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로 가는 지옥문, 열쇠는 민간 보험!

[서리풀 연구通] 요람에서 무덤까지 민간 보험

내년(2016년)부터 실손 의료 보험 등의 민간 보험 보험료가 대폭 오를 전망이다. 보험사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의료 이용이 많아져 손해율이 올라갈 경우 보험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위험률(보험 사고 발생 확률)을 올려 보험료를 인상하는데, 그동안 정부는 3년(실손 의료 보험의 경우에는 1년)마다 최대 25%까지만 위험률을 인상할 수 있도록 규제해왔다.

지난 1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보험 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에 따르면, 이러한 위험률의 인상 한도가 내년부터는 폐지되고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위험률을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 비율)이 높음에도 가격 상승이 억제됐던 자동차 보험이나 실손 의료 보험 등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실손 의료 보험 가입자 수는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여, 현재는 약 30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실손 의료 보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민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펴낸 한국 의료 패널 심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의 민간 의료 보험 가입률은 2012년 기준 80.4%로 나타났으며,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한 가구들의 평균 가입 개수는 2012년 4.64개, 월평균 납입료는 34만3488원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하게 된 데에는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를 민간 보험의 구매로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 저소득자, 저학력자, 비정규직일수록 민간 보험 가입률이 낮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관련 자료 : '가구주의 특성과 국민건강보험 인식이 민간 의료 보험의 가입에 미치는 영향', '고용 형태에 따른 민간 의료 보험 가입 현황 분석')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험료의 인상이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할 것임은 물론이고, 나아가 취약 계층들의 보험 가입을 더욱 어렵게 하여 의료 이용의 형평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임을 걱정하는 것도 기우가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17조 원이라는 사실에 더욱더 분통이 터진다. 이러한 돈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제때 투입된다면 서민들이 없는 돈 아껴가며 민간 보험을 또 구입해야하는 부담은 줄어들 텐데 말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민간 보험 가입과 보험료 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일부 연구들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권기헌 등은 2009년 중증 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암 환자의 본인 부담금 인하 정책이 암 보험과 일반 질병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지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2008~2010년의 한국의료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암 보험 대상자의 경우 월 보험 납입료가 평균 9만 원에서 최소 5만 원까지 낮아졌으며, 암 보험료 뿐 아니라 일반질병 민간 보험료 역시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아졌다.

이러한 효과는 연구 대상자의 사회 경제적 변수, 보험 형태, 건강 상태, 보험료 불입 기간 등의 요인들을 동일하게 보정한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관련 자료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과 민건 보험 지출액의 관계 분석 : 한국 의료 패널 자료를 활용한 DID 분석의 적용') 또 한국복지패널 2009~2011년 자료를 이용하여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의 변화가 노인의 민간 의료 보험 가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박경돈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 보장성의 10% 증가는 민간 의료 보험 가입을 5.6%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자료 : '의료 보장성과 민간 의료 보험 구입의 구축 효과에 대한 연구')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굳이 민간 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일련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간 보험 가입자 수가 줄지 않고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민 전체가 체감할 만한 수준의 보장성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한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으로 말미암아 한국 사회에서 민간 보험의 가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태아 보험에서부터 실버 보험에 이르기까지, 민간 보험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민간 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예상되는 지금, 국민들이 낸 건강 보험료를 곳간에 쌓아만 둘게 아니라, 낮은 건강 보장성과 높은 민간 보험료라는 이중 부담 속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들의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데 당장 투입해야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