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총리가 대처했다면 완전히 달랐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메르스와 대한민국 국가

이제는 시골 할머니도 그 존재를 알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최근에 세월호를 제외하고 이토록 영향력 있는 사건이 있었을까?

이완구, 홍준표로 대표되는 불법 자금 문제도, 클라라 문제로 더 알려진 이규태 방산 비리도, 대한민국 장성들이 하나같이 배, 비행기, 탱크 할 것 없이 헤아릴 수 없이 해 처먹은 사건도, 최근 가장 핫 이슈였던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의 문제들도 모두 한 방에 잠재워버리고 있다. 우리 옆에 친근하게 다가선 메르스는 지금 여러 가지 면에서 최정점에 올라 있는 듯하다.

관련된 병·의원들이 공개되고, 여야 할 것 없이 동조하는 정치권의 모습도 그렇지만, 이번 유행 사태가 이번 주가 고비일 것이라는 여러 전문가의 예측 또한 소설 5단계 중 위기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모습 같아 보인다.

메르스 사태의 문제점들

한국에서 전파되는 메르스 침공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지, 여기서 사태가 잠잠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사람 간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둥, 변이가 이루어져서 슈퍼 바이러스가 됐다는 둥 여러 가지 설들을 말한다. 어쨌든 우린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훗날을 위해서라도 몇 가지 질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 재난 사태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국민을 보호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둘째, 정부는 이러한 재난 사태가 터졌을 때 수준에 맞는 대책 본부를 꾸렸나?
셋째, 정부는 관련 전문가들의 얘기를 충실히 들었는가?
넷째, 정부는 왜 감염 환자 동선과 병원 이름을 비밀에 부쳤나?
다섯째, 지자체는 왜 정부를 대신해서 메르스 사태 대응에 나서야 했나?
여섯째, 보통 인플루엔자 수준이라는 메르스 바이러스 전파에 국민이 공포에 떠는 것은 국민이 무지해서인가?
일곱째, 정부는 정보가 없음으로 해서 생기는 혼란이 알려져서 생기는 일시적인 문제들보다 더 심각함을 몰랐던가?

증상을 보이면서 병원을 전전했던 시간을 빼더라도 메르스 확진이 이루어진 것이 5월 20일이다. 그 이후 정부는 감염 환자, 사망자, 의심 환자 등을 쫓아다니며 그 수를 발표하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메르스라는 말이 익숙한 것처럼 전 국민은 1번 환자, 14번 환자, 35번 환자와 같이 비밀스러운 숫자들만 알 뿐이었다. 많은 전문가가 발 빠른 대응을 해야 한다든지, 병원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든지, 관련 지역을 알려서 국민으로 하여금 대처하게 한다든지 많은 조언들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거나 선제적인 대응을 한 일이 전혀 없다.

더 앞선 모습으로 대응을 해도 잡을까 말까 할 전염병에 대해 감염이 강력히 의심되는 사람이 중국으로 출장을 가지 않나, 어떤 사람은 골프를 치러 지방에 가지 않나, 외교 문제, 지역 확산을 오히려 조장하는 식으로 대처를 했던 게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였다. 그 뒤에는 보건복지부가 있고, 더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고 있다.

ⓒ연합뉴스

돌아가고 싶은 5월이지만…

작년 세월호가 침몰하고 많은 학생과 함께 수백 명이 수장되었을 때, 시간이 흘러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뛰어내리라고 했을 것을, 배가 뒤집혔더라도 해경들이나 구조대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유리도 깨고 사람들을 꺼내올 수도 있었을 것을…. 아직도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돌아가서 다시 적극적으로 뭔가 해내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비슷한 생각을 우리는 지금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해야 하는 슬픈 현실에 살고 있다. 첫 확진 환자가 열이 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닐 때 조금이라도 더 철저하게 진료했으면, 검사를 해달라는 어느 의사의 말을 질병관리본부가 좀 더 진지하게 들었다면, 일부 병원 공개 및 전파 지역을 알려서 국민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했다면, 감염 의심 사람들을 좀 더 확실하게 조치를 했다면…. 하지만 5월은 지나갔고, 우리는 불안한 6월을 지내고 있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재난 상황과 달리 전염병에 의한 재난 상황은 예측 불가능하고, 변수가 여럿 작용하기 때문에 선제로 대응해야 한다. 즉 전염병에는 초기부터 전파력 약화 전략이 답이었다.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대책반을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낙타를 조심하라고 홍보하거나, 문제없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5월 28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책임자가 질병관리본부장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6월 2일 다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뀌었어도 정부의 대처에는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사망자도 늘고, 지역으로 퍼져가는 양상이 보였고, 3차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는데, 정부는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사전에 준비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문제의 심각성이 인지됐을 때부터라도 대처해야 했다. 국가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국무총리 수준(공석이기 때문에 부총리라도)의 책임자가 대책본부장을 맡으며 관련 부처 장관들이나 지방 정부와 소통하면서 해결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 초기 질병관리본부장이 책임자가 됐을 때나 차관, 아니 장관이 책임자를 맡았어도 전 부처를 아우르는 힘이 없기에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흔히 2003년 증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태 때의 대응 방식과 비교하는데, 이번도 책임자의 권한을 높이면서 더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했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하고 정부가 핑계를 댄다면 그것은 스스로 무능을 말하는 것밖에 안 된다.

첫 환자가 확진된 5월 20일, 정부가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전염병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총리급으로 책임자를 두어 많은 전문가들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면서 몇 발 앞선 대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감염 의심자가 외국으로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격리 대상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병원들은 고초를 겪겠지만, 감염력이 떨어지는 시간까지 철저한 자기 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국민은 불안하지만 공개된 정보를 믿고 위생과 대인 접촉에 주의를 하면서 메르스라는 낯선 방문자가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다소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모르는 불안에 두려워 하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처하는 게 위기관리의 기본이라는 상식을, 아니 세계보건기구(WHO)나 재난 관련 세계 기구들의 기본 권고 사항임을 정부만 모르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유럽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을 숨겼다고 한다. 정부의 폐쇄된 정보에 따라 언론들도 승전보를 연일 쏟아내고 있었고, 영국 국민은 평상시처럼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사실이 알려지면 오게 될 혼란이나 국민의 불안을 줄이고자 했는지 모른다. 오직 한 신문사만이 전세가 안 좋다는 것과 연합군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을 때, 영국 국민은 그 신문사를 매국노, 혹은 불량 신문사라고 매도하면서 해당 신문 보이콧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으로 독일제 V-로켓이 날아들고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의 시신과 부상자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돌아오자 그제야 국민은 전쟁의 실상을 알았다. 그 언론사는 재조명받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영국 국민은 애국심을 발휘하며 전쟁에 임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사실 공개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시간을 20여 일 전으로 돌이켜 준다면 잘할 수 있을까? 그것도 확실치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공용 브리핑룸에서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메르스 총력 대응을 위한 협력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국민이 납세, 국방 등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이유는 국가라는 조직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국민을 보호해 주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국가라는 조직은 그에 대한 대처를 미리 준비해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이없게 국민이 엄청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 대리인들이 대통령이고, 관료들이다. 가라앉는 세월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전부였던 정부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선제적인 대응을 못하고 그저 전파되는 사람들의 숫자만 세기 급급했다.

최근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제 국민은 좌절했다. 국가는 국민의 든든한 기둥과 벽이 아니라, 부실하게 지어진 허술한 울타리라는 생각에 말이다. 국민이 위험에 처하면 국가는 초개와 같이 달려와 우리를 구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수없이 재난을 겪어도 국가는 변한 게 없이 결국 국민 스스로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아픈 현실을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나와 내 가족이 물속에 빠졌을 때, 지진으로 땅속에 갇혔을 때, 인도양 너머 해적들에게 잡혔을 때, 이번처럼 무서운 전염병이 돌 때, 안타깝게도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국민은 묻는다. 과연 우리가 의지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고병수 가정의학과 의사는 <온 국민 주치의 제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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