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철조망은 탈북자 방지용이 아니다

[강주원의 '국경 읽기'] 압록강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다

평화의 섬 "교동도"에서 철조망과 중립 지역을 만나다

1박 2일 일정으로 (사)어린이어깨동무가 주최한 DMZ 평화 기행 '평화야 함께 걷자'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답사 전날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아들에게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반응은 나를 쓴웃음 짓게 하였다.

"나는 통일과 평화를 생각할 수 없어, 나에게는 권력이 없잖아!"

아들에게 한방 먹은 기분이었던 나는 답사 일정에 포함된 교동도에서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현지 전문가를 만났다. 그녀(김영애 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의 현장 목소리는 10년 넘게 '압록강은 공유한다'라는 의미에만 매달렸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남쪽의 교동도와 북쪽의 연백평야 사이의 강이자 바다인 저 곳은 남북의 중립 지역입니다. 철조망이 생기기 전 교동도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채취했습니다. 남북 사이에 이런 공유 지역이 있다는 것을 너무 몰라요. 북쪽 사람들은 요즘도 갯벌에 나와 어업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조망에 갇혀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몇 년 전 다시 찾아간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기억이 났다. 그곳에 전시해놓은 지도에 '남북 중립 지역 표시가 없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만을 품고 그동안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지 않았던 나를 발견하였다.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평화의 섬 교동도 관광 안내 지도'를 꼼꼼히 보게 되었다.

그녀의 설명과는 달리, 2015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선명하게 교동도와 연백평야 사이로 군사 분계선이 그어져있었다. 중립 지역과 군사 분계선, 현장의 목소리와 문화체육관광부 표준 지침으로 만들어진 지도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최근(2015년) 정치가들이 "대한민국 유일의 DMZ가 아닌 중립 지역(한강 하구 프리존)"을 언급하는 사례가 있지만 주를 이루는 기사 내용은 휴전 협정 이후 그곳에는 철조망이 있었고 군사 분계선의 의미를 강조한다.

휴전 협정의 당사자(미국, 중국, 북한)들은 한반도 서쪽 끝 한강 어귀 교동도에서 동쪽 끝 고성 명호리 해변까지 248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 분계선이라는 팻말 1292개를 박았다. (<주간경향> 2015년 3월 10일)

그녀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찾기는 쉽지 않다.

교동섬은 북한 연백군 바닷가와 불과 2~3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남북 화해 무드가 일기 직전까지도 철책이 없었다. 하지만 1997년 해안선 37킬로미터 가운데 25.5킬로미터에 높이 3미터가 넘는 견고한 '군사용 철책'이 쳐졌다. 섬 주민 황 아무개(66) 씨는 "6·25 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비교적 자유롭게 물에 나가 고기도 잡았는데 지금은 철책 탓에 엄두도 못 낸다." (<한겨레> 2006년 2월 19일)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은 정전 협정 1조 5항에 따라 한강 하구는 남북의 공유 하천이자 국경 지역으로, 군사적 의미가 없는 민간의 출입이 가능한 지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존재를 몰랐던 우리는 DMZ 영역으로 예단하며 분단의 철조망을 스스로 쳤던 셈이다. (<오마이뉴스> 2005년 7월 11일)

교동도와 관련된 블로거와 카페의 여행 후기를 살펴보아도, '철조망'의 역사를 약 20년으로 인식하는 것보다는 약 60년 넘은 것으로, 연백평야와 교동도 사이의 공간을 "공유 지역 혹은 중립 지역"이 아닌 "군사 분계선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더 강하다. 견고한 분단과 경계의 시각이 불과 20년 전 분단의 틈새에서 존재하던 다른 삶과 정전협정 내용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의 분단적 사고와 획일화된 시각이 소비되는 지역이 또 있다.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그곳의 철조망이다.

▲ 장백과 혜산은 탈북자의 주요 통로로 알려진 곳이다. 중국의 철조망 너머 압록강변을 걷고 있는 중국 사람. ⓒ강주원

압록강의 철조망을 바라보는 획일적인 시각

중조(북-중) 국경의 특징과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무리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 사람이 공유한다."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 물안개 그리고 해와 달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을 넘나들면서 삶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국경 지역에 2006년 전후부터 '철조망'이 등장하였다. 다음은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나의 연구 내용이다.

처음 설치된 철조망은 압록강의 특수한 지형 때문에 중조 국경이라는 구분이 쉽지 않는 곳에 세워졌다. 탈북자 방지를 위한 것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내용과는 달리, 철조망 설치는 양 국민의 교류를 막기 위한 목적보다는 중국 영토의 끝자락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116쪽)

하지만, 10년 전 중조 국경지역의 철조망을 바라보던 한국의 시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니 한번 고정된 분단의 시각은 현장의 삶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 사이, 철조망 세워진 이유는" (<프레시안> 2015년 9월 6일), "中, 압록강 일대 北 접경에 철조망 신설" (<연합뉴스> 2011년 3월 29일), "中, 북중 국경 두만강 하류까지 철조망 설치"(<연합뉴스> 2013년 8월 2일) 등의 제목으로 언급하는 핵심 내용은 "중국 쪽 철조망"의 "탈북자 방지 목적"이다. 이를 다루고 있는 기사 내용 중 하나를 들여다보면, "13년 만에 찾은 중국 단둥…삼엄해진 국경"으로 시작한다.

그곳은 징검다리 하나 있던 그 국경이 아니었다. 북한쪽에 이중 철조망, 그리고 중국쪽에도 철조망이 쳐 있었다. 그 개울은 그대로지만 접근은 철저하게 차단됐고 전에는 없었던 중국 국경경비대가 경비를 하고 있었다. 오고 갈 수 없는 그야말로 철의 장막이 되어 버렸다. (…) 산과 들은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국경 분위기는 삼엄했다. (…) 국경의 철조망은 북한 탈북자가 늘어나고, 북한에서 탈영한 군인이 중국에서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발생하자 3년 전 설치됐다고 한다. (한국방송(KBS) 2015년 9월 16일)

압록강을 공유하는 풍경들

위의 풍경과 철조망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지역은 단둥 시내 외곽에 위치한 '일보과'이다. 한 걸음에 건너갈 수 있다는 뜻 그대로, 북한을 지척에서 볼 수 있고 건너기도 했던 곳이다. 때문에 2006년 전후 제일 먼저 철조망이 생긴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은 철조망이 세워진 이후에도 한국 사람이 북한 병사를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철조망 때문이 아니고 여기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다른 선착장이 상류 쪽에 생겼기 때문이다.

▲ 철조망 너머 중국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다(2015년). ⓒ강주원

기자보다 한 달 먼저 나는 이곳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너머 중국 아낙네가 압록강에서 빨래를 하는 장면이다. 우연히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압록강변에서 10년 넘게 참여 관찰한 일상적인 내용이다. 기자의 해석대로 탈북자 방지용으로 세워진 "철저하게 차단된 철조망" 혹은 "오고 갈 수 없는 그야말로 철의 장막"이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

한국 사람도 수풍댐과 태평만 댐 주변의 압록강변에 잠시 멈추고, 압록강에서 발 담그고 과일을 먹으면서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열하일기>의 박지원이 도하한 장소 근처에서 그들이 승선한 유람선은 의주와 북한의 섬 사이를 가로지른다. 철조망이 없는 지역도 많다. 설령 압록강에 설치된 철조망이 있어도 중간 중간 끊어져 있고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다. 더운 여름 날,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은 압록강변의 양쪽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중국 사람과 북한 사람이다. 그리고 철조망 너머 압록강변에서 중국 사람이 농사짓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다. 진지하게 소나 개가 강 건너 북한으로 건너가는 일을 막기 위한 것도 철조망이 생긴 이유라고 말하는 촌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두만강변이다.

▲ 압록강변에서 수영과 휴식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 강 너머가 위화도이다(2015년). ⓒ강주원

이처럼, 철조망이 있지만 압록강에서 한국 사회가 상상하는 삼엄한 국경의 의미 혹은 탈북자 방지가 전부가 아님을 얼마든지 참여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와 연구자들의 시각과 해석은 압록강을 찾은 한국의 대학생과 관광객의 반응에도 재현되는 양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압록강의 철조망을 탈북자 방지용으로만 설명하는 내용에 대해서 "단지 오보 혹은 사실 외면이라고만 말해야 될까?" 아니면 "왜 그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철조망을 탈북자 방지용으로만 설명하는 것일까?", "이러한 분단의 시각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는 북한을 바라볼 때,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관점에는 어떤 이해관계와 성향이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의 시각이 한 지역의 삶 전체와 사실을 객관적으로 담아내기는 역부족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와 귀 기울이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 철조망 너머 중국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2015년). ⓒ강주원

▲ 철조망은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다(2015년). ⓒ강주원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그 이유를 교동도와 압록강의 철조망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획일적인 시각과 단일한 해석의 문제점에서 찾았다. 반대의 명분은 하나 더 있다. 평화 기행을 함께 한 아들은 강화도의 연미정에서 삼행시를 지었다.

"연속한 전쟁은 싫어요 /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북한 친구들과 / 정이 듭시다."

나의 아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교육 환경에 살기를 희망한다. 나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역사학자들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고로 나 또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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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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