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악단 철수, 수소폭탄 때문?

[정욱식 칼럼] 개성과 베이징, 금강산과 모란봉

지난 주말, 개성과 베이징(北京)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숨과 의아함을 자아내게 한다. 먼저 11~12일 이틀 동안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이 결렬되고 말았다. 합의문은 고사하고 다음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혹시나'하는 기대로 이 회담을 지켜봤지만, '역시나' 하는 탄식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판문점 8.25 합의 이후 3개월여 만에 열린 이번 회담은 공식 회담으로는 무려 8년 만에 열린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8년을 딛고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자리는 8년간 켜켜이 쌓인 불신과 일방주의가 차지하고 말았다.

회담 결렬의 결정적 사유는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를 둘러싼 이견에 있었다. 북측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관광 재개를 연계해서 풀자고 했다. 하지만 남측은 두 가지 사안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의제들만 제시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남북 대표가 '잘 해보자'며 악수를 나눴던 손은 이내 '네 탓'이라며 서로를 삿대질하는 손가락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남북회담이 결렬된 날, 중국 베이징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북한 모란봉악단이 국가대극원에서 예정되었던 공연을 전격 취소하고 돌연 귀국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은 "업무 소통 때문"이라는 알쏭달쏭한 보도만 내놨다.

▲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모란봉악단. 이들의 공연은 당일인 12일 돌연 취소됐다. ⓒAP=연합뉴스

그러자 이를 둘러싼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가 '최고 존엄' 모독으로 간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내 일부 언론은 현송월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과거 애인'이었는데,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의 눈밖에 나서 총살당했다는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현송월이 단장 자격으로 베이징이 나타나자, 국내 언론은 경쟁적으로 보도했고 이게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려 귀국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신빙성 있는 보도는 '수소 폭탄' 논란이다. 김정은은 최근 개보수를 끝낸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김일성 주석이 울린 역사의 총성이 있었기에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며 처음으로 수소 폭탄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희망한다"며 김정은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추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김정은의 수소탄 발언에 분개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 측 공연 참관 관료들의 격을 크게 낮췄고, 그러자 무시당했다고 여긴 김정은이 공연단의 철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폐쇄성, 그리고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정확한 사유는 한참 지난 다음에 나오거나, 외부에선 영원히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미스터리는 북-중 관계가 순탄치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행사는 중국 정부가 초청하고 북한 권력 서열 5위인 김기남 비서가 배웅할 정도로 양측 모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1970년대 초 미-중 간의 '핑퐁 외교'의 사례를 들어 '모란봉악단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두 나라는 악수를 나누려는 찰나에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고 말았다.

특히 이번 미스터리가 수속 폭탄 발언 논란 때문이라면, 그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핵 억제력'을 과시하고 싶은 김정은 집착과 이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진핑의 의지 사이의 충돌이라면 말이다.

어쨌든 12일 개성과 베이징에서 전해진 두 가지 소식은 한반도 정세가 얼마나 불안하고 불투명한지를 잘 보여준다. 금강산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남북관계는 당분간 기약 없이 표류할 것이다.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국제적 냉소와 불신도 커질 것이다. 악화된 북-중 관계는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에도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와는 다른 한반도 정세를 기대하는 건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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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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