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백성이여, 담배를 피워라"…정조는 왜?

[프레시안 books] 안대회 <담바고 문화사>

1.
"기록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진짜로 일어난 게 아니란다. 그러니 너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편지를 써야 한다. 일기도 꼭 쓰고."

이 글은 버지니아 울프가 한 소녀에게 한 말이다. 위대한 작가가 아이에게 편지와 일기를 쓰라고 다정하게 권하고 있다. 이때 두 사람은 나비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나비와 나방 채집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녀는 '기록'을 나비를 잡는 포충망처럼 여기고 있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사소한 사실이나 감정과 느낌을 기록하는 일이 문학의 기본이라는 점을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종이에 기록된 글은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읽힐 운명을 타고난다. 그리고 기록된 사소한 것들이 우리의 문화를 위대하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문자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냥 피우고 마는 담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그 시절에 '진짜로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담배를 불당에 피워 올린 향으로 비유한 이옥의 <연경>의 글을 보고 인상적이었는데 그 문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조선 시대에 어떤 선비가 담배에 대해 아름다운 글을 남겼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간 것이다. 안대회 교수의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 2015년 3월 펴냄)를 보면 이옥의 저서 <연경>이 동아시아 3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일본과 중국에서도 담배에 관한 책이 나왔다고 하니, 담배는 동아시아 문화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화 아이콘임에 틀림없다.

결국 이 책은 내가 지금 곁에 두고 있는 담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왔는지를 탐정처럼 추적하고 있다. 요즘 담배는 마치 잠정적인 살인 용의자 취급을 받고 있다. 안대회는 검사이면서 변호사가 되어 담배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담배의 연대기를 펼쳐 보인다. 노련한 필체로 서술되어 문장이 쉽게 읽히니 이해하기가 쉽고, 일화가 풍부하고 전쟁부터 시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현장에 있으니 재미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금연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대한 저자의 걱정이다. 이 책이 본연의 뜻에서 벗어나 흡연을 조장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똥오줌의 역사>는 서가에서 냄새를 풍길까봐 걱정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은 지금 내 옆에 있는데 솔솔 풍기는 종이 냄새가 향기롭기만 하다. 필자는 저자에게 아무 염려도 하지 마시라고,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애연가인 내가 심각하게 금연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방대한 자료를 정리·수집하느라 눈과 손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고맙고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한다. 그건 그렇고 담배는 정말 대단한 '거시기'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겠다.

2.

ⓒ문학동네
일단 재미있는 일화부터 보자.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남문루에서 폭약을 터트려 자살을 한 김상용은 금연을 했다고 한다. 병자호란의 충신과 금연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정은 이러했다. 일단의 선비들에 의해 김상용이 충성심으로 자결을 한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려고 불을 댕기다가 불길이 옮겨 폭약이 터져 죽었다는 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에 애연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상용의 아들인 김광환은 아버지가 평생 금연하였고 집안 자체가 금연 집안임을 내세웠다. 더군다나 사위인 장유가 흡연하는 것을 임금에게 좋지 않게 말한 것을 등을 강조했다. 인조는 전후 사정을 고려하여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만약에 그가 골초였다면 그의 죽음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허망한 담배 연기처럼 사라질 뻔했다.

모든 백성을 흡연자로 만들고자 하는 조선의 군주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금연은 지엽적인 일이었고, 흡연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골초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임금은 바로 정조이다. 정조는 규장각 초계문신을 상대로 담배를 전 백성이 피우게 할 방법을 강구하라는 <남령초 책문>을 내리기도 했다. 그가 꿈꾸는 조선은 모든 백성이 골고루 흡연을 하는 세상이었다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조가 남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다음의 문장을 보고 고독했던 인간 정조의 단면을 보았다.

"나는 젊어서부터 다른 기호는 없이 오로지 책을 보는 고질병만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하고 탐색하느라 심신에 피로가 쌓여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런 탓에 병이 생겨 마침내 가슴속이 언제나 꽉 막혀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였다. 왕좌에 오른 뒤로 책을 보던 고질병을 모두 정무로 옮겨 일하다보니 병증이 더욱 심해졌다. 복용한 빈랑 열매와 쥐눈이콩도 근이나 포대로 헤아릴 정도였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오로지 이 남령초(담배)에서만 도움을 얻었다. 불기운으로 한담을 공격하자 가슴에 막힌 것이 저절로 사라졌고, 연기의 진기가 폐를 적셔 밤잠을 편히 이룰 수 있었다. 정사의 잘잘못을 고민할 때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을 시원하게 비춰보고 요점을 잡아낸 것도 그 힘이고, 글의 가부를 수정하고자 깎고 자르는 고민을 할 때 고르게 저울질하여 내어놓게 만든 것도 그 힘이다."

물론 이덕무를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금연 이유 역시 논리정연하고 풍미가 넘친다. 조선 시대에는 정조를 비롯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이 애연가 그룹에 들어간다면,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를 필두로 이덕무, 이덕리를 비롯한 여러 선비들이 금연주의자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흡연과 금연의 역사로도 읽히는 책이어서 흥미로웠다. 담배를 두고 약초 혹은 독초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하고, 건강을 지키는 방편이거나 몸을 해치는 작용으로 보기도 하니 같은 담배를 통하여 서로 논하고 설하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자기주장이 사상에 근거하여, 조화로운 조선 선비들의 모습으로도 여겨진다.

또한 조선의 금연론자들의 글을 통하여 남녀 간에 '썸'을 타는 행위는 담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시절 커피 한 잔으로 이성을 유혹하던 내 경험이 그 시절에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인간의 윤리를 없애고 질서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모두 담배로부터 말미암는다. 그중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용도를 말하자면, 남녀 간에 음란한 짓을 할 때에는 담배 한 대 태우자는 수작을 건다." (윤기, <남초> 중에서)

이런 담배를 연애초라고 불러야 할까? 담배는 여자와 남자를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기도 하고 친구 간에 우정을 나누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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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임진왜란 후 17세기 초반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담배를 중심으로 엮어내는 동아시아 삼국의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조선, 중국, 일본에서 담배를 지칭하는 언어부터 무역과 전쟁을 비롯해 삼국 간에 담배를 통하여 벌어지는 선비들의 일화가 흥미롭다. 특히 담배를 통하여 외교와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으니,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선 시대의 상징물로 보인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문학작품인 <춘향전>을 비롯하여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민화 속에 들어간 담배와 흡연 장면은 조선의 백성들과 담배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은 영어의 '원스 어폰 어 타임'과는 다른 우리나라 언어의 생동감이 살아 있는 멋있는 말이다. 저자는 본문을 마치고 각 장마다 '깊이 읽기'를 통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깊이 읽기 7'에서는 호랑이가 담배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추정하고 있다. 이 전설은 조선 말기부터 지금까지 널리 퍼져 있는데 무사가 호랑이로 변신한 배선달 전설부터 박제가의 시, 불교 잡지, 민화, 민요 등등 폭넓은 자료 조사를 통하여 그 어원을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 항일 시기까지 우리 담배의 생로병사를 담고 있다. 뒤로 읽어나갈수록 우리 담배의 운명도 나라의 운명처럼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특히 일제의 마수가 서서히 우리 민족의 숨통을 죄어오던 대한제국 시절에 벌어진 국채보상운동과 단연 운동은 나랏빚을 갚기 위한 우리 백성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일어났다. 1907년 2월 27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나라가 망하면 인민도 망하나니 힘쓸지어다 우리 동포여! 얼마간의 시간을 기다려 국채를 청산한 뒤에 세계에서 제일가는 향기 좋은 담배 수천만 줄기를 사서 국내 모든 남녀노소가 드러내놓고 한번 피워서 우리의 맑은 기분을 개운하게 푸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이렇듯, 담뱃값을 모아서 나라를 살리고자 하는 백성들의 뜻에 맞추어 애연가였던 황제께서도 금연에 동참하면서 "신민이 나라를 근심하여 이런 일을 하는데 짐이 어찌 모르는 척하겠는가"라면서 궁중에서도 금연하도록 칙명을 내렸다.

더불어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기독교의 금연, 금주는 역사적으로 위정척사파의 금연 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유학을 정도로 삼고 외세를 멀리하려 했던 성리학자들도 금연에서만큼은 서양인들과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하듯이 흡연에 대한 욕구는 시대에 따라 기복이 있을 뿐 줄기차게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가 지금 피우는 현대식 담배의 시원은 결국 일제의 침략 정책과 어울려 우리 땅에 유입되었다. 이른바 일본에서 수입된 권연의 등장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담바고 문화사에서 매우 결정적인 한 장면이다. 이 권연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흡연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곰방대, 장죽 등의 담뱃대가 사라지고 쌈지와 같은 담배 용품도 사라진다. 부싯돌 대신 성냥이 간편하게 불을 붙여주니 이 모습이 당시 조선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마술과 같았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 수록된 일본 무라이 형제상회의 지권연 '히로' 광고를 보고 있다. 이 담배가 지금 우리가 피우고 있는 담배의 모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네모난 담뱃갑에 담배 이름을 표시한 모양까지 비슷하다. 이 광고는 1899년 7월 1일 자 <독립신문>에 수록된 광고이다.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을 비롯한 구한말 신문과 잡지 광고의 가장 큰 고객은 담배 회사였다. 초기에는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조정의 귀족과 부유층이 이국산 권연의 주 고객이었지만, 점점 백성들에게도 퍼져 나간다. 담뱃대의 길이로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던 조선의 흡연 문화도 사라졌다. 양반이 피우던 긴 담뱃대인 장죽과 서민들이 피우던 짧은 담뱃대인 곰방대가 사라지고, 한 뼘도 되지 않는 사이즈의 현대식 담배로 인한 평등 사회가 이루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더불어 큰 사회적인 변화가 이 시기에 일어났으니 전매 제도와 세금 부과이다.

"담배의 공급에서 또 다른 큰 변화는 전매 제도의 전환이다. 본래 조선은 담배의 재배와 판매에 직접적인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유수원, 구완, 정약용, 이규경 등 경세학자들은 담뱃세의 징수와 전매 제도를 실시하자고 주장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구한말에 들어와 담배에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전매 제도를 실시한 것은 일본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세액 가운데 1·2등을 다툰 것이 바로 연초세, 즉 담배에 대한 세금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 세금으로 조선을 수탈하고 민족 자본을 약화시켰으니 담배가 끼치는 해악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끝나갈 즈음에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1609년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담배는 조선의 기호품 세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후 300년 역사 내내 담배는 조선의 경제와 사회, 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큰 영향을 끼쳤다. 담배를 말하지 않고 그 300년을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말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자 집필 목적이다. 더불어 "문화를, 취향을, 문물의 전파와 정착을, 사회상을, 담배를 빼놓고 실감나게 말하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300년간에 담배의 문화사를 통해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 것과, 담배처럼 사라지지 않은 것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의 주장대로 담배는 조선 후반 300년 역사를 비춰 보여주는 거울이다.

문화는 서로 다른 점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배려하는 속성을 가기고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담바고 문화사>를 통하여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문화의 풍요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아마도 흡연자에게는 애연가의 감정과 즐거움을, 금연주의자들에게는 금연에 대한 냉철하고도 지적인 발언권을 줄 것이다.

금연과 흡연을 논하면서 정조와 이덕무의 글을 인용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복잡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거짓말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를 금연과 흡연의 테두리로 갈라놓을 수 없다. 적어도 담배에 대해서만은 오해를 하지 말고 서로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담배에 대한 풍부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문화적인 안목을 이 책을 통하여 길렀으면 좋겠다.

사족이지만 흡연가인 나에게 그나마 정조가 애연가였다는 말이 위안이 되긴 하는데, 정조처럼 공부하면서 강하게 살아야 그분처럼 흡연할 수 있다고 생각이 머리가 아파온다. 공부도 못하는데 그냥 피우지 말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책 표지에 실린 민화인 담배 피우는 호랑이가 익살스럽게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단 한 대 피우고,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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