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메르스 사건의 공통점은?

[복지국가SOCIETY] 위험 사회의 근본적 대안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 그해 4월경 아산병원에 입원했던 산모들이 원인 모를 급성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 산모들이 사망하는 원인을 모른다는 뉴스는 우리 사회를 긴장시켰다. 사망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사망 원인을 아는 것과는 다른 큰 공포를 자극했다.

원인 미상 간질성 폐 질환의 등장과 상황 전개

그해 8월 31일 정부는 산모들의 사망 원인이 된 제품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발표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의 수거를 권고했다. 산모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질병의 이름은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불렸다. 이 질환의 양상은 일반적인 감기 증상과 유사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감기로 알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에서 낫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그런데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감기 증상이나 통상적인 호흡기 질환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피해자들은 면역체계에 따라 버티는 정도가 달랐다. 처음에는 양상이 완만했다. 식욕이 떨어지고 살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다 급성 호흡 곤란 상태에 빠졌다. 그제야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상황은 이미 너무 늦게 됐다.

많은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갔음에도 당시에는 증상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또 그에 따른 정확한 치료법도 없었다. 당시는 질병관리본부 역시 역학 조사에 착수하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했다. 특히 아산병원을 중심으로 급성 간질성 폐 질환 환자들이 입원했고, 역학 조사가 진행되면서 정부는 그해 8월 31일 마침내 특정 원인을 지목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건 :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화학물질 사고

'원인 미상 간질성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지면서 피해자들은 어이없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 조사를 종합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 물질이 몸 안에 침투해 폐를 딱딱하게 굳게 하는 현상 즉, 섬유화를 야기해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질병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제때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화학 물질'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바이러스 등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조사를 벌였지만 계속 헛발질했을 것이다. 그러다 환자 인터뷰 등 여러 경로를 거쳐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게 됐을 것이다. 이후 정부가 진행한 실험 결과, 급성 간질성 폐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의 연관성 즉, 환자-대조군 역학조사 결과 폐 손상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의 교차비가 47.3%로 나타났다.

정부는 제품 수거 명령을 발동하는 등 부산한 대응에 나섰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정부에 피해자 접수해서 판정받은 이들이 530명이다. 이 중 사망자는 140명이다. 환경보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전대미문의 '바이오사이드' 사건, 즉 화학 물질이 사람 몸에 침투돼 엄청난 살상을 저지른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흘렀다. 많은 시민은 이 사건이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소송하며 대응하고 있다.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에 대한 국회 결의안이 채택되고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되면서 정치권의 압박이 심해지자, 정부는 환경보건법 시행령 조문 한 줄을 개정해 피해자 일부 구제에 나섰다. 구제의 내용은 긴급 의료비 지원과 장례비 지원이다. 정부의 의료비와 장례비 지원은 피해등급 4단계 혹은 5단계 중 1, 2단계 판정자에 국한됐다. 의료비 등 지원 역시 가해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한다. 즉, 정부가 책임을 인정해 스스로 피해 대책에 나선 것이 아니라, 국회와 여론의 압력으로 피해자 의료비 지원을 선불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정부 피해 구제의 본질이다.

엄청난 화학 물질 참사 : 책임지지 않는 정부와 기업

가해 기업들은 또 어떤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최대 가해 기업은 '옥시싹싹'이라는 제품을 판매한 레킷벤키저라는 다국적 기업이다. 한국지사는 레킷벤키저 코리아로, 옥시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 피해자의 80%가 이 회사 제품을 단독 사용하거나 중복 사용해 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이 기업도 피해자 구제 대책에 나서지 않았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고용해 피해자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책임 인정과 그에 따른 공식 사과도 없었다. 국회 국정 감사장에 불려 나가 도의적인 유감 표명을 한 것이 전부였다. 최근 피해자들이 영국 본사를 찾아가 투쟁하고 왔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회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가해 기업이 저러고 있으니, 나머지 가해 기업들이야 뒤로 꼭꼭 숨어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는 모양새이다. (☞관련 기사 : <가디언> "'옥시'는 왜 살인을 인정하지 않나?")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기업들이 책임져야 할 사건인데도 가해 기업은 법정 다툼을 통해 버티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정부는 피해자 의료비 선 지원금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위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말고는 입을 닫았다. 재판부는 민사 재판을 통해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1심에서 면죄부를 주었다.

▲ 2013년 7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에 피해 어린이가 의료기를 부착한 채 참석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를 낳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 비롯해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또 다시 여과 없이 보여주는 큰 참사로 등장했다. 기업의 이윤 논리가 원인이었고, 이에 편승한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 문제였다.

국가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뒤로하고 기업의 돈벌이에 손을 들어주었다. 세월호 참사가 국가와 기업이 긴밀하게 유착됐다는 의혹을 샀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는 국가가 기업에 좋게 화학 물질 규제에 소홀했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세정제로 쓰여야 할 화학 물질이 임의로 용도가 변경돼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침투됐다. 화학 물질에 대한 노출 경로가 변경돼도 아무런 규제 장치가 없었다.

메르스 사태의 본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가가 사고 초기 대응에서 미온적이었고, 국가로서 책임을 다하거나 가해 기업 대한 책임을 묻는 데도 소극적이었던 점에서도 세월호 사건과 닮아 있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는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특별법마저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요원하고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민은 올해 또다시 메르스 사태로 공포에 휩싸였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역시 사고 대응의 무능이 지적됐다. 정부가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에는 국가가 민간 병원들의 은폐를 묵인하거나 강제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있다. 국가와 병원이 국민의 생명에 대해 더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그리고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원인이다. 그 근저에는 기업의 이윤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사건 사고에 대한 사안별 대처 능력을 키우고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려면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가 국가의 최우선 임무라는 점을 상기하고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윤과 자본의 논리가 만연하고, 국가마저 신자유주의 논리에 지배됐다. 시장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복지국가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 메르스 슈퍼 전파 병원이 된 삼성서울병원.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위해 공공 의료 체계 강화해야

메르스 사태는 초기 대응의 중요성과 함께 격리 병상 확보 등 공공 의료 시스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민간 의료 중심의 현행 체계로는 앞으로도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초기 대응에서 많은 결함을 드러냈다.

가습기 살균제가 우리 사회에서 제조·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제품을 사용해서 피해를 입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2011년 이 문제가 알려지던 즈음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단순 감기 증상으로 알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1차 진료 기관들은 환자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2차 또는 3차 의료 기관에 의뢰해 문제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많은 의료 기관에서 이러한 기본 절차를 무시하지 않았을지 의심된다.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3차 의료 기관을 찾은 경우도 다반사였을 텐데, 이런 사례의 보고가 보건 당국에 뒤늦게 된 것은 아니었을지 의심된다. 그리고 보건 당국 역시 이런 의심 사례들을 보고받고 역학 조사 등 즉각 대응에 나섰을지 궁금하다. 위험이나 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 체계의 민감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만약 우리 사회에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어 있고, 공공 의료 시스템이 충분하게 확충돼 있었다면, 초기의 진료 시점부터 의심 환자를 제대로 분류하고 원인을 밝히는 데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국가와 우리 사회가 우선적 가치라고 여겼다면,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 대응 시스템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위험 사회의 근본적 대응 : 생명과 안전의 '역동적 복지 국가'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국가가 누구를 보호할 것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다시 한 번 답을 물었다. 사건 사고의 위험은 늘 존재하고 언제든지 일상에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위험 사회'다.

자본의 질주를 방치하고 통제하지 못한 결과는 더 큰 위험 사회로 우리를 몰았다. 부분적 대안으로는 위험 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 사람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해법으로 위험 사회에 대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동적 복지 국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애 주기별로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책임지려는 국가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위험에 대비한 시스템 구축의 엄청난 비용과 예산 투입의 정당성에 대해 자본의 저항을 막아야 한다.

'역동적 복지 국가'는 위험에 대한 비용을 생산적 투자의 관점으로 보기에 정당성을 가진다. 위험에 대한 비용은 낭비적 의미의 비용이 아니다. 위험에 대한 구제 비용 역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기에 기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안전하게 생명을 보호받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기에 좀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역동적 복지 국가'가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더 높은 경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메르스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한 일대일 싸움의 승부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복지 국가의 철학과 역동성이다.

(강찬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기획국장은 전 광명시민신문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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