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표창원의 날카로움이 더 필요하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야당 없는 나라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양당제 구도였다. 대략적으로 볼 때, 보수주의정당과 자유주의정당이 정치권력을 양분해 왔다. 그러나 보수정당의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집권당=보수당=독재'이 마치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졌다. 여당은 항상 독재권력이고 야당은 핍박받고 싸우는 모습이 정상인 것처럼 인식됐다.

그러다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의정사상 드물게 4당 체제를 구축했다. 집권당인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3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1990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양당구도로 돌아섰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3당 구도를 이루었다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 진출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보수당인 한나라당, 중도정당 열린우리당,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3정립 체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에 와서 진보정당이 해산되고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양당구도로 재편되었다. MB정부와 박근혜정부 기간 동안 갈수록 야당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집권 여당만이 독주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정치가 업(Up)데이트는커녕 1970년대를 다운(Down)로드하고 있다.

양당구도 또는 3당구도?

정당이 이념을 반영하는 정치결사체라면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다당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양당제로 구축되려면 보수와 진보 양당이 모두 중도세력을 포용하는 느슨한 이념적 지향을 가져야 한다. 선명한 이념을 지향한다면 최소한 3당 체제나 4당 체제로 가야 한다. '보수-중도-진보' 또는 '보수-중도보수-중도진보-진보' 등의 체제가 균형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13대 총선에서 4당 체제는 소위 3김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체제였다. 이는 우리정치의 봉건성을 나타내는 구조였다. 이제는 당시와 같은 정치적 맹주 중심의 봉건체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현 집권 여당에서 이러한 퇴행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진박-친박-비박'등으로 특정인을 중심으로 정치적 패거리가 나뉘는 것은 봉건적인 퇴행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보수(한나라당)-중도(열린우리당)-진보(민주노동당)'의 구도가 이념적 지향에 따라 정치권력이 분점되는 최초의 계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 중도세력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이 붕괴되고 끝없이 이합집산하였으며, 진보정당 또한 분열하는 동안, 보수세력은 한나라당에 이어 새누리당으로 강고하게 우경화 되고, 그 힘으로 진보정당을 해체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중도에 해당되는 새정치연합은 다시 분열하고 있으며, 진보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정의당은 현재로선 존재감이 미약하다. 최근 야권의 분열은 이념에 따른 것도 아니요, 과거 3김 만큼의 영향력을 갖는 인물에 따른 것도 아니어서 과도기 내지 일시적 현상으로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기고만장한 극우보수의 여당, 존재감 없는 진보정당, 맥없는 중도 야당의 구도는 대한민국을 가라앉히고 있다.

처음 보는 야당

과거 5공 전두환 정권 시절 안기부 자금지원으로 만들어진 관제야당 "민한당(민주한국당)" 이래 이렇게 존재감 없는 야당은 처음 본다. 새정연 말이다. 야당은 집권 또는 재집권을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새정연은 도무지 싸우지 않는다. 가끔 싸우려는 척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새정연 내에서 투사들이 지도부를 압박하거나 그것이 안 통하면 탈당을 할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투쟁이나 투사와 전혀 거리가 먼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 지도부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다가 참지 못하고 탈당하여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연이 "이대로 가면" 총선필패라며 당을 떠났다.

새정연 내에서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상태는 심각하다. 그런데 그것을 주도하거나 결행하는 인물이 안철수라는 것은 뭔가 그림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 그럴 만한 인사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이 새정연에 대해 답답하고 못 마땅했던 것은 막무가내식의 공격을 펼치는 "막공"의 정부·여당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는 전투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여당에 대해 반대만 일삼는 "낡은 진보"라는 비난을 가하며 얌전하신 안철수 의원이 총대를 메고 탈당을 하니 이 부분에 대한 평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을 각각 지지하는 측에서는 전혀 다른 각도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 말대로 새정연이 "이대로 가면" 총선필패다.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안철수 의원 말대로 "이대로 안 가면" 총선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선뜻 그렇다고 동의할 만한 국민들은 많지 않다.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가로 젓는다. 안철수 의원이 그 동안 보여준 모습은 야당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여당의 분위기나 색깔에 가까웠다는 게 사실이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지난 30일 위안부 관련 집회에 나사 '인증샷'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표창원 SNS

안 가고 표 받아?

지난 27일 정의로운 보수의 상징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새정연(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새정치 바람을 몰고 왔으나 이렇다 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안철수 의원이 떠나자 대신 대중들에게 정의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표창원 전 교수를 영입한 것이다. 새정연 입장에서 보면, "안"은 가고 "표"가 들어온 것이다. 마치 프로팀에서 거액의 몸값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단했던 선수가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도 팀과 구단을 비방하며 계약파기를 선언하고 떠나자 다른 강력한 선수를 영입한 모양새다. 새정연이라는 팀이 총선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고 이제 당명도 "더불어 민주당"으로 바꾼다고 하니 새로운 '팀 빌딩'에 나선 것이다.

지난 30일 종편 <MBN>에서 표창원씨가 날카로운 응수로 앵커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은 작지만 큰 의미를 상징한다. 대중들은 살아있는 야당을 원한다. 어떤 억압과 굴욕에도 정당성을 굽히지 않는 야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돈 받고 져주기 시합을 하는 선수들처럼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한 야당이 상징적인 선수를 교체했다. 그것이 성공할지 도루묵일지 두고 볼 일이다.

질 때 지더라도

스포츠 경기에서 이미 승부가 갈라진 경기를 볼 때, 진 팀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린다. 실질적으로 졌다고 해서 나머지 경기 동안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는 팀은 재기하기도 힘들다. 지고 있지만 사력을 다 해 자기 플레이를 하면서 분투한다면, 지더라도 격려와 응원을 받게 된다. 다음 리턴매치에서 다시 승부를 해볼 만한 근거와 에너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일찌감치 승부는 져놓고 나머지 마무리도 맥없이 한다면 즉시 퇴출 대상이다. 지더라도 끝까지 자기 색깔의 플레이를 펼치며 분전한다면 응원단은 패배의 아픔도 재기의 희망도 함께 할 것이다.
운동장의 구조는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 측면이 조금 낮아야 활동하기도 좋고 물빠짐도 좋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정치운동장의 구조는 오른쪽만 높이 솟아 있고 중앙과 좌측이 무너져 있다. 이런 운동장에서는 미끄럼타기 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 한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올라가지 못하는 미끄럼틀.

작금의 우리 정치는 일개 정당과 지지자들에게만 국한된 위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창당이 창업이 돼선 안 된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펴야 할 것이다. 일단 야당의 역할이 제대로 되어야 이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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