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에게 사기 친 국토부, 박근혜 응답하라

[기고] '전월세 상한제' 연구 용역, 처음부터 반대 결론

대한민국 세입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삶이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전세 폭등, 월세급증에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기름을 붓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세입자 정책을 취하는 정부 때문에 고통당하는 세입자들을 상대로 국토부가 대형 사기를 쳤다.

지난 해 말 정부 여당은 집값과 전셋값 올릴 게 뻔한 '부동산 3법'(분양가 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 이득금 환수 금지, 재건축 때 3주택까지 분양 허용)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결단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야당은 끽소리 못하고 끌려가서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 찍자마자 돌아온 답은 '불어터진 국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갈이었다. 진작 통과시켜줬어야 하는데 지금 통과시켜 줘서 효과가 반감되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3법은 2,300만 무주택 세입자에게는 포장지만 화려한 독배였다. 무주택자에게 독배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정치연합은 도장 찍어 주기에 바빴다. 그 대가로 얻어 낸 것이 여야 동수로 '서민주거복지특위'를 구성하고 '전월세대책, 계약갱신청구권과 계약기간의 연장, 임대차등록제 등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추가 개정 사항'을 다루겠다는 구두 합의였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보기 좋게 배신을 당했다. 정부, 여당이 특위 구성까지는 동의했지만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 야당 안은 테이블에 올리지도 않고 차일파일 미뤄 버렸다. 국토부 장관까지 나서서 '전월세 상한제는 문제 있다'는 언론 플레이는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약속한 6개월의 기간은 헛되이 흘러가 버렸다. 더 이상 특위를 가동할 이유가 없다던 여당은 여론에 못 이겨 특위를 4개월 연장하는 데 동의했다. 국토교통부는 야당이 요청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8월 28일 전월세 상한제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 지난 4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7대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민주거안정 연석회의 회원이 단체의 구성 취지 및 경과 보고와 관련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 연구 용역, 3분의 2가 '전월세 상한제 반대론자'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토부는 회장이 앞장서서 전월세 상한제에 반대해 온 한국주택학회에 용역을 주어버렸다. 경실련이 국토부에 정보 공개 청구해서 받는 자료에 따르면, 용역을 맡은 사람은 건국대 정모 교수(책임연구원), 한양대 이모 교수(공동 연구원), 상명대 유모 교수(공동 연구원) 등 3명이다. 이들 중 정모 교수와 이모 교수는 전월세 상한제를 반대해 오던 인물이고, 임대 기간 연장 문제를 맡은 유모 교수는 주택 분야가 아니고 금융 전문가다. 이는 5000만 국민과 2300만 세입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전월세 상한제 연구 용역'에서 책임연구원을 맡은 정 교수는 전월세 상한제 반대론자로 워낙 이름이 많이 난 인물이다. 그는 '인위적 전·월세 규제가 불러올 폐해들'이라는 제목의 언론 기고에서 전월세 상한제를 반대했다.

정 교수는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전·월세 가격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임대주택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임대 주택 총량도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전·월세 가격 상한제처럼 과도한 시장개입을 피하고 전·월세 시장이 구조적 변화과정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동 연구원인 이 교수는 '불가능한 전월세 상한제'라는 언론 기고에서 "가격 규제인 전월세 상한제는 결국 장기적으로는 민간 임대주택의 공급을 축소시켜 임대료를 더욱 불안하게 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월세 상한제에 반대했다.

책임연구원을 포함한 용역 수행단의 3분의 2가 전월세 상한제 반대론자라면 용역 결과는 보나마나 아닌가? 결과는 미리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용역 결과는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는데,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국토부가 민간 학회를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국가 기관의 생명은 공정성과 투명성인데, 어떻게 국토부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국토부 용역 사태'는 단순한 행정상의 실수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강 문제인 동시에 정부 운영의 원칙과 투명성에 관한 문제이다. 국민을 우습게 안 국토부가 국민을 속인 대형 사기 사건이다. 여론 조작을 위한 꼼수다. 민주주의 가치와 기본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민주공화국 파괴 행위다.

박 대통령, 2300만 세입자에게 사과하라

나는 이 중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음 네 가지를 요구하겠다. 첫째, 대통령이 국민과 2300만 세입자에게 사과할 것. 둘째, 이번 용역 결과를 무효화할 것. 셋째, 이번 사태를 엄격히 조사해서 사건의 전 과정과 책임선을 분명하게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할 것. 넷째 이 연구 용역을 수행한 책임자를 파면할 것.

이 문제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했는데 국토부의 해명이 가관이었다.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특정 연구원 개인의 견해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용역을 준 과정의 적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2차까지 공고했는데 지원한 곳이 한국주택학회밖에 없어 수의계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국토부 일부 공무원의 배임과 업무 방해 차원의 문제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강이 무너지고 도덕성에 먹칠을 한 대국민 사기 사건이다. 정부가 국회와 국민을 속이고 2300만 세입자를 우롱한 사건이다. 박 대통령의 빠른 응답과 조치를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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