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시텃밭 열풍…와인 생산도 가능

[살림이야기] 세계의 도시들은 어떻게 경작되고 있나

전 세계 도시 농부는 약 8억 명으로 추산되고, 세계적으로 도시민이 소비하는 먹거리의 3분의 1이 도시 안에서 생산되고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 대책으로도 도시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도시에 농사지을 땅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농사지을 땅이 의외로 많다. 필리핀 마닐라의 대학, 페루 리마의 병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군사시설 부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경마장, 브라질 상파울루의 고압송전선 부지, 태국 방콕의 궁궐에서도 농사짓고 있다. 세계 도시 곳곳에서 옥상, 베란다, 발코니는 말할 것도 없고 건물 안에서도 농사짓는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도시로 유명했지만, 빈 땅이 많이 생겨나면서 도시농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발달하고 있다.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도시농업이 시작된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현재 세계 도시농업의 수도라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캐나다 밴쿠버에는 104개의 공동체 텃밭에 4000개의 구획이 있는데, 대기자 수가 1만6000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밴쿠버 시 정부는 토지 소유자가 노는 땅을 공동체 텃밭으로 제공하면 재산세를 감면해 준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현재 85개의 공동체 텃밭에서 6300명이 경작하고 있으며, 식량행동계획을 수립해 '먹거리 체계'라는 관점에서 도시농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미국 뉴욕, 산업화된 옥상텃밭에서 공동체지원농업

옥상텃밭의 규모가 커지면서 산업화하는 사례가 뉴욕의 브루클린 그레인지 농장이다. 한 곳은 폐쇄된 해군기지 내에 있는 네이비야드 옥상농장인데, 면적이 3716㎡로 옥상텃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다른 한 곳은 뉴욕 최초의 옥상텃밭인 이글 스트리트 옥상농장으로 면적은 557㎡이다. 여기서 수확한 농작물은 레스토랑이나 카페와 직거래하거나 공동체지원 농업(CSA) 또는 농부시장을 통해 판매한다. CSA 회원은 60명 정도로, 매달 50달러의 회비를 내고 매주 농장에 방문하여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받아 가거나 직접 수확해 간다.

시카고에 있는 사회적기업 '더플랜트'는 폐기된 육가공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 건물 안에서 수경 재배로 버섯을 기르며, 자원 재활용과 에너지 자립을 연계하고 있다.

▲ 미국 뉴욕 브루클린 그레인지 농장의 네이비야드 옥상 텃밭. 옥상텃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공동체지원농업과 농부시장을 통해 수확물을 판매한다. ⓒ살림이야기

영국 런던, 상자·자루 이용해 농사지을 공간 마련

영국에서는 도시텃밭을 '얼로트먼트(allotment)'라고 하는데, 인기가 높아 분양 신청을 하고 10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도시텃밭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얼로트먼트가 일종의 '녹색 헬스클럽'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는 약 4만 개의 얼로트먼트 구획이 있다. 또 인근 마을공동체와 사회관계 구축에 기여하는 소규모 농장인 '도시농장'이 있다. 영국 전역에 120여 곳이 있으며 먹거리 교육 등 시민활동을 위한 녹지공간을 제공한다.

런던에는 시내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도시와인 회사가 있다. 런던 중심부의 기온은 주변 농촌지역보다 보통 5~10℃ 더 높기 때문에 독일이나 프랑스 북부의 포도밭과 경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런던시민 100명이 회원으로, 회원 자격 조건은 정해진 날 정해진 곳에 잘 익은 포도를 최소한 3kg 수확해 보내는 것이다. 회원은 그 대가로 1인당 와인 여섯 병을 받는다. 2010년 포도 1.5t을 수확하여 와인 1300병을 생산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런던에서는 상자나 자루를 이용하여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술과 건축 작업으로 도심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왓이프'는 런던 도심부의 노는 땅에 0.5t 정도의 흙을 담은 자루 70개를 놓고 지역 주민으로 하여금 채소와 과일, 꽃을 심게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영국 런던의 발코니텃밭. 도시에서 농사짓는 데 넓은 땅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상자와 화분만으로도 풍성하다. ⓒ살림이야기

프랑스 파리, 원예용 살충제도 못 쓰는 무농약 지역


파리에서는 이미 19세기 후반 도시농부 약 8500명이 당시 파리 시 넓이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1400ha의 땅을 경작하고 있었다. 그 후 도시농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진 듯했지만, 1999년 토지 소유자의 허가 없이 빈 땅에 텃밭을 꾸미는 '게릴라 가드너' 한 무리가 과거 공업용지였던 곳에 텃밭을 조성하면서 되살아났다. 몇 년 후 '녹색 손'이라는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승인받았고, 이때 파리 시 전역에 원예용 살충제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도 나왔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파리 시가 2000년 이후 무농약 지역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 공원이 많고 기후가 온화한 파리는 벌이 서식하기 좋은 도시이다. 2009년 파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 그랑팔레에 첫 번째 옥상 벌통이 생겼고, 파리 시청 옥상과 샤를 드골 공항 등에 벌통 4개가 있다. 도시양봉가는 파리 시 정부에 등록해야 하며, 벌통은 학교나 병원에서 최소 2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도시농업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전환운동

피크오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전환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도시농업 사례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패서디나 시 스룹교회의 텃밭 조성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2011년 4월 23일, 로스앤젤레스 동북부 전환운동 네트워크와 스룹교회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텃밭을 만들기 위한 첫 삽질을 했다. 공동체 공간을 만드는 협력 사업을 해 보자고 두 단체가 합의한 결과였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를 파내고,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는 작업이 이어졌다. 며칠 뒤 자원봉사자들은 텃밭에 토마토·호박·콩·고추를 심고, 해충이 접근하는 걸 막는 메리골드도 심었다. 아울러 280㎡에 이르는 남쪽의 잔디밭 전체를 물을 적게 쓰는 농사법의 시범텃밭으로 개조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스룹교회의 텃밭 프로젝트는 앞으로 닥쳐올 석유 부족과 자원 제약에 대비해 회복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의 하나다. 회복력 있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목표는 잔디밭을 텃밭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서도 이뤄지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를 알고 협력해 나간다는 점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이다.

도시농업의 형태는 여러 가지다. 주말농장이나 공동체 텃밭이 있는가 하면, 식용 식물 조경도 있고 게릴라 가든도 있다. 양봉이나 양계도 도시농업에 포함된다.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시애틀의 공동체 텃밭에는 어김없이 벌통과 닭장이 있다. 기능 또한 다양하다. 신선하고 안전한 채소와 작물 공급, 산업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자연환경 보전, 온습도 조절과 열섬효과 완화, 수송에너지 절감을 통한 지구온난화 방지, 야생동식물 서식처 제공, 지역 주민 교류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도시민은 단순히 먹거리 소비자, 쓰레기 생산자일 수만은 없다. 먹거리 생산과 환경 보전, 그리고 경제 발전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도시농업은 우리 삶과 도시, 나아가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할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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