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와 관련해, 경찰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지난 16일과 18일 설치된 차벽은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대응방식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2008년의 '데자뷰(deja vu)'를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일까?
경찰은 시위대의 폭력이 먼저라고 주장하지만,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는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누가 경찰버스를 시민들의 통행을 가로막는 차벽으로 쓰라고 했으며, 누가 광장 안에서조차 저지선을 쳐서 이동의 자유를 짓밟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경찰의 부상과 장비 파손은 경찰 지휘부의 반인권적 진압 계획이 낳은 결과"라며 "이미 위헌 결정이 난 차벽에 맞서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유가족 "경찰, 캡사이신 눈에 쏘고 장갑에 묻혀 내 눈에 비벼"
경찰은 18일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과 광화문 인근 등에서 벌어진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가 "불법 폭력 집회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광화문 현판 아래부터 무려 4차에 걸쳐 설치된 경찰의 '차벽'과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 발사 등의 작전이 정당했다는 핵심 근거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월호 추모 집회가) 불법을 넘어 폭력 집회로 변질해 2008년도 광우병 촛불집회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폭력 행위자에 대한 사법처리와 함께 경찰차량에 피해를 입힌 이들을 찾아내 손해배상을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과잉진압 관련 증언은 쏟아지고 있다. 폭력을 먼저 행사한 것은 경찰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도언 양의 어머니 이지성 씨는 이날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가 체포돼 현행범으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는데 캡사이신을 얼굴 정면, 눈에 쏘더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그리고 제 머리채를 잡고 비틀어 주저앉혔다"며 "주저 앉힌 상태에서 캡사이신을 묻힌 장갑을 다시 제 눈에 비볐고 강제로 끌고 '저거 꺼내, 저거 끄집어내' 그랬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이어 "끌려 나와 강제로 양팔이 뒤로 비틀려 꺾였고 그 상태로 무릎이 꿇리고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부상자 100여 명…뇌진탕 입고 코 찢어지고 다리 찢어져"
18일 범국민대회 당시 인권침해 상황을 확인했던 인권단체들의 감시대응팀 보고서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이날 오후 3시 경 버스 지붕에서 경찰의 진압 작전에 의해 에어매트 위로 떨어졌는데 직후 경찰에게 목이 졸렸다.
또 "'성호 아빠' 최경덕 씨는 손이 다친 채 연행됐으나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했고, 사지가 들린 채 머리를 두 차례 밟힌 학생도 있었으며, 최루액을 맞은 후 연행된 이들이 최루액을 씻어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이들은 밝혔다.
물대포 역시 사람을 향해 직사로 분사해 높은 수압에 의해 사람들이 밀려 넘어지고 했는데, "이는 직사살수의 경우 가슴 이하로 해야 한다는 물대포 운용지침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감시팀은 비판했다. 특히 이날 경찰은 캡사이신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쉬지 않고 사용했다. 감시팀은 "캡사이신 분사기를 시민들의 얼굴을 조준해 분사"했다고 주장했다.
감시팀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서 확인된 부상자 숫자만 100여 명이다. 무릎분쇄골절 중상을 입은 50대 남성부터, 허벅지가 밟혀 심한 대퇴관절염좌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감시팀은 "최소한 5명 이상이 시민단체가 파견한 응급의료팀에게 치료를 받았다"며 "한 여성은 코가 찢어졌고, 시민단체 회원 1명은 다리가 찢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의 의사인 전진환 씨는 "경찰이 주먹과 방패로 집단구타를 하고 20대 여성 한 명은 경찰 5명이 전봇대로 머리를 밀어 뇌진탕을 입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최루액을 맞아 결막염을 호소하는 사람은 셀수 없이 많다"고 덧붙였다.
형사정책연구소도 "시위대 폭력, 경찰 차벽에 의한 것"이라는데…
경찰의 차벽 설치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다. 세월호집회감시대응팀은 '인권침해 감시 보고서'를 통해 "(차벽으로) 서울의 주요 도심은 마치 '계엄'에 준하는 상태가 되어 청와대로 통하는 모든 도로와 인도는 경찰에 의해 점령됐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광화문, 종로, 안국, 경복궁 등으로 난 도로는 경찰의 차벽 설치로 인해 차량 통행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심지어 경찰은 종각역과 안국역의 지하철 출입구까지 봉쇄하기도 했다.
감시팀은 "차벽설치는 '위헌'이며 '불법'이고, 모든 통행을 금지하는 전면적 통제행위이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봉쇄조치"라며 "차벽설치와 같은 원천봉쇄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18일 대회에서 경찰의 차벽은 일찌감치 설치되고 있었다. 심지어 광화문 현판 아래, 유가족의 농성장 앞에는 범국민대회가 시작도 되기 훨씬 전부터 차벽이 촘촘하게 설치된 바 있다.
이런 비판에도 경찰은 "차벽 설치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구은수 청장은 "차벽은 집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운용하는 질서유지선의 일종"이라며 "경찰 병력으로 시위대를 직접 막으면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9년 국책연구소인 한국형사정책연구소조차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폭력행동이 경찰 차벽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고 감시팀은 반박했다. 연구소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집회가 폭력으로 변하는 이유로 차벽이나 불심검문, 이동차단, 채증, 물포 등 경찰의 집회관리방식을 손꼽았다는 것이다.
감시팀은 "집회 참여자들이 집회할 장소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들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차벽을 설치하며, 준무기에 해당하는 경찰 장비들을 무방비로 시민들에게 쏟아낼 때, 결국 저항의 힘이 경찰을 향해 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경근 세월호가족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경찰차를 끈으로 묶어 끌어내자는 선동을 한 사람이 명찰을 차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유 대변인은 "시위대 속에 섞여 '잔디밭 주변의 끈을 칼로 잘라 차에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말리다 재킷 안의 명찰을 확인했다는 가족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 대변인은 "그 사람은 명찰이 들키자마자 쏜살같이 도망갔다더라"고 덧붙였다.
가족대책위는 18일 대회에서 있었던 경찰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소송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조선> 1면에 등장한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 정치권과 경찰의 관심 집중
한편, 지난 18일 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불태운 20대 남성이 '불법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등 정치권과 수사기관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태극기를 불태우는 사람의 사진이 20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되면서, 이 남성의 신원 파악에 일부 언론과 경찰이 총출동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현재 이 남성을 찾는데 기초가 되는 단서가 '털이 달린 흰색 점퍼, 안경 착용, 20대 초반 남성' 뿐"이라며 "다행히 이 시위자가 눈에 잘 띄는 흰색 점퍼를 입고 있어 이 시위자가 등장하는 영상 속에서는 그나마 눈에 잘 띄는 편"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이 남성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교안 장관은 이날 새누리당 김도읍, 김진태 의원의 잇따른 질문에 "있어서는 안 된 일로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지도·감독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장관은 "검·경이 대처해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되도록 지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남성이 주목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유경근 대변인은 "꼬투리를 잡아 그 자리에 모인 유가족 등의 마음을 폄훼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있어 보여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그 행위 자체는 잘못인만큼 그 사람을 잡아 처벌한다는 방침을 말릴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그러나 일부 개인의 일탈 행위를 핑계삼아 국민과 유가족의 정당한 요구를 폄훼하는 것 또한 나쁜 의도 아니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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