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올리면 글로벌 기업 떠난다?"

[법인소득세, 왜 지켜야 하나 <上>] '조세 경쟁력'이라는 허구

지난 3월 18일(영국시간 기준) 국제조세/금융 투명성 제고 운동 NGO인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 영국 본부는 전 지구적인 법인소득세 감세 움직임에 대한 반대 캠페인의 일환으로 법인소득세 유지 및 확대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세정의네트워크를 이끄는 존 크리스첸슨과 니콜라스 색슨이 대표 집필을 하였으며 랭캐스터대 법대 명예교수인 솔 피시오토 등의 자문을 거쳤다. 영국 근교 저지섬의 역외금융 자문관을 오래 지낸 조세정의네트워크 사무총장 존 크리스첸슨(John Christensen)과 탐사보도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아프리카 신생국과 유럽권 정치경제 엘리트 사이의 오랜 유착과 부의 유출 문제를 다룬 문제작 <독이든 유정(Poisoned Wells)>과 <보물섬(Treasure Islands)>의 저자이기도 하다.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챕터 대표 이유영이 편역하였다. 필자 주.

"소득세가 부과되는 경우, 동일한 소득에 대해 정의로운 자는 더 많이 낼 것이고 정의롭지 않은 자는 덜 낼 것이다." (플라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현명함을 유지하기 힘든 것처럼, 세금 걷으면서 호감을 사는 재주는 사람의 능력 밖이다." (에드먼트 버크)

"현실세계에서 조세는 삶이다. 조세에 대한 한 사람의 입장을 알게 된다면 그의 철학 전체를 간파할 수 있다. 세법 조항은 잘 살펴보면 삶의 핵심 전체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탐욕, 정치와 권력, 선함과 자선이 깃들어 있는 세법 체계는 사실 삶의 모든 양상 그대로 실려 있기 마련이어서 간소화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쉘던 코언(Sheldon Cohen) 전 미국 국세청장)

전세계에 걸쳐 법인소득세에 대한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무후무할 수준으로 법인소득세를 줄이거나 숫제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조세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정치인, 기업인, 싱크탱크, 대형회계법인, 경제학자 등 발화자들도 다양하다.

사실 법인소득세는 전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래 격감해 왔다. 바꿔 말하면 학교, 도로, 병원, 법 질서 확립 등의 영역에서 법인소득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온 것이다.

최고법인세율이 하락하는 와중에 기업에 의한 조세회피와 탈세 행위 또한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 다국적 기업들은 감세와 세제상의 미비점을 틈 타 날로 배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버뮤다 등과 같은 조세 피난처와 이들의 가장 강력한 로비스트이자 지원자 격인 대형 회계법인들의 조력이 동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인소득세 체계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악의적인 캠페인 덕에 법인세는 악질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세제도라는 믿음 또한 널리 퍼지게 됐다.

이러한 인식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그릇된 믿음과, 오류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릇된 인식을 논파하고 조세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법인소득세의 중요성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법인소득세는 전체 조세체계를 지탱하는 축이다. 정치 경제적 불평등을 억제하고 왜곡된 경제체제가 균형을 잡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또 금융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범죄행위를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대형 다국적기업과 부유한 소유주들이 납세자 재원으로 마련한 도로, 교육시스템, 사법제도 등에 무임승차하여 사회 공동체로부터 부를 사취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법인소득세는 심지어 개발도상국들을 보호해준다. 안정된 법인소득세 체계를 통해 개발도상국은 자립도를 제고하고 해외원조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갈 수 있다.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핵심적 공공서비스 구축의 재원으로 쓰일 수조 달러의 조세수입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두말할 나위 없다.

위에서 열거한 법인소득세의 순기능은 계량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경제 모델 구축에 있어 외면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 폄하돼서는 안 된다.

법인소득세는 왜 지켜야 하는가?

1. 법인소득세는 주요 세원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법인소득세는 주요 세원의 하나이다. OECD 회원국의 경우 법인소득세는 세수입의 약 10%를 차지하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세수입의 15%를 차지한다.

사실 잠재적 법인세원은 방대하다. 1980년대 이래 과세 가능한 법인소득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놀랄 만큼 상승해왔다. 여러 이유 중 다음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임금생활자들이 자본 소유자들과의 정치적 대결에서 패배하고 기술발전이 자본의 투자소득을 현격히 끌어올리는 동시에 다국적 기업들이 조세와 기타 규정을 활용한 글로벌 차익거래를 실행하는 양상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상품가격 상승이 상품 거래 관련 소득을 키워왔지만 물가상승률은 전반적으로 하락해온 것도 그 이유다. 민영화 물결 속에 공공 자산이 기업과 자본 소유자의 수중에 떨어진 많은 사례들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세율 하락과 만연한 조세회피와 탈세 때문에 국민 경제의 법인소득세 수입은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공통적으로 정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각국 정부가 날로 증가하며 투자도 없이 쌓여가는 기업 이윤의 곡간에서 징세로 거두는 몫은 점점 줄어들어가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세수손실 회복 목적으로 다른 명목의 조세가 대거 등장하여 서민층의 곤경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표 1: 미 법인세수입 추이(출처: Center on Budget & Policy Priorities)

위 표 1에서 보듯, 미국의 법인세수입이 전체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몫은 194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반면 임금생활자가 감당하는 몫은 대략 그 감소분만큼 증가해 왔다.

법인소득세 감세론자와 폐지론자들은 종종 법인소득세를 대체할 세목의 설치를 주장하곤 한다. 물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진지하게 제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5년 미국의 경우 법인소득세 수입은 약 4천5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 세수입을 현격히 축소하거나 포기하자는 주장이 실현된다면 그 부담의 상당부분이 어디로 전가될지는 자명하다.

2. 법인소득세는 전체 조세체계를 지탱하는 방어벽이다
법인소득세는 개인소득세를 지탱하는 기초적인 방어벽이다. 사실 여러 국가에서 법인소득세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법인소득세가 폐지된다면, 부유계층의 개인소득세가 빠져나갈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위장법인을 설립해서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이 통상적 개인소득이 아니라 해당 법인의 소득이라 주장하는 식으로 소득세 과세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는 말이다.

법인체를 조세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할수록 세정당국은 대응책의 일환으로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감세하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렇게 훼손된 조세체계는 서민의 비용과 희생으로 부유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로 이런 시나리오 하나 만으로도 법인소득세를 지켜야 하는 사활적 이유를 알 수 있다.

3. 법인소득세는 불평등을 억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예전 같으면 임금, 복지혜택, 조세 등으로 임금생활자와 사회의 몫으로 돌아갔을 경제적 수익을 기업들이 움켜쥐게 되면서 법인소득은 치솟아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폭증하는 법인소득은 기업계의 점증하는 정치적 파워로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견고한 법인소득세는 경제적 불평등 만이 아니라 정치적 불평등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기업이 소유한 부의 상당부분은 부유층의 손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전체 회사 주식의 90%는 소득 분포를 따졌을 때 상위 10% 계층이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 보유 몫은 50%를 상회한다. 법인소득세 축소 또는 철폐론자들은 임금생활자들이 궁극적인 법인소득세 부담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런 부유한 자본소유자들이 법인소득세의 가장 큰 몫을 부담하고 있는 게 맞다.

따라서 법인소득세는 국가가 집행할 수 있는 가장 누진적인 조세제도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며, 개별 국가 내에서 만이 아니라 요즘의 글로벌 자본이동성을 고려할 때 국가 간의 불평등을 완화하는데도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국가의 조세 '경쟁력'이란 말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법인소득세는 국민 복지 수준을 향상시킨다
법인소득세를 감세하면 국가 조세체계의 경쟁력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주장에 현혹되기가 무척 쉽다. 하지만 법인소득세 감세와 조세체계 경쟁력의 관계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설득력이 있다.

조세 '경쟁력' 이데올로기는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그 환상이 깨진다.

법인소득세는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는 비용이 아니라 경제 체제 내에서의 부의 이전 통로이다. 즉 법인소득세는 부를 창출하는 개별 섹터인 기업에서 역시 부를 창출하는 개별 섹터인 정부로 부가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교육이나, 도로망 확충 또는 치안 서비스 등을 통해 또 다른 부를 창출하고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법인소득세 감세는 국민 복지를 훼손하는 다층적이고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으며, 막대한 규모의 부의 유출을 야기할 수도 있다. 결국 감세를 통해 남겨진 이윤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주주들에게 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소득세 감세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투자 유인책이 되기도 어렵다. 오히려 이윤 유출에 몰두하고 교묘한 회계처리에만 능숙한 비생산적인 투자의 유인책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변동성이 크고 조세체제에 민감한 투기자본은 지역 경제에 뿌리 내릴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이렇게 유치된 자본은 지대추구와 이윤 짜내기에 능하며 생산 확대와 고용창출에는 미흡하다. 같은 맥락에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한시적 비과세혜택, 보조 금융 또는 토지 제공과 같은 널리 쓰이는 인센티브는 해외 투자에 있어서 가치를 훼손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 지적한 바 있다. IMF 또한 조세제도는 해외 기업들의 입지 선정에 있어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 영국 정부의 법인세 인상 가능성에 대한 구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에릭 슈미트 회장은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영국 친구 여러분들이 조세를 어떻게 다루든, 영국 자체가 우리 구글에게 너무나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를 멈추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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