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오바마, 김정은이 내민 손 잡을까?

[정욱식 칼럼] 정전 협정 그대로 두고는 아무것도 못한다

'한반도 10월 위기설'이 지나가고 있다.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에 즈음해 우려되었던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는 일단 기우로 끝났다. 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기념사에서 핵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인민 제일주의'를 강조하면서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등장을 전후해 악화 일로를 걸어온 북-중 관계도 이번 행사를 거치면서 복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위기설은 두 가지가 맞물려 증폭됐다. 하나는 북한이 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시사'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한국 등 외부 세계가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즈음에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북한은 로켓 발사 일정을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특정일에 맞추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지 않은 것도, 또한 발사가 임박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또 환영할 만하다.

기실 북한이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를 시사한 것은 관련국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었다. 8.25 판문점 합의 이후 한-중 정상 회담, 미-중 정상 회담, 유엔 총회가 연이어 예정되어 있었고, 10월 중순에는 한-미 정상 회담이 열린다. 북한은 이러한 외교 일정에 주목하고 자신의 의제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시사해 한국, 미국, 중국의 우려를 자극하는 방식을 택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0월 7일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이러한 의도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담화에서는 "미국이 평화 협정 체결과 관련한 우리의 제안을 심중히 연구하고 긍정적으로 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 점들도 해소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핵심적인 우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인 만큼, 평화협상 시 이들 사안도 의제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다.

갈림길에 선 한반도

정리하자면 북한의 위성 발사 암시는 평화 협정을 의제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건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이자 너무나도 좋은 기회이다.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회담을 시작하면, 그 자체로도 한반도 정세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 1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 회담은 이러한 대타협에 시동을 걸 수 있는 좋은 외교적 공간이다.

지금 한반도는 중대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한-미 동맹이 평화 협상을 거부하고, 북한은 위성 발사를 위한 기술적 준비를 완료하는 상황이 만나는 것이다. 독자적인 위성 체계를 갖겠다는 북한의 집착과 평화 협상에 대한 한-미 동맹의 거부감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반면 북한이 내민 손을 한-미가 잡는다면 그 주도권은 한-미가 쥘 수 있다. 평화 협정 협상을 개시하면서 그 조건으로 북한에게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물론이고 위성 발사 유예 약속도 받아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화 협상 개시, 한-미 정상 회담에서 발표해야

흔히 평화 협상을 수용하면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평화 협상만으로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없다. 또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북한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롭다. 통일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평화 협상 개시는 한-미 동맹과 중국이 북핵과 미사일을 관리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4자 회담이나 6자 회담에서 '평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핵 시설 가동 및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유예한다'는 합의에 도달하면 말이다.

더구나 평화 협상은 9.19 공동 성명의 핵심적인 합의 사항이다. 한-미 동맹은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이 협상이 열리지 않고 있는 현실이 북핵 악화를 초래한 핵심적인 사유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창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한다.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한반도 정전 체제이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정전 상태가 6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극치이자 한반도를 지구상에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10월 16일 만나게 될 두 정상이 이를 직시하면서 평화협상의 문을 활짝 열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그 속에 북핵 해법도 담겨 있다.

(이 글은 <경향신문> 10월 10일자에 기고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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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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