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 만든 한국은?

[프레시안 books] 리처드 솅크먼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정치 분석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유권자를 비판하는 것은 금기였다. 선거 결과에 따라 때론 지혜로운 유권자로, 때론 잘못된 선전·선동에 넘어간 유권자로 칭송과 비난이 오가지만 '어리석은 유권자' 탓을 하는 정치학자, 언론, 그리고 비평가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잘못이 있다면 "대중을 조종하는 지배계급"과 정치인들일 뿐, 유권자 탓은 정치인의 책임 회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 보수파 대 진보파의 한판 대결로 치러진 2012년 대선에서 진보파가 패배했을 때도 '어리석은 유권자' 탓은 울분에 찬 술자리 대화에서나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을 뿐 공론의 장에는 등장하지 못했다. 왜일까? 유권자라는 성역을 건드리지 못하는 비평가들의 비겁함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유권자가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대중의 더 많은 참여가 사회 진보를 이뤄낸다는 굳건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정치적 효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조지메이슨대 역사학과 부교수이자 기자 출신인 리처드 솅크먼이 쓴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5년 3월 펴냄)는 이 같은 '신화'와 '금기'에 정면으로 맞서며 국민의 실패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유권자의 한계, 대중의 한계를 과감히 지적하며 이에 대한 국가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화는 그것을 직시할 때 거스를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안이 되는 신화보다 가혹한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거대한 난제를 푸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2008년 오바마 당선 직후, 흑인 대통령을 당선시킨 위대한 미국인이라는 칭송이 자자할 때 "우리가 스스로 탈출해야 하는 덫은 우리가 선택한 후보의 선거 승리가 곧 대중의 지성을 보여준다는 유혹적인 믿음"이라고 냉정히 분석한다. 이 역사적인 선거조차 선거의 쟁점을 유권자들이 냉철히 판단하고 선택한 '이성'에 기반을 둔 선거가 아니라 감정에 휘둘린 선거였다고 분석한다. 그토록 지적이고 진보적인 오바마도 후보 출마 이후에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수사법과 희망과 변화 같은 미사여구를 구사하면서 대중의 감정을 고양시켰고, 이러는 와중에 쟁점은 사라졌다. "그의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군중이 갈망했던 것은 쟁점에 대한 오바마의 인식이 아니라, 정서적 경험"이었다. 이 모습은 "교리보다 체험을 중시하는 복음주의 교회의 신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유권자'를 보여주는 사례는 널려 있다. 과거에 비해 정보의 양, 정보 접근성은 크게 늘었지만 오늘날 미국 부모들의 지식 수준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청년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의 절반은 대학 진학을 하지만 실제 정치 지식은 "요양 생활을 하는 노인들을 제외한다면 어떤 연령 집단보다 아는 것이 적은 집단"이다.

이성에 근거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유권자를 '멍청하게' 만드는 기제는 곳곳에 있다. 텔레비전 토론은 단적인 사례인데 현명한 유권자라면 꼭 봐야 하고, 또 투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져 왔던 텔레비전은 내용이 아니라 후보의 스타일, 이미지가 지배한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질수록 "국민은 점점 더 조종하기 쉬운 대상"으로 되어간다. 저자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며, 따라서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쟁점을 통해 이성적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리한 쟁점을 피하기 위해 비열하게 싸우는 것,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이 대목에서 작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그토록 국가와 정부에 분노했던 대중들이 왜 어느 순간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외면하게 되었는지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여론', 즉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원초적 공포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면서 세월호 이슈를 고립시켰던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 만들기, 진상 규명이라는 이성적 쟁점은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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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유권자라는 신화, 어리석은 투표라는 현실

ⓒ인물과사상사
저자는 이 같은 '국민 실패'를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째,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와 대중 참여의 중요한 기제로 확대되면서 "정치는 사회 문제에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역설이다. 저자는 "여론조사는 일종의 조작"이라고까지 말한다. 여론조사는 대중이 원하는 쟁점을 제시하는 법을 아는 전략가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둘째, 텔레비전과 정치의 결합이다. 텔레비전은 정치의 로직(logic)을 바꾸었는데, 정치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로부터 거의 무지한 국민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정치 광고는 유권자들의 주요한 정보원이지만, 점점 얄팍해지는 정치 광고 속에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식 또한 얄팍해지고 있다. 텔레비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에서 정당 충성도는 1952년에서 1988년 사이 75퍼센트에서 63퍼센트로 하락했다. 텔레비전 토론이 후보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는 조사 결과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작 영향을 끼친 것은 쟁점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이 아니라 이미지였다. 텔레비전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넓은 붓질로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들이 사실과 수치로 무장한 사람들보다 더 유리하며" 때로는 연기자의 자질도 요구된다.

셋째, 정치인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면서 정당의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닌 광고 홍보 전문가들이 정치를 책임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킨 '마술사'는 '침대는 과학입니다'로 유명했던 카피라이터였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유권자'에 맞서 저자는 어떤 대안을 내놓고 있는가? 먼저 여론의 한계, 즉 대중의 무지와 감정이 정치 토론을 형성해온 하나의 요인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직시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대중의 무지는 자칫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나 음모론에 빠질 위험성도 크다. 이러한 반지성주의의 폐해를 제대로 응시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문제 등에 대한 시민 교육을 강화하는 것, 더 많은 토론의 장으로서 단체를 활성화하고 가입률을 높이는 방안도 중요한 해법들이다.

이 책은 정치 분석서이지만 저자의 입장을 애써 강요하지 않는다. 풍부하고 생생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독자들이 공감하도록 한다. 미국적 사례들이지만 한국의 상황에도 거의 부합하기에 지금 우리의 상황들을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어리석은 유권자'라는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극한의 비판과 분석을 시도하지만 결코 허망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해답은 제대로 질문을 던지는 것, 그 물음을 제대로 응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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