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이것만은 똑같다

[정욱식 칼럼] 북핵 능력 평가의 정치학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부류의 세력이 북핵 능력 평가에 대해서는 비슷한 목소리를 내곤 한다. 여기서 세 부류란 북한 지도부와 한미 양국의 대북 강경파들, 그리고 미국의 대북 협상파들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북핵 능력을 최대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북 협상을 촉구해온 필자 역시 북한의 핵 능력 증강을 경고해왔다.

먼저 북한을 보자. 반미 모드로 전환한 북한은 최근 한미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핵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한국을 향해서든 미국을 향해서든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북한은 소멸을 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 국내 정치적으로는 핵 억제력을 '만능의 보검'으로 치켜세우면서 국가적 자부심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고 김정은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커 보인다. 핵 억제력을 통해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경제발전에 힘쓰자는 '병진노선'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을 전환시키겠다는 '강압 외교'의 의도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인정 투쟁의 요구'도 있을 게다.

그런데 북한의 이러한 허장성세는 대북 강경파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가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사드를 앞세워 안보 프레임을 짜서 선거에 임하려다가 금지선을 넘고 만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셈'이다. 그러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이적 행위'에 해당된다며 역공세를 취했다.

작년 10월에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나는 북한이 현시점에 핵 장치를 소형화할 능력과 잠재적으로는 이걸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령관으로서 북한이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고 판단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다"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러자 기자들이 진짜냐고 물었다. 호기를 부리던 스캐퍼로티는 "잘 모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잘 모르면서 북핵 소형화를 제기한 것일까? 그 이유 역시 간단하다. 사드의 한국 내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매년 3월이 되면 미국 워싱턴에선 예산 전쟁이 벌어진다. 때로는 국방비 증액을 위해, 때로는 국방비 삭감을 막기 위해 미국 강경파들은 북한 위협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왔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국방비를 편성한 펜타곤은 북한 위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3월 19일 미 의회 미사일방어체제(MD) 청문회에 나선 세실 헤이니 전략사령부 사령관은 "그들이 이미 핵능력의 일부는 소형화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6일 후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나선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인 KN-08의 배치를 위한 초기 수순들을 이미 밟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평가 역시 북한 위협에 대응해 MD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들이다.

이처럼 툭하면 말 폭탄을 던지는 북한과 북핵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한미 양국의 대북강경파들은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MD와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이에 낀 제3의 세력이 있다. 북핵 능력 강화를 경고하면서 조속한 협상을 촉구하는 대화파들이다.

지난 2월 말 국내외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북핵 미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와 미국 국방대 대량살상무기연구센터가 내놓은 보고서에선 북한이 2020년에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소형화도 상당 부분 진전을 이뤄, 중·단거리는 물론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도 핵탄두 장착이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담겼다.

그러자 이 보고서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왔다. 하나는 너무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 국방부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또 하나의 반응은 국내 보수 언론이 이 보고서의 평가를 들어 조속한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북한이 현재 몇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소형화를 달성했는지는 북한을 제외하곤 알 수 없다. 현재도 알 수 없는데 5년 후 북한의 핵 능력이 어느 정도 강해질지를 분석하는 것은 추측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북핵 능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사드 배치를 비롯한 군사적 대응에 치중하면 그 추세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응책은 엄중하면서도 간명하다. 하루빨리 대화와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새로운 합의를 통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이 영변에 복귀하면 핵물질 생산 현황과 핵무기 제조로의 전용 여부 등 북핵 상황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다. 하기 여하에 따라 플루토늄 생산과 농축 우라늄 생산을 동결시킬 수도 있다.

예전에도 북핵 능력 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1990년대 초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북한이 2000년 경에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2000년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0-2개 사이였다. 2000년대 초반에도 미국 정부는 2010년에 북한의 핵보유량이 50개 안팎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핵보유량은 5개 안팎 정도였다.

미국 특유의 '뻥튀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2000년 북핵 100개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사유는 94년 제네바 합의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2010년 북핵 50개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도 6자회담과 뒤늦게 시동이 걸린 북미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0년에 북핵이 50개가 될지, 100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걸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화와 협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게 북핵 역사의 핵심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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