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아베, 이 대목은 참 닮았다

[복지국가SOCIETY] 일본의 노동 시장 개혁에서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

현재 진행 중인 일본 임시 국회의 최대 쟁점은 아베 정권이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제출한 안보 관련 법안이다. 이 법안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다른 이슈를 압도할 만큼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임시 국회에서 어떻게든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과 심의 일정을 상의한 후 의결하던 그 동안의 관행을 깨고 중의원에서 일방적으로 가결시켰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중의원에서 강행 체결한 또 다른 법안이 있는데, 바로 노동자 파견법이다. 노동자 파견법 개정 또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건으로 안보 관련 법안이 아니었다면 더욱 큰 주목을 받았을 중요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아베 정권이 한정적 정사원 제도 및 근로 시간 유연화와 함께 일본 고용 시스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노동 시장 관행과 사회 환경 변화

일본 고용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신규 일괄 채용, 연공 임금 제도, 직능 자격 제도, 장기 고용이었다. 즉 기업이 졸업 예정자를 일괄 채용한 후 인사 배치를 하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부서와 업무에 전환 배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직무에 따라 임금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어려웠다. 대신에 노동자의 잠재적 능력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그 능력이 연차에 따라 증가할 것으로 가정하는 연공 임금 제도가 적용되었다. 이는 각 노동자의 생애 주기에 따라 늘어나는 생활비를 보충하는 기능을 하여 생활급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연공 임금 제도는 입사 당시의 낮은 임금을 근속 연수에 따라 보상하는 측면도 있는데, 이는 장기 고용이라는 전제 속에서 기대될 수 있는 제도였다. 결국 신규 일괄 채용, 연공 임금 제도, 직능 자격 제도, 장기 고용은 상호 보완 관계를 형성하면서 일본 고용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보호받는 것은 남성 중심의 정규직 노동이었고, 비정규직 노동은 정규직 노동 시장에서 강하게 분절되어 있었다. 정규직 노동 시장과 비정규직 노동 시장 간의 이동은 어려웠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과 복리후생 면에서 열악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부분 여성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남성 가계 부양자의 가계 보조적 임금만으로도 충분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논리가 이들의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일본 고용 시스템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 이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던 일본 고용 시스템은 1990년 버블 붕괴에 따른 경제 침체와 국제 경쟁 압력 강화라는 대외적 요인 속에 일본 경제 발전의 장애 요인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또 일본 고용 시스템 속에서 유지되어온 남성 부양자 모델도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어졌다. 한 부모 가족이나 단신 세대가 늘어나면서도 열악한 상황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오히려 증가했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노동 시장 개혁과 노동자 파견법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된 것이 노동 시장 유연화였다. 여기에는 정규직 노동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비정규직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조치 중의 하나가 파견 노동 확대였다. 파견 노동은 간접 고용 형태로 일본 고용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던 신규 일괄 채용, 연공 임금 제도, 직능 자격 제도, 장기 고용과는 배치된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인재를 시간급에 따라 고용하는 파견 노동이 이러한 기존 관행들 밖에 존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몇 번의 법 개정으로 파견 노동 시장은 대폭 확대되었다. 1999년 법 개정으로 전문 업종에 한해 허용되던 것이 건축업, 제조업, 의료 관계 등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파견 노동이 가능하게 되었고, 2003년 법 개정으로 제조업까지 포함되었다.

▲ [그림1] 노동자 파견법 개정안 핵심 내용. <아사히신문> 2015년 6월 11일자.
이에 파견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2012년 민주당 정권 때의 법 개정으로 불법 파견 규제와 파견 노동의 무기 고용 전환 등의 규제 강화가 이뤄졌다. 해당 규제는 오는 10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를 무력화하고 다시 규제 완화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파견법의 규제 대상을 업무에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종래에는 파견 업무 기간을 1년으로 하고 최대 3년까지 갱신할 수 있도록 했지만, 파견 노동자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더라도 이 기간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파견 고용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그림1] 참조).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이번 안이 평생을 파견 노동자화하는 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용 안정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3년이 경과했을 때 파견 회사는 ① 사용 사업주에 대한 직접 고용 의뢰 ② 다른 사용 사업주의 소개 ③ 파견 회사가 무기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고용 안정 조치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전제는 노사뿐만 아니라 파견 사업주와 사용 사업주 간의 대등한 관계이다.

불균형한 권력 관계 속의 교섭이 가져올 결과

하지만 이런 대등한 관계는 간접 고용 형태에서 실제로 유지되기는 힘들다. 파견 노동 등의 간접 고용 형태가 본질적으로 파견 사업주보다는 사용 사업주, 노동자보다는 사용자에게 월등한 힘의 우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용 사업주로부터 받는 수수료에서 영업 이익을 내야만 하는 파견 회사나 하청업체는 사용 사업주의 의향에 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파견 회사가 사용 사업주에게 돌아갈 피해를 우려해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적용하는 것을 꺼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 회사의 사용 사업주에 대한 직접 고용 의뢰와 다른 사용 사업주의 소개를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효성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간접 고용 형태에서는 파견 계약이나 하청 계약의 변경을 통해 상대적으로 간단히 해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노사 교섭에서 노동자 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이런 힘의 관계 속에서의 고용 안정 조치는 파견 노동자를 더욱 불리한 처지로 내몰 수도 있다. 예를 들면, 3년이 경과했을 때 고용 안정 조치가 적용된다면 사용자는 3년이 되기 전에 그 계약을 해지하려고 할 것이며, 사측이 우위에 서는 노사 관계 속에서는 사측의 바람대로 실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은 단지 법 규제에만 초점을 맞춘 노동시장 개혁은 의도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법 규제와 함께 기업별 노동조합을 포함한 노사의 권력 관계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고용과 복지의 관계 재구축

노사의 권력 관계와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가 고용과 복지의 관계 재구축이다. 파견 노동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일본에서 유지되어 온 기업 내 포섭은 쇠퇴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인생 주기에 따른 생활비 증가는 일본의 고용 시스템 내에서 해결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고용이 복지를 기능적으로 대체해 왔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정규직 고용에 포섭되지 못하는 다양한 고용 형태의 출현은 고용을 통한 복지의 기능적 대체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기존의 고용과 복지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복지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고용과 복지의 관계 재구축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논의는 유럽과는 다른 문맥에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소득 보장에 따른 빈곤 퇴치가 노동 시장 참여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 복지와 더불어 노동 시장 참여를 중시하고 있다. 즉 소득 보장만으로는 빈곤 퇴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동 시장 참여가 중시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고용을 대신할 소득 보장이 제도적으로 미비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유럽과는 다른 출발선에서 고용과 복지 관계의 재구축을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복지 확충보다는 원활한 노동 시장 간의 이동과 노동시장 참여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정리하면, 일본 노동 시장의 개혁 논의에서 부족한 부분은 노사의 권력 관계 및 고용과 복지의 바람직한 관계 재구축이 등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비정규직 보호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들이 대등하게 노사 교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관심 밖의 문제이다. 한국 역시 복지와 고용 관계의 재구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엽적 수준의 논의에 머물고 있다. 바람직한 노동시장의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의사 결정 구조와 분배 시스템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참여와 타협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준비해야 할 것은 결연한 의지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의 상호 신뢰 구축과 서로의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전의 제시이다.

(안주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도코하대학 전임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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