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최강대국은 바로 중국"

[유라시아 견문] 일대일로의 사상 ① : 지리 혁명과 공영주의(上)

중국학파

후안강(胡鞍鋼)을 만난 것은 2015년 5월이다. 내몽골 견문을 마치고 베이징에 들렸다. 초면은 아니었다. 2013년 태평양 건너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만났다. AAS(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회의장에서 '슈퍼 차이나'에 대한 호기로운 발표를 들었고, 저녁 리셉션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겨우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그는 중국학계의 거물, 말을 섞고 싶어 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나를 기억할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도 교수 이름을 팔았다. 중국에서 드물게 알려진 한국 지식인 가운데 한 분이다. '유라시아 견문' 연재도 보태었다. 일대일로에서 촉발된 기획이라며 인터뷰를 꼬드겼다. 일대일로의 밑그림을 그린 장본인이 바로 후안강이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국무원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2014년 1월 신장의 대학 학술지에 그 내용을 발표했다.

그를 신좌파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회의적이다. 신좌파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신좌파, 자유주의파, 신유가 등으로 접근하는 중국 사상계의 분류법이 얼마나 적절한지 의문이다. 관성적이고 타성적이다. 나는 통으로 '중국학파'가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학술 독립과 학문 자립이 진행 중이다.

아편 전쟁 이래 150년, 서학(자유주의)과 북학(사회주의)의 수용을 마치고 사상의 자력 갱생을 이루어 간다. 남방의 불교와 서역의 이슬람교를 수용한 끝에 宋學(송학)이 등장했던 1000년 전처럼, 동/서구의 좌/우를 포용하고 '中(국)學'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사상 면으로는 왕후이, 외교 쪽으로는 옌쉐퉁, 경제 방면으로는 후안강 등을 대표 격으로 꼽을 수 있겠다. 공히 학자이면서도 책사 역할도 하다. 그래서 재야의 '비판적 지식인'도 관방의 '어용 지식인'도 아닌 중국 특색의 '공공 지식인'의 전범을 확립해간다.

후안강은 1953년생이다. 신중국 수립 직후인 1950년대 태어난 이들의 특별한 세대적 경험이 있다. 10대에 문화 대혁명을 체험한다. 변방의 오지와 농촌으로 하방되었다. 20대에는 개혁 개방을 경험한다. 구미 유학 1세대이다. 즉, 세계 체제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를 20년에 걸쳐 두루 망라했다. 그래서 시야가 넓고 깊다.

학-석-박사를 상아탑에서만 곱게 보낸 이들과는 꽤나 다르다. 후안강은 중국에서 공학 박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공학과 사회과학의 겸비, 그래서 '사회공학자'에 가깝다. 그가 집필한 책들은 각종 통계와 도표와 그래프로 가득하다. 자료를 집대성하고 재편집하는 '정보 디자이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념적 편견이 덜하고, 인상 비평에 그치지도 않는다. 논증은 꼼꼼하고, 주장은 과감하다.

그가 칭화(淸華)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전공도 '공공관리학'이다. 행정학에 경영학을 결합시킨 학문이다. 송대 이래 중국의 천 년 관료제에 20세기 미국의 발명품인 경영학을 접목시켰다. 마흔 살에 집필한 <중국국가능력보고>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 후 20년이 넘도록 국정 개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고 조언해 왔다.

2000년부터는 중국 내정을 연구하는 칭화 대학교의 국정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본인이 중국공산당 18차 전국 대표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학 캠퍼스와 중난하이(中南海)를 오가며 작성한 보고서들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필독하는 핵심 문헌으로 유명하다. "슈퍼 차이나", "중국몽",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일대일로", "신상태" 등 최근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개념과 조어 또한 그의 보고서에서 비롯되었거나 구체화되었다.

인터뷰는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지난 5월의 대면 인터뷰를 시작으로, 신장과 운남에서 두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집필 직전에 한 번 더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네 번의 온/오프라인 인터뷰를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 후안강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 ⓒ이병한

대사(大事)와 대전략(Grand Strategy)

이병한 : 칭화 대학교는 베이징에 올 때마다 들렸던 학교입니다만, 국정연구원은 처음 와봤습니다. 연구소 소개부터 시작해 볼까요?

후안강 : 지난 2000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올해(2015년)로 15년 되었네요. 그간 다양한 국가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중국의 국가 경영에 '칭화의 목소리'를 반영해 왔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학문의 전문화, 체계화, 고급화도 이끌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장한 박사와 박사후 연구원들을 다수 배출했습니다. 국가의 大事(대사)에 깊이 참여하는 고급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해 온 것입니다. 실천적 학술 연구를 통하여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라는 말도 이곳에서 제출한 개념이라고 들었습니다.

후안강 : 아닙니다. 덩샤오핑이 이미 말했던 바 있습니다. 다만 국정연구원이 그 개념을 더욱 구체화하고 이론화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병한 :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후안강 : 어떤 경제 체제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장점이 있고, 또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없습니다. 가장 적합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중국의 경제 기적은 그렇게 발생한 것입니다. 중국은 소련도 미국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소련형 사회주의도, 미국형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중국의 국정과 정치 문화에 적합한 '중국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유일무이한 중국형 근대화입니다.

이병한 : 그 특징이 무엇인가요?

후안강 : 중국은 사회주의 제도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덩샤오핑은 "역량을 집중하여 大事(대사)를 처리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중국의 인구는 세계 총 인구의 5분의 1입니다. 반면에 중국의 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적습니다. 인구는 많고 자원은 부족한 조건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을 시장에만 일임할 수 없습니다.

유능하고 책임 있는 정부, 특히 중앙 정부가 전 사회의 자원을 집중하여 공공 재정, 공공 투자, 공공 정책 등 허다한 대사를 처리해야 대국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경험은 중앙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그 집중된 역량 내부에서 민주를 가동시키는 '집중과 민주의 조화'에 있습니다. 이로써 그때그때 필요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고 각종 도전과 위기를 대처해 왔습니다.

이병한 : '민주집중제'는 중국만의 특색이 아니지 않나요? 굳이 원조를 따지면 소련일 텐데요.

후안강 :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는 전통적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를 초월했습니다. 동시에 자본주의적 자유 시장 체제도 능가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 특유의 개방성, 포용성, 적응성, 혁신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국가의 보이는 손이 조화를 이룹니다. 시장의 혁신주의와 국가의 실력주의를 결합합니다. 만능 정부의 미신에 빠지지도 않고, 자유 시장을 숭상하지도 않습니다. 활력 있는 시장과 유능한 정부라는 '두 개의 손'으로 작동하는 중국의 독자적 체제를 개척한 것입니다. 계획 경제도 시장 만능도 아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병한 : 여전히 추상적인데요.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령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는 어떻게 작동했던 것일까요? 어떤 점이 체제의 비교우위라고 말할 수 있을 지요?

후안강 : 10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갈까요?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내수 확대 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2000년 서부 대개발이 대표적입니다. 서부의 기간 시설 설비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아시아 금융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더불어 동북 3성의 노후화한 공업 기지를 재건하고, 중부 개발도 시작했습니다. 정보 산업에 박차를 가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두 번째 내수 확대 정책을 실시합니다. 고속철과 고속도로 등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여 불과 5년 만에 중국은 세계 최고의 인프라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1978년 개혁 개방을 살펴볼까요? 중국은 점진적 개혁으로 혁명적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와 동유럽, 소련이 경험했던 '쇼크 독트린'과는 달랐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국유 자산을 민영화, 즉 '사유화'시키는 남미형과 동구형과는 달랐습니다. 그랬다면 소련 해체 초기처럼 일부의 고급 인력만 시장 경제에 적응해서 고수입의 혜택을 누렸겠죠.

반면 중국의 개혁 개방은 '장기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적 접근이라고 할까요. 대증요법이 아니라, 원기와 근기를 살리는 것입니다. 장기적 정책 수립과 실천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정치의 안정에 있습니다. 정치 안정을 토대로 점진적인 양적 변화를 추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질적인 변화, 혁명적 성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지구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에 중국만은 6억의 인구를 빈곤에서 구해낸 것입니다. 6억은 세계 인구의 10%입니다.

이병한 : 개혁 개방이 중국형 근대화라면, 일대일로는 중국형 세계화의 출발일까요?

후안강 : 중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입니다. 대전략은 대국의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대국만이 소비할 수 있는 희귀품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정치, 경제, 외교, 문화,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대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일국의 흥망성쇠는 대개 5단계를 겪습니다. 성장기, 신속한 발전기, 강성기, 완만한 발전기, 상대적 쇠락기입니다.

2050년까지 중국은 공업화, 도시화, 현대화를 완수할 것입니다. 세계 최대 인구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1000년 만의 대전환이죠. 저는 개혁 개방 직전까지가 중국의 성장기였다고 봅니다. 1980년부터 2020년까지가 신속한 발전기입니다. 개혁 개방에서 비롯한 고도성장기이죠. 2020년부터 중국은 강성기에 진입합니다. 종합 국력 지수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게 됩니다.

이병한 : 이른바 '슈퍼 차이나' 말씀이시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에 슈퍼 차이나로 등극하여,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절정을 구가한다는 전망이신데요. 최근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쓴 칼럼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대일로를 따라서 중국형 발전 모델이 인도네시아부터 폴란드까지 유라시아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은 뒤늦게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해서 '자유 민주주의' 모델을 사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후안강 : 그야말로 미국식 사고방식 아닌가요? 중국은 미국처럼 내정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상황과 문화에 적합한 정치 체제를 가질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신중국의 일관된 원칙이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천하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중국의 대전략은 大事(대사)에 전념하지, 小事(소사)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대일로는 中國(중국)의 독주가 아닌 萬國(만국)의 합창입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맹, 몽골의 '신 초원의 길', 인도의 '인도양 면화길', 터키의 네오-오스만주의,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과 건설적으로 합류할 수 있습니다. (下(하)편에서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관련 기사 : 일대일로의 사상 ① : 지리 혁명과 공영주의(下) "미국, 금융 조작-기생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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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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