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트레이드', '숨은 카드' 빛난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문, 진짜 함의

야구의 트레이드

프로야구에는 트레이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자기 팀에서는 주전으로 뛰지 못하거나 잠재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선수를 다른 팀에 보내고, 우리 팀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선수를 그 팀에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트레이드에 의외로 중요한 선수가 들어있거나 선수의 수가 많아지면 보통 대형 트레이드, '빅딜'이라고 부릅니다.

올해 한국 야구에서도 그런 빅딜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롯데와 KT는 서로 다섯 명과 네 명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는 강민호에게만 가렸지 사실상 다른 팀에서는 주전감인 장성우라는 포수가 있었고, KT는 팀의 차세대 에이스인 박세웅과 마무리 이성민을 내보냈습니다. 내심 아픈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화와 기아도 4대 3의 비교적 큰 빅딜을 성사시켰습니다. 한화는 드래프트 1순위에 계약금 7억 원을 받은 유창식을 보냈고, 기아는 빠른 공을 가진 좌완으로 선발과 중간이 모두 가능한 임준섭을 내주었습니다. 유창식과 임준섭은 모두 좋은 자질을 가진 왼손투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현재의 팀에서는 잘 안 되는 것 같으니 서로 바꾸어서 잠재력을 키워보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빅딜에는 숨은 카드들이 있습니다. 원래는 1:1 트레이드를 진행하다가 서로의 속셈이 너무 드러나 타협이 어렵다든지, 손익 계산이 확실치 않아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에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선수들을 몇 명 더 끼워 넣는 것입니다.

이런 선수들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교환되는 선수가 많아지면서 상대에게 필요하고 아쉬운 부분을 추가로 역제안 해서 꽉 막혔던 트레이드의 교착점을 풀어냅니다. 둘째로 트레이드의 키가 되는 선수들이 나중에 잘 안 풀렸을 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입니다. 셋째로, 언론이나 일반 팬들이 보기에는 중요한 선수들이 아니지만, 내심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력의 핵심에 있는 선수들을 교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의 경우는, 처음부터 그것을 기대했다기보다 트레이드를 진행하다보니 우연히 서로에게 맞는 카드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 한화와 기아의 트레이드에서 김광수나 이종환 같은 선수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김광수는 프로경력 15년차에, LG, 한화를 거쳤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6월에 기아에 이적한 이후 팀의 구원투수 중에 가장 낮은 방어율을 보이며 팀의 필승조가 되었습니다. 이종환은 한화로 옮긴 후 주로 대타로만 나오면서도 3할 이상을 치며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트레이드는 보통 감독들끼리 만나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단장급이 나서서 구단의 프런트끼리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종종 드물기는 하지만 꽉 막힌 부분을 우연히 사장급들이 만나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남북 간 빅딜의 진짜 함의

이번에 남북관계에서 성사된 빅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야구의 대형 트레이드를 닮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남북은 서로 협상의 교착상태, 흔히 데드록(dead-lock)이라고 부르는 상황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뢰를 자신들이 묻은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번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사과가 없이는 대북방송을 중단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번복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협상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야구에서 트레이드 카드가 나왔다가도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은 서로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럴 경우에는 그냥 접으면 됩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상호 간의 무력충돌이 전략적으로 보복적 양태, 즉 적의 도발에 대해 더 큰 응징으로 대처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전쟁들이 우발적인 계기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상황을 장시간 지속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어느 쪽이 먼저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협상이 시작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남북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합의점이었을 것입니다. 언론에서의 호들갑과 달리 처음부터 이런 답이 나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데드록 상태에서 협상에 임해본 적이 있는 분들에게는 아마도 이번 협상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며칠 간 시간을 끈 것은 그 답을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한 연기였겠지요.

필요한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정책적, 외교적 협상 과정에서는 협상의 실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 뿐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외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독재적 통치가 가능한 북한보다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였다면 대부분의 언론이 유감을 결코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호의적인 언론 환경을 이용한 것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 간 합의의 핵심은 북한이 유감을 표명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과가 아니라 유감의 표명에 그쳤다고 비난하는 일은 정치적 외교적 협상에 대해 함께 논의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힐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 남북 합의의 과정과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것, 그리고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점은, 우선 우발적이고 파행적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서로가 그러한 방식의 충돌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의사를 확인한 것, 그리고 협상의 외양을 적절히 갖출 줄 아는 요령을 양측이 모두 잘 발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 왼쪽부터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당당 비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병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홍용표 통일부 장관. ⓒ청와대

트레이드로 따져 본 남북합의문

그럼 이제 차분히 이번 트레이드의 전체 외형과 내실을 따져볼 때입니다. 먼저 1:1 트레이드, 즉 북한의 사과와 우리측의 대북방송 중단이라는 맞바꿈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합의문 작성을 용이하게 하고 해석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 여러 카드들이 추가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대북방송을 중단하면 북한이 준전시체제를 지속할 이유가 없으니, 4항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와 직접 연관된 조항은 2항과 3항인데 오히려 이 두 조항 앞에 다소 뜬금없고 별 내용도 없는 1항을(남북 당국 회담) 넣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5항, 다양한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6항도 추가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트레이드는 그래서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우선 1:1 트레이드에서 우리 쪽 선수의 가치를 높게 보고 상대 팀 선수를 평가절하하려는 본능을 가진 사람들의 심기를 적절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받았다고 여기고, 북한에서는 사과 없이 대북방송을 중단시켰으니, 남북의 정상은 모두 자국에서 뛰어난 협상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둘째로 트레이드의 숨은 카드가 썩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 카드는 평소에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경직된 두 팀 사이에서 먼저 논의하기 어려웠던 사안입니다. 그런데 마침 필요성이 제기된 트레이드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어간 것치고는 그 의미가 상당합니다.

우선 이산가족 상봉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남북간의 다른 어떤 교류·협력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일은 중요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이 조항에 합의한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1번과 6번 조항은 남북이 지속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의사표명인데, 이것 역시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들의 부상이 있었고, 남북이 무력 충돌의 위기까지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 남과 북은 모두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좀 더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두 조항은 향후 실제 진행 여부를 떠나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이번 빅딜의 주체가 누구였느냐가 불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이번 합의가 판문점에서 나왔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우리 팀의 감독은 구단주나 사장의 확언 없이 트레이드를 독자적으로 성사시키기 어렵습니다. 한미관계의 비대칭적 측면과 더불어 무엇보다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을 남측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내용은 베이징이나 뉴욕에서 북미 간에 사전 합의되고, 그 내용을 다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판문점에서 김관진-황병서 간에 이 내용이 독자적으로 합의되었다는 주장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이것이 단지 억측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전시작전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논리에 먼저 답해야 할 것입니다.

아쉬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 하에서 남북이 비교적 무난한 합의를 이끌어 낸 점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평소의 이미지를 벗고 유연성을 발휘한 박근혜 정부의 협상전략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유리한 언론환경을 이용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조중동과 연합뉴스, TV조선과 채널A가 북한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이해하고, 불필요하게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문의 숨은 선수들이 기량을 잘 발휘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트레이드의 주요 선수는 2번과 3번 선수들(합의문 2항과 3항)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두 팀의 성적은 1번과 5번, 6번 선수에게 달려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이 세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 주기를 진심으로 또한 간절하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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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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