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입시 마케팅' 맞선 '기억 투쟁'…승자는?

[시사통] 10월 12일 이슈독털

다시 '불복종'이 외쳐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오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서 이런 외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아가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고, 패할 수 없는 저항 같습니다. 국정화 시도의 출발점에서 교과서 내용이 왜곡선전됐고, 국정화 시도의 목적지에서 특정 사관 주입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 같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 싸움에서 완승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불복종'이 박근혜 정권의 굴복을 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도 들 법합니다.

하지만 예단은 금물입니다. 상황을 냉정히 봐야 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4월 일반인 2000명, 교사 5000명, 학부모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48.6%가 국정제를, 48.1%가 검정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 바 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2일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42.8%가 국정제를, 43.1%가 검정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갈림 현상은 국정화 문제가 진영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요. 평균수치를 넘어 구체적인 수치를 파고들어가 보면 더더욱 확실해집니다. 세대별로는 50대 이상이, 지역별로는 PK와 충청이, 지지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이 국정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왔으니까 진영대결의 구도가 재현되는 듯합니다.

판이 이렇다면 박근혜 정권으로선 '하이 리스크'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밑져야 본전'인 게임입니다. 향후 여론전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플러스알파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플러스알파의 진원지는 40대, 지금의 중·고교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층입니다. 이들의 여론은 리얼미터 조사결과 국정제 43.9% 대 검정제 42.0%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이 40대 학부모 세대를 상대로 '입시' 프레임을 짜고 있습니다. 최대 8종에 달하는 검정교과서 내용이 들쭉날쭉해서 수험생 입시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레토릭으로 학부모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최근에는 '빨간 칠'까지 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식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선전까지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이런 '입시 마케팅'과 '빨간 칠'이 먹혀든다면 팽팽한 균형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여론지형이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우입니다. 국정화 논란이 이제야 불거진 게 아니라 이전부터 진행돼온 논란거리였고, 박근혜 정권의 '입시 마케팅' 또한 이전부터 시도돼온 공략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40대에서의 팽팽한 찬반 의견은 오히려 의외일 정도입니다. 박근혜 정권의 이기심 자극에도 불구하고 40대 학부모층이 버티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중도층의 여론인데요. 리얼미터 조사결과를 보면 보수층의 62.2%가 국정제를, 진보층의 68.0%가 검정제를 선호하는 반면 중도층은 국정제 대 검정제가 46.6% 대 46.1%로 팽팽한 균형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중도층 또한 아직까지는 두 귀를 모두 열고 있습니다.

단순화하면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 아니 이젠 공방이겠죠. 이 공방의 향배는 40대와 중도층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문제는 설득의 수단, 설득의 논리인데요. 보수진영의 '입시'와 '반공', 진보진영의 '친일'과 '독재'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더 이상 효과적이지도 않은 것일지 모릅니다. 이미 여론에 반영될 만큼 반영된 낡은 소재일지도 모릅니다.

되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설득 방법은 듣게 하는 게 아니라 보게 하는 것이고, 관찰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겪어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전제하고 보면 국정화 공방은 다른 정책의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다른 정책의제가 미래형의 아직 겪어보지 않은 사안에 대한 선투자식 의견 개진을 요구하는 반면 국정화 문제는 20대 이상 모든 국민이 이미 겪어본 사안에 대한 후평가식 의견 개진을 요구합니다.

혈맥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의 경험', '내가 학교 다닐 때 봤던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기억과 평가를 조직하는 것, 이 '기억투쟁'의 전개능력에 따라 국정화 공방의 향배가 갈립니다.

(이 기사는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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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종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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