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애국심은 어떻게 만나는가?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실크로드 역사 단상 ④

일전에 민주주의에 관한 방송에 프랑스 혁명 연구의 권위자인 최갑수 서울대학교 교수가 출연했다. 그때 최 교수의 발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1795년 총재 정부 이전까지 민주주의 하면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했다는 말이었다. 민중 지향적이던 자코뱅 세력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간접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형태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삼는 곳이 그리스 아테네이다. 기원전 6세기 말 이곳에서 사용된 민주주의의 어원이 '데모크라티아', 즉 민중(데모스)의 권력(크라티아)이었다. 데모스란 작은 행정 구역을 뜻하는데 그곳에 사는 일반 시민이 직접 도시의 정책 과정에 참여하고 결정하는 것이 데모크라티아(영어의 '데모크라시')였다. 어원이 이러하니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에 민중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필수 요소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 민중에 여성과 노예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역사적 한계지만, 그 한계 속에서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원형을 보여 주었다.

아테네에서 시작해 테베, 아르고스 등으로 확산되어 간 민주주의는 기원전 6~5세기의 세계에서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그리스 지역의 독특한 정치 제도였다. 당시 오리엔트 문명을 통일한 대제국 페르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 국가는 강력한 왕권에 기초한 전제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막아냄으로써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 진실은 이렇다!

우리는 전제 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가 매우 선진적인 문명국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통일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 비하면 그리스 지역은 후진적이었다. 많을 때는 1000개가 넘는 폴리스가 난립할 정도로 지역적 통일과 중앙 집권화에서 뒤처졌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후진적 조건에서 오히려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고대 문명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 인류 사회는 어느 곳이나 대체로 평등했다. '빈곤 속의 평등'이라는 말처럼 자연의 위협과 낮은 생산력의 압박 아래에서 모두가 일하고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명의 등장과 더불어 계층 분화가 나타나고 권력의 집중이 이루어졌다. 이런 경향이 빠르게 진행되는 곳일수록 부와 군사력도 집중되어 강대한 국가가 나타나기 쉬웠다. 중국이 그랬고 오리엔트가 그랬다.

여러 폴리스로 나뉜 고대 그리스에서도 권력 집중의 경향은 나타났다. 기원전 20세기경 인도유럽어계 민족이 남하해 형성한 미케네 문명에서는 다른 지역의 왕과 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전 1100년경 도리아인의 남하 이후 한동안 문자 기록이 없는 암흑기를 거친 뒤 곳곳에서 폴리스가 나타났는데, 여기서도 왕이나 귀족처럼 권력을 소수의 손에 집중시키는 세력이 등장했다. 아테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은 도시 국가라는 아테네의 객관적 조건과 강렬하게 정치 참여를 원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주관적 조건이 결합하자 민주주의라는, 당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는 '변종'이 등장했다. 아테네에도 왕정과 귀족정에 해당하는 정치 체제가 잇달아 들어섰지만, 똑똑하고 용감한 아테네 시민들은 이를 뒤집고 모든 시민이 권력을 분점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출현시켰다.

이것은 전제 왕정으로 가는 당시 세계 역사의 추세로 보면 '역주행'처럼 보이는 현상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그러한 쾌거를 이룩한 것은 어찌 보면 페르시아 같은 당대의 선진국에 비해 과거의 원시적 민주주의 시대에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킬 가치가 있는 '과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복원하고 지켜낸 셈이다.

▲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지 아크로폴리스. ⓒ강응천

'민주주의의 적'을 사전에 제거하라!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수호하는 과정은 그 어원적인 의미 말고도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먼저 민주주의의 비조인 클레이스테네스가 도입한 도편추방법을 보자.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이전에 아테네에는 '참주(티라누스)'라 불리는 독재관이 있었다. 참주가 재등장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 도편추방법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비밀 투표 형식으로 도자기 조각에 참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적어내는데, 6000명 이상이 같은 인물을 적으면 그 인물은 국외로 추방되었다.

도편추방법은 얼핏 보기에도 부작용이 불가피해 보이는 제도이다. 실제로 훗날 정략적으로 정적을 공격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민주주의가 정말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제도가 아니라 반민주적인 세력을 배제하는 제도이다. '민중의 권력'이라는 말 자체가 민중의 의지를 누군가에게 강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아테네 민중은 민주주의의 잠재적인 적을 배제하는 데 그들의 권력을 사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켰던 것이다.

우리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통해 친일파를 청산하려 했던 것도 그들이 단지 민족을 배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향후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위협 요소였기 때문이다.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친일파들이 잔존한 결과는 민족 자존의 훼손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위험이었다.

1987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국민은 5공 군사 독재에 저항하며 한 목소리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 구호에 담긴 뜻은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독재 정권과 그 지지 세력을 향후 민주 정치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이 6.29 선언의 수용으로 절반의 성공만 거두면서 온전한 독재 타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 정부의 구성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한 5공 세력이 '보통 사람'의 가면을 쓰고 선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해 대선에서 민주 세력이 쓰디쓴 패배를 맛보게 된 이유로 대개 양김의 단일화 실패를 꼽는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할 독재 세력의 청산을 이루지 못한 것도 못지않게 뼈아픈 일이었다.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향후로도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세력을 배제하는 것은 도편추방법의 사례가 알려 주는 민주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 192명의 전사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숨진 마라톤 평원. ⓒ강응천

마라톤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자명한 권리이지만 결코 자명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가 알려주듯 그것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시 그랬다. 안으로 독재와 싸워야 했고 밖으로 세계사의 추세였던 전제 왕권의 침략과 맞서야 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탄생 직후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거세게 흔들렸다.

기원전 490년 마르도니우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 본토에 상륙했다. 그들의 목표는 아테네였다. 동쪽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 페르시아군은 거침없이 아테네를 향해 진군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전령을 보내 지원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스파르타는 종교적인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아테네는 홀로 제국의 원정군을 막아내야 했다.

수적 열세였던 아테네군은 가운데에 약한 보병을 배치하고 좌우 날개에 최정예군을 배치하는 진을 짰다. 전투가 시작되자 페르시아군은 거침없이 아테네군의 중앙을 격파해 들어왔으나, 그 결과 좌우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테네의 정예군은 사생결단의 공격을 펼쳐 페르시아군 6000여 명을 죽이고 승리했다. 그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아테네까지 뛰어갔다는 병사를 기리는 것이 오늘날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이다.

한산대첩의 학익진을 연상케 하는 마라톤의 협공 작전은 민주주의의 주인공인 평민에 의해 수행되었다. 국가의 주인으로 올라선 평민들은 스스로 갑옷과 장창을 구입해 나라를 지키러 나섰다. 그들에게 국가는 곧 자신이었고 목숨 바쳐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온갖 구실로 병역을 회피하는 상류층 젊은이들의 행태와 대조된다. 반면 '헬조선'의 막장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잠시 미루고 입대를 위해 줄지어 선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조국일까?

마라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아테네 병사 192명의 무덤은 그들과 같은 평범한 민초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은 애국자인가? 잘 모르겠다면 먼저 나라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목숨을 바쳐 지킬 만한 대상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어느 누가 뜯어 말려도 당신은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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