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경쟁은 치킨게임, 페달을 멈춰야 한다

[한반도 브리핑] 광복 60주년에는 손잡았던 남북,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반도가 심상치 않다. 광복 70주년으로 떠들썩하지만 지금 한반도는 평화로운 통일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언제부터인가 한반도는 지구 상 가장 치열한 군비경쟁 지역이 되고 있다.

북은 핵실험 이후 각종 진화된 미사일 발사를 시험하고 육해공 군사훈련을 강도 높게 하는 한편 핵과 미사일의 결합과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의 군사력 강화와 무력시위 및 무기성능의 진화는 당연히 한국의 군사적 맞대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3년 한미훈련에서 처음으로 핵 폭격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이후 한미 연합훈련은 이제 핵전쟁을 가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북의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선제공격용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 체제가 준비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미국판 MD의 결정판인 사드 미사일 배치까지 공론화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이후 여전히 서해바다는 남북의 팽팽한 군사적 대치 현장이다. 힘껏 당겨진 고무줄처럼 건드리기만 하면 파국을 맞고 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북은 직접 타격을 공언하고 있고 우리는 유사시 원점 타격은 물론 지원세력과 지휘부까지 무자비하게 응징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세계 교역 10위권 국가가 매일 매일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긴장 고조에 노출되어 있고 국지전과 전쟁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한반도가 가장 뜨거운 군비경쟁과 일촉즉발의 전쟁위협에 놓여 있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할 지경이다.

불과 10년 전, 해방 60주년만 해도 한반도에는 평화와 화해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2005년 6.15 공동행사와 8.15 공동행사를 각각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이 함께 모여 성대하게 치렀다. 6.15 행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 합의를 이끌어냈다. 곧이어 재개된 6자회담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9.19 공동성명을 합의·도출했다.

광복 60주년의 한반도는 북핵문제도 진전되고 남북관계도 개선되는 떠들썩한 한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의 한반도는 당시와 완전히 역행하는 정세가 자리 잡고 있다. 6자회담이 실종되고 북핵문제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첨예한 군사적 대치와 정치적 비난이 지배하고 있고 남북의 감정적 기싸움은 이제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우린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서 평화와 대화의 가능성은 포기한 채 그저 군사적 대응과 군사적 억지 수단만을 되뇌고 있고 평화 없는 통일 대박만 공허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 담론에 매몰된 군사주의적 접근과 무제한적인 군비경쟁은 우리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북핵 문제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대화와 협상을 포기한 채 군사적 억지와 방어수단에만 골몰한다면, 한반도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드 배치 찬성론도 사실은 북핵협상 무용론의 연장선에서 제기된 군사주의적 접근이다. 물론 북의 핵위협이 심각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안보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이 북핵 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전히 협상과 외교의 가능성과 역할을 주목하고 고민하고 시도해야 한다. 6자회담과 북핵협상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군사적 억지에만 집중하게 되면 이른바 '안보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들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상대 국가의 방어적 군비 증강을 자국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군비증강으로 맞대응하면, 상대 국가는 또다시 이를 자국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대비하게 된다. 끝도 없는 군비 경쟁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안보를 증진시키려는 행위가 상대방에게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는 '안보 딜레마'는 군사적 억지력과 군비 증강만으로 국제정치에서는 평화가 정착될 수 없음을 설명하는 예리한 분석이다.

안보딜레마는 상대방에 대한 극한의 불안감만 지속적으로 증폭시킨다. 사실상 군사적으로 완벽한 절대 방어란 불가능하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적 억지에만 의존하는 안보는 그래서 절반의 안보일 뿐이다.

북의 핵 위협이 날로 심각해진다면 이에 대비하는 군사적 억지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문제를 풀고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노력과 수단과 방법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핵문제 해결과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을 젖혀둔 채 군사주의와 안보 담론, 그리고 군비경쟁에만 집착할 경우 한반도는 전쟁위기와 안보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한반도를 평화와 화해와 협력의 지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북 모두 평화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군사주의의 맞대결로 달려간다면 그 끝은 파국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군비경쟁으로 지켜지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미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관리하고 상황악화를 막아내는 외교적 노력과 평화의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중국이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중관계의 진전 속에 우리는 그들의 핵무기를 당장의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화해협력이 비가역적으로 진전되고 남북관계가 되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고 한반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그것 또한 북핵에 대한 평화적 해법이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