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날을 어떻게 보냈는가? 대개는 사회복지 종사자에게 표창장을 주거나 위로 잔치를 해왔다. 국민의 복지권 증진을 위한 현명하거나 참신한 복지 정책이나 '복지 5개년 계획'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고, 대충 행사로 때우려 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모든 국민의 복지 증진을 도모해야 할 사회복지의 날이 기껏 사회복지 종사자를 위로하는 날로 왜곡되고 축소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반납하고 싶은 복지 꼴찌, 고통 1등 금메달들
우리 국민의 '삶의 질(복지)' 현황은 어떠한가? 수없이 회자하여 이제는 국민 상식이 되어버린 수치들.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노인 자살률 OECD 1위, 노인 빈곤율 OECD 1위.
노동 분야는 어떤가? 근속연수 5.1년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고용이 가장 불안한 나라 1위, 남녀 임금 격차 1위, 산재 사망률 1위, 연간 노동 시간 2위. 가계는 어떤가? 가계가 부담하는 공교육비 비율 OECD 1위, 가계 부채 증가율 OECD 1위. 이런 것들이 쌓여 복지 충족지수 OECD 31위, 국민행복지수 OECD 33위, 아동 청소년 삶의 만족도 OECD 꼴찌.
"복지 예산이 100조 원이 넘었네…" 하는 기사를 보았음에도 국민 복지 실태가 처참하기까지 한 것은, 과거보다 복지 지출이 증가했음에도 여전히 절대 규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에 인색한 것은 2014년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이 10.4%로 OECD 평균 21.6%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이 증거다. 복지 지출의 비중은 국민의 생애 주기별 삶의 과정(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거, 의료와 건강, 노후 생활)을 개인 복지로 보느냐 사회복지로 보느냐에 따른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책임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 책임을 보완재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국민 개개인의 삶을 자유주의 관점에서 소극적 보충적 최소한으로 지원할 것인가, 사회 연대의 관점에서 적극적, 보장적, 최적으로 지원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국민 사회 철학의 소산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복지 철학 논쟁의 날이어야
복지 재정의 규모를 논쟁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 복지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 그 합의 수준에 따라 그 수준만큼의 재정을 마련하면 된다. 재정 마련 과정에서 상위 계층 10%가 전체 소득의 44.8%를 차지하여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한 국가임도 문제가 될 것이다.
사회복지의 날에 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면, 그전 단계에서 정부는 국민과 함께 핵심 쟁점들을 토론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 문제의 원인과 책임의 범위와 수준, 그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리될 사회 규범과 연대의 범위와 수준, 예산에 맞추어 복지를 짤 것인가, 복지에 맞추어 예산을 짤 것인가? 증세는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필요하면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자 증세로 할 것인가 보편 증세로 할 것인가? 일반 조세로 할 것인가, 목적세로 할 것인가?
사회복지의 날은 이런 쟁점들이 논의되는 날이길 바란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지금의 소강 사회에서 살 것인지, 대동 사회 복지 국가에서 살 것인지에 관한 국민의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의 21세기 복지 비전이고 자산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표창장 주고받는 날이 아니다
현장의 복지 운동 사회복지사들은 복지 시민 단체와 함께 2012년부터 사회복지의 날이 되면 광화문 광장에서 사회복지의 날을 그 제정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시행하라고 촉구해 왔다.
"사회복지의 날은 표창장 주고받는 날이 아니다. 노인 빈곤, 청소년 자살, 주거비 폭탄, 소득 양극화,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복지 국가 십 년 대계를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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