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는 이어도의 미래다?

[정욱식 칼럼] 3면이 바다? 3면이 전쟁터 될 판!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사이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이어도 문제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발단은 10월 3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중 간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을 하루 빨리 정하자고 제안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청와대는 이러한 내용을 누락해 발표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11월 1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리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빨리 한-중 해역 경계 획정 담판(협상)을 시작하자"고 말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자 국내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이어 이어도를 향해서도 야욕을 드러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이어도 상공에서 본 국립해양조사원의 해양과학기지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속내는?

중국이 이전에도 EEZ 협상 제안은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확대 해석을 경계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주목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중국의 제안은 10월 중순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된 직후에 나왔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EEZ 협상 제안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게 미국 편을 들지 말라는 견제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완공을 앞둔 제주해군기지와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군당국은 12월 1일 제주 기지전대 창설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제주 기지전대의 주된 활동은 이어도 수호로 잡혀 있다. 중국이 이를 의식해 선제적으로 EEZ 협상을 제안한 것인지는 추측의 영역이다. 하지만 조속히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어도 문제는 남중국해 및 제주해군기지까지 맞물리면서 더욱 악화될 소지가 크다.

이어도, 남중국해, 제주해군기지가 맞물리면

우선 주목할 부분은 남중국해와 관련해 언급 자체를 자제했던 박근혜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1월 4일 한민구 국방 장관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같은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러한 한국의 외교·국방 장관의 발언은 중국 및 미국의 장관들 앞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또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는 미국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미국 편을 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으로 연결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 표명은 한국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우선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언행은 중국의 불만을 야기할 것이고, 이는 한-중 간의 EEZ 문제를 포함한 한-중 관계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의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이 한국에게 지지와 지원을 요청하는 빌미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미국 편을 들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했어야 했다. 평화적 해결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이자, 미-중 간의 무력 충돌 발생 시 한국이 이 갈등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우려는 제주해군기지에서 비롯된다. 내년부터 이 기지가 본격 가동되면, 한-중 간의 마찰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상황을 상정해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 해군이 이어도 부근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중국도 맞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이 순서는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미 이어도 상공에는 한-중 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어 있다. EEZ 경계선을 둘러싼 이견도 여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측의 해군 활동마저 증가되면 한-중 간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될 우려가 크다.

또 하나는 미군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미 미 해군은 이 기지를 사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더 많은 기항지를 원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이 제주기지의 사용을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도 냉정한 현실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도 일부 전문가와 관영 매체를 통해 미군의 제주기지 사용 가능성을 경계해왔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해보면, 이어도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어 동아시아 해양 갈등의 또 하나의 축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우려는 나름대로 근거를 지닌다. 그리고 제주기지의 전략적 딜레마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 이를 총선과 대선에서 '안보 프레임'으로 이용한 이명박 정부, 균형외교를 상실하고 미국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박근혜 정부 모두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동해에선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시비를 건다. 서해에선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한의 갈등이 여전하다. 이에 더해 남해에서마저 긴장과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더구나 북방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정학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답을 요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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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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