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는 한국 사회 퇴행에 침묵해선 안 된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나는 반성한다

부끄러운 자기 고백을 해야겠다. 대학교 졸업 즈음 진로를 공부를 계속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여기서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목표에 따라 대학원으로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유학을 떠나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끝에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그 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시간 강사와 연구소 연구원 등의 과정을 거치고, 너무나도 운 좋게, 그리고 과분하게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임에는 틀림없으나, 진정한 '교육자'인지에 대해서는 떳떳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높은 수준의 학문적 역량을 가진 '연구자', '전문가', '학자'인지에 대해서도 당당히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학문의 길을 선택한 이후 학사, 석사, 박사를 따고, 강사, 연구원을 경험하고, 취직이 되기 위한 논문들을 쓰는 데에 몰두해 왔지만 정작 그러한 과정의 최종 목적지인 '교수'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원임에는 틀림없으나 교육 분야의 직업, 한 직책으로서 더 크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 교육자에게 꼭 필요한 과목을 듣거나 교육자로서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다고 언제나 더 진정한 교육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연구자이자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철학적으로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연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뿐인가? 교육자나 학자로서는 말 할 것도 없지만,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른으로서도 또한 과연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수업 외에도 각종 논문과 발표, 다양한 프로젝트와 학사행정업무 등, 무게가 만만치 않지만, 다른 직종과는 달리,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교수라는 이들이 담당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무를 져버리고 이기적인 삶을 살거나 정반대로 나만이 옳다고 우겨대며 권한을 남용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무엇보다도 바로 얼마 전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시절의 기억과 다짐들을 잊고, 낮은 자세로 많은 이들과 고민을 함께 하던 그 때의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본다.

먼저 무엇보다 권력에 취해 교육자로서의 자세나 태도를 저버리고 정치권이나 관료직으로의 진출을 꿈꾸며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려 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자신이 배운 것을 현실에서 적용해 보는 것일 뿐이라는 궤변 하에서 출세를 위해 학자적 양심을 저버리고 삶의 기본적 원칙마저 버리거나 평소의 지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적은 없었는지 고민해 본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권력을 얻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권력에 굴종하고 권력의 편에 서서 아첨과 궤변을 늘어놓은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또한 커다란 권력이 아니더라도 가정과 학교 등 일상생활에서의 미시적인 권력에 취한 적은 없었는지 돌이켜 본다. 특히 학생들에게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갑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고압적이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학교 바깥 사회에서도 아직까지는 사회에서 과도한 대접을 받는 교수라는 이름을 내세워 작은 권력이라도 누려보려고 과장된 행동을 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하면서 혹시 사실상 부를 독점하는 편에 서서 특권을 추구하고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편승하여 부도덕한 부를 쌓으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해 본다. 다수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나의 머리를 쓰지 않고, 나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정권을 지지하거나 세금을 많이 낼까봐 복지에 반대하는 쪽에 투표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나서서 기득권 세력의 어용적 앞잡이가 되어 그들의 머리와 입이 되려고 한 적은 없었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버리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져서 너무나 쉽게 나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처지가 낮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반말과 하대, 그리고 차별적 언사를 남발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특히 나의 출세나 성공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사람들과 높은 사람들에게는 90도로 굽신거리면서, 매일 보는 교직원이나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아는 척도 안 하고 다니지는 않았는지, 아니 오히려 나에게 인사를 안 했다고 역정을 낸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또한 학교 외에서는, 학교에서 여성 연구자 혹은 여학생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성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논리로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한 직언을 하지 않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아야 한다거나 괜한 분란을 조성하지 말자며 곪은 부위를 건드리지 않고 나만의 안위를 위해 눈치나 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단위에서 벌어지는 반민주적이고 부정의한 모습들에 눈을 감고 학생들에게는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라는 말을 함부로 해 오지는 않았는지 곱씹어 본다.

무엇보다 표리부동하고 앞뒤가 안 맞는 언행들을 해 오지는 않았나 고민해 본다. 나의 권리만을 강조하면서 피해자나 을로서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가해자나 갑으로서의 입장에서 자행해 온 잘못들에 대해서는 눈감지 않았는지, 겉으로는 거대담론적으로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서 미시적 삶, 나의 개인 생활에서는 정반대의 억압적 자세나 비도덕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특히 학생들이나 동료를 대할 때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깊이 자문해 본다.

사실 내 전문 분야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이 없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특정 전문 분야를 조금 더 안다는 것 외에 사실 그냥 한 '동네 아저씨'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잣대들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교수라는 사람들은 한 국가 내 최고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미래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교육자의 사명감 하나만으로도 모든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기본적 원칙을 못 지키다 보니 교수사회에서도 종종 성희롱과 부정비리가 적발되곤 한다.
바로 그러한 전문가, 학자, 교육자라면 과연 일상의 삶에서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할까 고민해 본다. 가지각색의 답이 나오겠지만, 그 어떤 거창한 말보다 그저 나만의 이익이 아닌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나의 양심을 지켜가는 기본적 원칙만 지키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본적 원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은 그 노력의 결과가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최근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 역사 관련 학자들의 반대 성명과 같은 원칙을 지키는 것, 나아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분야에서의 예를 들어 본다. 가령, 환경이나 토목과 관련된 분야 학자라면 4대강 사업과 같은 환경파괴적 대규모 토목 공사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언론과 관련된 분야 학자라면 정권의 언론 장악과 종편 허용 과정, 그리고 인터넷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에 대해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된다. 의료와 관련된 분야의 학자라면 의료민영화에 반대하고, 더 나아가 유럽과 같은 무상의료체제를 요구해야 한다. 도시공학이나 건축 관련 학자들이라면 재벌과 일부 특권층의 배만 불리는 도시재개발사업이나 소수 특권층의 재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주택건설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은 더욱 그 임무가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와 관련된 분야의 학자라면 미국식 주류 경제학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던 재벌 위주의 성장과 시장주의적 발전에만 치중해 왔던 과거를 반성하고, 시장의 실패를 조절하고 경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복지국가의 경제를 소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나 사회와 관련된 분야의 학자라면, 추상적인 이론과 서구중심적 담론을 넘어 현재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층의 부와 특권 강화, 민주주의의 퇴행적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행정과 관련한 학자들이라면 행정이나 정책에 대한 기술적 연구를 넘어 그동안 정당정치나 자본의 지배 등에 가려져 왔던 한국사회의 은폐된 지배 집단인 관료 지배 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공을 불문하고 교수들이 몸담고 있는 교육 분야에서는 말 그대로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자라면 한 사회에서 고등교육이 갖는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적 원칙을 져버린 채, 시류를 좇거나 단기적 이익에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교수가 권력의 의지에 좌지우지되고, 기득권 네트워크가 주는 특권을 좇아, 민주주의적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대학의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을 때, 과연 어떤 후학들, 학생들이 따르겠는가? 나아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선진국 수준의 무상 교육 제도로의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의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이다.

특히 현 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거의 모든 영역에서 후퇴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그러한 후퇴를 강제하는 정치에 대해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확실한 진리 앞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역사의 진보를 거스르는 편에 서 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은폐하기 위한 궤변을 만드는 데에 더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교육자가 해서는 안 되는 자세일 것이다. 즉, 표리부동하지 않고 지행합일을 이루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기본적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갖추는 전제는 소수 특권 권력 집단이 아닌,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연구하고 복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언제나 낮은 자세로 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반성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말뿐인 반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을 학생들에게 약속해 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