸는데, 교정기 값만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그만 남몰래 질려버렸다. 병명도 안 나오는 병 아닌 병인 셈이니 교정기도 건강보험의 적용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비급여 품목으로 고스란히 어머니의 부담이 되어버렸다. 그동안은 아이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하겠다고 마음 먹어왔는데, 이제 정말로 단숨에 200만 원을 내놓으라 하니 돈이 무서워 벌벌 떠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러워 어머니는 눈물바가지를 쏟았다.

아이 병원비 마련할 길 없는 부모들

교정기 비용은 어머니에게 할당되는 두 달분이 넘는 정부 지원금 전부를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다. 국가에서는 자활후견기관에서 알선해준 곳에서 일을 하는 조건으로 한 달에 80여만 원 정도를 어머니 몫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런 형편이므로 교정기에 드는 목돈을 마련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 알음알음 부탁을 하여 지인에게 어렵사리 겨우 돈을 빌 수 있었다. 물론 적지 않은 빚으로 남을 돈이지만, 아이의 멀쩡한 다리 값이라 여기고 어머니는 그 짐을 마땅히 더 지기로 하였다.

그래도 거기서 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교정을 해서 발이 제 모양을 찾고 엇 자라는 발목과 발등의 뼈들이 자리를 잡게 하려면 어쩌면 아이가 조금씩 자랄 때마다 그 모양새에 맞추어 교정기를 바꾸어주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득 지난 번 센터에서 돌봤던 지체장애 아동이 하고 있던 제 발보다 훨씬 작은 교정기가 떠올랐다. 그래도 한 번, 혹은 두 번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발도 아닌 교정기를 때마다 바꾸어 주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섣부른 걱정이 더 앞선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일보다 더 안타까워해야 할 일은 이런 일들이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임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멀쩡히 잘 자랄 수도 있는 아이들이 이런 교정기나 치료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은 불편한 몸으로 그대로 자랄 수밖에 없도록 어처구니없는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 2일, 이런 문제 공감한 사람들과 단체들이 모여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 추진연대'(어린이 병원비 연대) 출범식을 가졌다. 어린이 병원비 연대가 요구하는 것은 현재 어린이 병원비의 전부를 국가가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어린이 병원비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입원비만이라도 국가가 보장하자는 것이다.

5000억 원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

물론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어떻게 정할지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수년째 지속적인 흑자를 내왔고, 누적 흑자 규모가 무려 17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재정이 어렵지 않은데도 제도 개선이 없어서 절박한 어린이 병원비 지원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이병원비연대에 따르면, 1년에 5000억 원만 지원하면 15세(중학생) 어린이 입원 병원비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이것도 적지 않은 돈이긴 하지만 17조 원이나 되는 흑자분의 3%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니, 이 정도는 미래를 위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3%면 투석을 받거나 항암 치료 등의 중병 관리를 위해 병원 입원이 필수적인 아이들이 마음 놓고 병원을 다닐 수 있다. 병원비 걱정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보다 희망찬 길이 열릴 수 있다. 현재 아이를 가진 대한민국의 상당수 가정들이 어린이의료보장 사보험에 가입하여 공적 제도로서 국민건강보험의 부족분을 메우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런 제도 개선의 외침을 결코 그냥 흘려버려선 안 된다.

그저 그 동안은 이런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도 과연 국가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입을 다물 수밖에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한 재원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미 초저출산 국가에서 진입하여 미래의 삶을 지어질 현재의 아동들에 대한 배려가 더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일에 앞서 이미 우리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만이라도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마련하는 데 마음을 쓰는 일이 어쩌면 더욱 우선되어야 한다.

ⓒ청와대

국민건강보험이 존재하는 이유

그렇지만 어린이병원비연대 활동이 부분별한 '무상' 논란에 휩싸여 정치적으로 희생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이미 국민 모두가 소득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료 내고 있으니만큼 잘 사는 가정의 아이를 위해 공짜 병원비를 내주자는 것이냐 따위의 주장을 운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건강보험은 모두가 능력껏 기여하고 아픈 만큼 공적 보장을 받는 제도이므로 이러한 논란은 사실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제도의 현명한 개선으로 보다 많은 아이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밝은 얼굴로 제 몫을 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면 그런 긍정적 변화를 도외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런 변화가 가져올 결실은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행복을 바라자고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만들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마련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린이 병원비만은, 특히 입원비만이라도 우리들 어른들이 함께 감당하자. 아니 감당이라는 말도 과분한 것이다. 지금 국민건강보험 금고에 묶여 있는 그 돈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당장 사용하자는 것뿐이니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건강하게 밝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것뿐이다. 미래의 시민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당장 우리의 밝은 현실로 만들어 보자. 그러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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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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