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왜 지금 유엔에 가는가?

[서리풀 논평] 대통령이 유엔에 가는 이유

대통령이 유엔에 가는 이유

대통령이 추석 명절 기간인 이번 주말(25~28일) 외국에 나간다. 유엔에서 열리는 '유엔 개발정상회의'와 '제70차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것이다. 청와대 홈 페이지의 공지를 그대로 옮긴다. (☞관련 자료 : 대통령, '유엔 개발정상회의' 및 '제70차 유엔 총회' 참석)

9월 25~27일간 개최 예정인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는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승계하여 2016년부터 15년간 국제 개발 협력의 지침이 될 '2030 지속 가능 개발 의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가 채택될 예정입니다.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이하여 15일부터 시작되는 제70차 유엔 총회는 28일 일반 토의에 들어가 세계 각국 160여 명의 국가 원수 및 정부 수반이 대거 참석, 연설할 전망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유엔 회의 참석이 적절하고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사이 대통령의 실속 없는 외국 방문이 비판받는 적도 많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물론, 아무 준비 없는 의전과 이벤트가 되면 다 공염불이다.

왜 이번 회의와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가? 대통령의 방문 목적 가운데 핵심은 25~27일의 '2015 지속 가능 개발 정상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다.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다른 데에 쏠려 있지만, 이 회의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상 회의이므로 대통령을 빼고는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도 따로 없다.

국제적으로 '지속 가능 개발'이라는 의제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앞으로 적어도 15년간 국제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 분명하고, 한국도 직접, 간접으로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마음에 들든 아니든,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어떤 역할을 요구받고 또 해야 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 그리고 의지를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 유엔에 가는 것이다.

정상 회의에서 다룰 '2030 지속 가능 개발 의제'의 내용은 유엔의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 (☞관련 자료 : Transforming our world: the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그냥 듣기 좋은 말을 두루 동원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한 마디 한 구절이 모두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만들어진, 말하자면 지금 인류의 고민과 도전, 과제가 집약된 말이면서 개념이다. 기존 질서를 반영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것조차 현실임을 잊지 말자.

지속 가능 개발 의제의 본론은 단연 '지속 가능 개발 목표'다. 앞으로 자주 듣게 될 말이니, 영어 표현도 익숙해지는 것이 편리하겠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약자는 SDGs로 쓴다. 앞으로 15년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국제 사회가 같이 노력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다.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는 중요하고 시급한 공동의 과제들이 망라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7월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펴낸 보고서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자료: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 수립 현황과 대응 방안) 17개 목표는 여기에 옮겨 적을 가치가 충분하다(번역은 보고서를 그대로 따랐다).

1.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
2. 기아의 종식, 식량 안보 및 영양 개선과 지속 가능 농업 강화.
3. 건강한 삶의 보장과 모든 세대에 복지 증진.
4.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 보장 및 평생 학습 기회 증진.
5. 성 평등 및 모든 여성과 여아의 역량 강화.
6. 모든 사람들의 식수와 위생 시설에 대한 접근성과 관리 능력 확보.
7. 모두를 위한 적정한 가격의 신뢰성 있고 지속 가능한 현대적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 강화.
8. 포괄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과 완전하고 생산적인 고용, 그리고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
9. 회복(복원) 가능한 인프라 건설,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화 및 혁신 촉진.
10. 국내적 또는 국가 간 불평등 경감.
11. 회복력 있고 지속 가능한 도시와 거주지 조성.
12.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 양식의 보장.
13. 기후 변화와 대응.
14.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양, 바다, 해양 자원의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
15. 육상 생태계의 보전, 복원 및 지속 가능한 이용 증진, 지속 가능한 숲 관리,
사막화와 토지 파괴 방지 및 복원, 생물 다양성 감소 방지.
16.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 촉진, 사법 접근성 확보,
모든 차원에서 효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포용적인 제도 구축.
17. 이행 수단과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비교적 간략하게 목표를 설명한 보고서의 분량도 370쪽을 넘을 정도다.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은 목표에, 해야 할 일까지 가면 쉽지 않은 도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목표 3의 "건강한 삶의 보장과 모든 세대에 복지 증진"을 예로 들어보자. 9개의 세부 목표와 4개의 세부 실행 목표로 되어 있는데, 인류가 당면한 대부분의 건강 문제, 그 중에서도 난제 중의 난제들을 모아 놓았다(코이카 보고서의 41쪽 이하 참조).

개발도상국의 골칫거리인 모성 사망, 어린이 사망, 중요한 전염병(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이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정신 건강, 비전염성 질환, 마약과 알코올 남용, 교통사고, 가족 계획과 생식 보건, 보편적 건강 보장, 환경 보건까지 포함했다. 게다가 담배 규제, 의약품 지적 재산권, 의료 인력, 국제적 건강 위험 관리 등 만만치 않은 세부 실행 목표 네 가지까지 보태야 한다.

제시된 목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는 개발도상국, 저소득 국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신 건강, 비전염성 질환, 교통사고, 환경 보건이 어찌 '후진국'(?)만의 것일까.

보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득과 개발 수준에 무관하게 모든 나라의 공통 과제를 제시했다는 것이 2015년까지 진행된 '새천년 개발 목표(MDGs)'와 큰 차이를 보인다. 지속 가능 개발 목표는 소득이 높고 사회가 발전한 나라에도 해당된다. 건강, 에너지, 고용, 불평등, 도시, 소비, 기후변화, 환경, 평화 등이 그렇다.



며칠 후 열리는 '2015 지속 가능 개발 정상 회의'는 이런 목표와 그 의의를 확인하고 공동으로 결의하는 행사다. 한국의 대통령도 한국이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에 어떻게 동참하고 기여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구로 보나 경제 규모로 보나, 우리에게는 모범을 보일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

먼저, 우리가 목표를 실천해야 할 당사자의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처럼 저소득 국가를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어떻게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 나갈 것인지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 에너지, 고용, 불평등, 기후 변화, 평화가 남의 일인가, 우리 또한 당사자다. 모범적인 실천 계획을 내놓는 것이 다른 국가들이 기대하는 것일 터.

또 국제 개발 협력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도 말해야 할 것이다(그러리라 예상한다). 저소득 국가와 어떻게 협력하고 그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명확한 의지를 표명하는 일을 말한다. 속단인지 모르지만, 대통령까지 가서 말하는 기회지만 큰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해 왔던 해외 원조의 연장선에서 약간의 원론적 다짐을 말하는 정도가 아닐까.

큰 기대는 아니지만, 희망의 최대치는 따로 있다. 새 목표를 계기로 한국의 원조가 진정한 '협력'(국제 개발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100개가 넘는 나라의 정부수반과 교황까지 참석하는 자리에서 한국 대통령이 앞장설 수 없을까. 원조는 국익이 아니라 인도주의를 원칙으로 해야 하며, 한국이 먼저 실천하겠다고.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무엇보다 국민과 여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토대가 부실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속 가능 개발 정상 회의에는 관심조차 없는 언론들을 보라(이들은 다시 대중의 관심사, 그리고 정치를 반영한다). 다자 외교, 중국이나 일본 정상과의 회담 여부, 대북 메시지, 새마을 운동 전파 같은 국내용 의제를 다루느라 바쁘다. 이래서는 대통령인들 진지한 제안과 결의를 말해야 할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

여건은 이처럼 어렵지만, 다가오는 새로운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속 가능 개발 의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국제 규범과 질서, 그것이 한국을 둘러쌀 현실의 실체다. 아주 실용적으로 보더라도, '소프트 파워' 없이 국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이 이 질서의 특징이란 점을 강조한다. 국익을 떠나 평화와 도덕의 책임으로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지속 가능 개발 의제와 목표가 한국 안으로 들어오고 우리 안에 '내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때, 대통령의 유엔 방문이 성과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준비 없이는 성과도 거두기 어려운 법,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대통령의 외교를 뒷받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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