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측근 지역구, 영덕의 운명은?

[함께 사는 길] ②연대가 필요하다

이곳 영덕은 한국 핵마피아의 심장이자 탈핵운동의 핵심고리이다. 이곳을 지킨다면 한국 탈핵은 시간문제다. 이미 확보해둔 부지에는 더 이상 핵발전소를 넣을 곳이 없고 삼척은 작년 주민투표 결과로 밀어 넣을 생각을 못 하고 있는데다가, 당장 급한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영덕 신규부지를 가서 보면 신규핵발전소는 물론 고준위 핵폐기장까지 한 번에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 영덕 핵발전소 예정지. 지대가 높고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핵발전소 부지로 적합한 곳이다. ⓒ함께사는길(이성수)

핵마피아의 심장 될 것인가, 탈핵운동의 핵심고리가 될 것인가

영덕은 지난 2012년 신규원전부지로 삼척과 함께 지정고시된 곳이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원전 축소 여론도 아랑곳없이 원전 확대정책을 밀어붙였다. 현대건설은 국내 원전 건설사업을 주도한 기업이고 지금도 삼성물산과 함께 원전 건설사업의 핵심 멤버다.

이명박 정부는 전기요금 상대가격 인하와 에너지와 전기수요 부풀리기 등으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대폭 확대하는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전력에서 원전비중을 41퍼센트(%)로 확대하면서 신규부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결국, 삼척과 영덕에 신규원전부지를 지정고시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 5년간은 에너지정책의 실패로 인해 정전 사고가 발생하고 비정상적으로 에너지수요, 전기수요가 급증한 시기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서 원전 확대 정책을 이어 나갔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비중은 29%로 낮아졌지만, 1차 에너지기본계획보다 전력수요를 더 부풀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필요한 신규원전 개수는 더 늘어났다. 결국, 지난 7월 23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영덕에 천지원전 1, 2호기를 2026년과 2027년에 준공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반면에 삼척에 들어설 신규원전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다. 단지 신규원전 2기가 더 필요한데 장소는 미뤄둔 것이다.

지난 10월 9일 삼척의 주민투표 1주년 기념식에는 1만여 명의 삼척시민들이 모였다. 작년 10월 9일 주민투표에서 68%의 투표율과 85%의 반대 결과를 낸 삼척에는 핵발전소가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현 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과거 독재 정부 흉내를 내더라도 주민투표의 효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삼척은 주민투표와 함께 현직 새누리당 시장을 누르고 무소속 탈핵후보를 두 배의 표차로 당선시킨 곳이다. 핵발전소 반대, 탈핵시장 당선을 위해 움직인 투표행위가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에서 현 정부여당을 공격할 수 있는 투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영덕을 핵마피아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든 영덕의 신규원전 부지로 지정고시 된 곳을 가보면 핵산업계가 이곳을 단순히 핵발전소부지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전기는 현재도 앞으로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확보는 시급한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50년에 가동할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를 지하연구까지 감안해서 오는 2020년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말에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한 계획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준위 핵폐기장인 심층처분을 위한 고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덕 천지원전은 계획된 2026년과 2027년 준공에서 미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선정은 코앞의 일이다.

▲ 지난 10월 20일 산자부와 한수원의 '10대 제안 사업' 발표회장 앞. 정작 주민들의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다. ⓒ영덕 핵발전소 건설반대 페이스북

영덕 신규원전부지의 한가운데 지명은 '석리'이다. 이름 그대로 돌산이다. 해안으로는 화강암 청돌에 수직절벽으로 이루어진 석산이 해변을 이루고 있고 안쪽으로는 석산개발사업이 돌을 캐느라 한창이다. 핵발전소 부지로는 적합한 곳이 아니다. 해안 절벽은 해발고도 20미터 이상은 될 것 같은데 그런 절벽을 깎아내고 발전소를 지으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될 것이다. 남쪽으로 해발고도가 낮아지는 곳에 양식장이 있는데 그 안쪽으로 2, 3기의 원전이 들어설 수는 있겠지만 부지 전체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기에는 부적합하다. 일단 핵발전소를 밀어 넣고 확보한 부지에 다른 핵시설을 들일 계획이 아닐까.

3선 경북도지사는 원자력클러스터 육성에 적극적이다. 울진-영덕-포항-경주를 잇는 원자력벨트에 원자력클러스터를 육성하기 위해 원자력 테마파크와 관련 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는데 제2원자력연구원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제2원자력연구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순환핵연료주기시스템 실증연구시설로 다름 아닌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이다. 일본 등의 사례로 봤을 때 이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까지 따라오는 시설이다. 그런데 이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과거 과기부 공무원 출신)이 영덕의 부군수로 있을 때 신규원전부지 신청이 이루어졌다는 소문이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미뤄보았을 때 영덕 신규원전부지는 핵마피아가 고대하는 종합선물세트로 핵발전소, 재처리공장, 고준위 핵폐기장이 제2원자력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설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직 군수 역시 제2원자력연구원을 무슨 황금단지가 되는 양 적극 유치하려고 한다. 영덕은 한국 핵마피아의 심장이 될 운명이다.

영덕, 2005년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까

영덕군민들은 2010년 당시 군수가 신규원전 부지를 신청할 때 부지에 있는 주민 399명의 동의만을 받은 것은 영덕군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후쿠시마,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나면 최소한 반경 30킬로미터는 고농도로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고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주변지역은 핵발전소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는 방사성물질로 오염되어 암에 걸리고 농수축산물 판매에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정작 피해를 입어야 할 영덕군민들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고 부지를 팔고 떠날 이들만 서명을 받았으니, 1970년대 독재시대에 원전 부지를 정한 방식과 다를 바 없었다.

영덕은 1980년대부터 세 차례나 핵폐기장 부지로 거론된 곳이다. 처음 두 차례는 잘 막아내었다. 하지만 마지막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영덕은 초토화되었다. 전북 군산, 경북 영덕, 포항, 경주는 핵폐기장 결정을 위해서 주민투표를 했고 다른 지역이 그러했듯이 영덕에서도 온갖 관권 선거, 돈 선거가 판을 쳤다. 영덕 북부지역의 핵폐기장 유치단체 중 하나에서만 23억 원의 돈을 뿌렸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핵심적으로 했던 어느 지역에서는 면사무소 앞 농성장에 나가는 주민들을 개별 접촉해서 단지 농성장에만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천만 원의 돈이 오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변심한 한 주민은 투표 일주일을 남겨놓고 지인 수백 명에게 핵폐기장 찬성 문자를 보내고 잠적해버렸다. 농민단체 일부 리더들은 한수원과 경찰 등의 접대를 받고 입을 닫아 버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지역 깡패들은 지원 나온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있는 사무실을 둘러싸고 위협했다. 그래도 당시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끝까지 이어나간 사람들이 이곳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 청년회, 영근회 회원들과 함께하는 주민들이었다. 당시 상임대표는 8일간 단식을 하고 농민단체 리더들은 주민투표소에서 참관인으로 참석해 부정선거를 발견하고 몇 시간째 투표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인구 4만 명밖에 되지 않는 영덕은 주민투표로 핵폐기장 찬성률을 가장 높일 수 있는 곳이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뿌리고 공무원 등 행정을 총동원했지만 찬성률은 경주시(89.5%), 군산시(84.4%) 다음으로 79.3%였다. 그 이유는 끝까지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투표율은 80.2%로 가장 높았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주민투표가 끝난 후 경주로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으로 확정되자 핵폐기장 반대운동에 나섰던 이들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핵심활동을 했던 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세 명은 구속되고 벌금을 받았다. 관련 활동을 해 왔던 이들에 대한 지역 차원의 불매운동과 왕따가 시작되었다. 옷가게, 식당, 여행사를 하던 관련 이들 중에 망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개의 사업체를 가진 분들은 모든 사업체를 접고 바지사장을 내세워야 했다. 군 단위의 지역사회에서는 행정이 마음먹고 왕따시키면 버텨내기가 어렵다. 농지에 창고용 컨테이너 하나 놓는 것도 허가가 나지 않아 경북도청까지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주에는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며 돈이 쏟아지는 핵폐기장을 뺏기게 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 2005년 영덕 핵폐기장 반대 운동. ⓒ환경운동연합

그렇게 10년이 흘러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삼척처럼 바로 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2005년의 경험이 너무나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한 반핵운동단체가 생기고 대중조직인 한농연에서 군의회에 주민투표 청원 공문을 내면서 조금씩 운동이 조직되어 왔다. 과거 핵폐기장, 핵발전소 유치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핵발전소 반대운동과 주민투표에 나서면서 운동은 본격화되었다. 현직 군의장은 누구보다도 강력히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 10월 21일부터는 주민투표 지지 단식농성까지 시작했다(이강석 영덕군의장은 단식 13일째인 지난 2일 안면 마비 증세 등으로 병원에 이송됐다.편집자). 정치인들의 움직임은 영덕의 핵발전소 반대여론이 높다는 방증이다.


조직된 힘이 핵발전소 막는다!

지역에서는 행정, 이장의 힘이 막강하다. 이들이 주민투표를 방해하기 시작하면 투표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군수와 국회의원은 정부에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하고 이를 특별법으로 못을 박으라는 요구와 함께 신규원전 추진 시 주민투표를 법제화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산업부가 10월 20일 10지원책을 제안했지만 영덕군수가 요구한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특별법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수는 당장 있을 11월 11~12일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군수는 현 국회의원의 전 보좌관 출신이고, 현 국회의원은 원전 확대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측근이다.

한수원은 주민투표가 불법이라며 지역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고 주민들에게 복숭아, 수박, 쌀을 돌리고 온천관광을 겸한 원전 견학을 보내고 있다. 핵발전소 찬성세력들은 현수막으로 '주민투표는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원전견학은 오히려 원전 주변 지역의 피폐한 모습을 목격하는 계기가 되고 물량공세는 영덕 주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뿐이다. 영덕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다수의 반대여론은 아직 굳건하다.

하지만 여론은 힘을 갖지 못한다. 조직된 힘이 나서야 한다. 나서서 반대운동은 못 하는 상황에서 주민투표로 분명한 의사가 확인된다면 이후 핵발전소를 막아내기 위한 운동은 더 힘을 얻을 것이다. 영덕에서는 이번 주민투표가 운동의 시작인 이유이며, 전국적인 연대가 절실한 이유이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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