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스테로이드 맞은 싱가포르'?

[정욱식 칼럼] 중국의 네 가지 미래, 그리고 현재

사람들은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즐겨 하곤 한다. 이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것이 바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까? 그렇다면 언제가 될 것인가? '팍스 차이나' 시대는 '팍스 아메리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중국의 종합 국력이 미국을 추월하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등등.

좋든 싫든 한국은 중국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1년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사드 논란'은 어쩌면 그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관성에 안주할수록 중국의 부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딜레마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우리의 큰 무역상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경제적 미래는 한국경제에 가장 큰 변수이다. 이는 외교·안보와 경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최강의 단일 정당인 중국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가 지속될 경우 한국의 정치문화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중국의 국력이 세계화될수록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에 중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동기와 힘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부쩍 한미일이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가치 동맹'을 강조할수록 그 긴장도 커지게 될 것이다.

중국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필자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섣부른 의견을 내놓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그래서 필자가 접하고 있는 좋은 글을 골라 이를 소개하고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시진핑(아래, 왼쪽 두번재)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아래, 왼쪽 세 번째) 총리 ⓒAP=연합뉴스

<포린어페어>의 '중국은 지금'

최근 접한 자료 가운데 흥미를 끈 것은 미국의 저명한 <포린어페어> 5/6월호가 게재한 '중국은 지금'(China Now)라는 특집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고 저마다 의견이 다른 중국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진단이 필수적이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정책 이후 반세기 동안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G2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를 두고 이 잡지의 편집장인 기든 로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중국은 다양하고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만연한 부정부패, 빈부 격차 심화와 양극화, 경제성장률의 저하, 환경 문제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에 <포린어페어>는 최고의 중국 전문가들의 기고문을 받아 '중국의 지금'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혹자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도입한 '부정부패와의 전쟁'이 엘리트 내부의 모순을 격화시켜 "환자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대중들의 지지, 엘리트 핵심부의 응집력, 막강한 경제력, 중대한 정치적 도전 세력의 부재 등 정치적 자산에 힘입어 중국 정부가 당면 문제를 비교적 잘 관리·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딜레마에 처하고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중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개혁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그 개혁이 중국 공산당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은 끝났나?

흔히 중국을 개혁개방의 상징처럼 일컫곤 한다. 개혁개방의 기수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은 농업과 기업 개혁을 단행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장쩌민은 국영기업을 개혁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시장경제를 본격 도입했다. 후진타오는 사회안전망 개혁에 주력했다. 시진핑의 개혁노선은 부정부패 척결로 상징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인 제도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선택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통해 공산당 지배체제라는 현존 체제를 유지·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권위주의적 적응'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요우웨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전문가는 '중국 개혁의 종말'이라는 글을 통해 중국이 지금까지 해왔던 개혁은 비교적 쉬운 축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진짜 개혁은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주요 경제 분야에서의 국가의 독점 해소, 토지의 사유화, 재정 문제에 대한 전국인민회의에 권한 부여, 독립적인 사법 제도 도입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은 중국 공산당의 권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더구나 중국이 취해왔던 부분적 개혁 조치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내 이들이 새로운 개혁에 저항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부분적 개혁은 정실 자본주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의미이다.

그의 진단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과연 예외적이냐'는 것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근대화 이론은 경제발전이 시민사회를 성장시켜 정치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은 예외라고 말한다. 이들은 중국 인민들이 권리보다는 물질을 중시하고, 민족주의에 경도되고 있으며, 국가가 이를 적절히 조장·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중국 시민사회의 성장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정도는 못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은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시켜왔다.

그런데 요우웨이는 "중국에 예외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나 문화가 아니라 국가"라고 말한다. 그는 중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각종 주장과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는 점에 지적한다. 풀뿌리 NGO도 100만 개를 넘어선 것이나, 중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 사람 간의 연계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중국에겐 강력한 예외가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국가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 분출이 정치적 변화를 수반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국가권력은 그 공간을 성공적으로 관리·봉쇄해왔다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그 직후 소련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중국 지도부는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는 예방적 조치에 몰두해왔다. 예방적 조치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제성장을 통해 인민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능하고 정교하며 매우 효율적인 안정 유지 체제"를 만들어 인민들의 정치적 분출을 예방하는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강력한 국가의 조합이야말로 중국 공산당의 핵심적인 두 축인 셈이다.

요우웨이에 따르면 "중국에 빅 브라더는 곳곳에 존재한다". 인민해방군보다 더 많은 예산을 쓰고 있는 중국 공안은 정부 기관이다. 또한 택시 운전사, 노동자, 주차 요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 자원자", "안전 정보원" 등으로 채용돼 "의심스러운 사람이나 행동"을 당국에 보고한다고 한다. 거미줄처럼 짜여 있는 감시망을 통해 하나의 문제가 통제 불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걸 예방하는 것이다.

요우웨이는 시진핑의 부정부패 척결 노선도 결코 개혁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언론 자유, 독립적인 사법체계, 권력감시 시민단체 등이 필요한데, 시진핑의 노선은 철저하게 국가권력, 그것도 극소수의 권력 핵심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국가권력은 강화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 정부가 유교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위계적 질서에서 자비로운 통치를 강조함으로써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긴장 관계에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비록 그 위세가 크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위계를 강조하는 유교주의 사이에 불안한 동거가 생기고 있다.

네 가지 미래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이코노미는 중국을 가리켜 "스테로이드를 맞고 있는 싱가포르(Singapore on steroids)"라고 표현한 바 있다. 중국이 부정부패 척결 등 선택적 개혁에 성공해 싱가포르와 같은 견고한 권위주의 국가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리콴유 사후에 그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기리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요우웨이는 중국이 '큰 싱가포르'가 되긴 힘들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싱가포르와 달리 복수 정당제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고, 영토와 인구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우웨이는 가장 가능성이 놓은 시나리오로 중국이 경제성장에 힘입어 당분간 '현상 유지'에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게 영원하기는 힘들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방식의 현상 유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요구하는데, 중국이 처하고 있는 각종 문제는 이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이 위기를 거쳐 민주화가 되는 것이다. 경제적 문제의 분출과 정치적 요구의 부상이 맞물리면 인민들은 현상 유지보다는 변경을 추구할 것이고, 그 결과 민주적 무질서와 약해진 권위주의 국가의 조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이다.

끝으로 점진적인 민주화이다. "이게 최선의 시나리오이지만 불행하게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요우웨이의 주장이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점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할 정권 내의 정치 세력이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가 내놓은 처방도 흥미롭다. 요우웨이는 "외부의 압력은 중국의 개혁을 가져오기보다는 방어적 민족주의를 자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다고 말한다. 그 대신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정치적 진화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들 스스로 강력하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이며 성공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견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의 자신감이 커진 배경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의 매력 상실이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당파성에 휩싸여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당파적 대결로 인한 정치적 무능과 불능이 심각한 상태이다.

금융위기가 미국식 경제체제에 대한 회의론을 야기했다면, 당파적 양극화는 미국식 정치체제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를 이용해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해왔고,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건강하고 유능한 민주주의가 중국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요우웨이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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