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절'이 미국 '크리스마스'를 대체할까?

[유라시아 견문] 방콕의 춘절

2015년 새 연재 '유라시아 견문'이 3월 10일 닻을 올렸습니다. 그 동안 '동아시아를 묻다'를 통해서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시각을 보여줬던 유라시아 연구자 이병한 박사(연세대학교 동양사학과)가 앞으로 3년 일정으로 유라시아 곳곳을 직접 누비며 세계사 격변의 현장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유라시아 견문'은 매주 화요일, 독자를 찾아갑니다. (☞관련 기사 : ① 지금 '한미 동맹' 타령할 때가 아닙니다!, ② 서구 몰락 예언한 유길준, 우리는 그를 몰랐다, ③ 마약왕이 된 반공열사, 골든트라이앵글의 비밀)

하늘길

치앙라이에서 방콕까지는 하늘길을 이용했다.

이륙 후 한 시간 반이 지나자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유서가 깊은 공항이다. 1914년에 개장했으니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그 세월만큼이나 사연도 구구하다.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과 악연이 깊다. 미국 공군이 주둔하는 베트남 폭격의 전초 기지였다. 폭격기의 80%가 이 공항에서 출격했다. 정점을 찍었던 1969년에는 당사국이었던 남베트남보다도 많은 미군들이 돈무앙에 근무했다. 태국(타이)은 북베트남이 주도하는 '붉은 인도차이나' 저지의 핵심 보루였던 것이다.

태국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시암(Siam)과 월남(越南)은 오랜 앙숙이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두고 18세기부터 치열하게 경합했다. 특히 태국은 입헌군주제를 고수했다. 이웃 라오스 왕정도 은밀하게 지원했다. 그리하여 동남아의 내전과 냉전은 좌우 대결만큼이나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길항으로도 치열했다. 베트남의 인도차이나주의와 태국의 범타이주의의 알력은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1961년 주둔을 시작한 미 공군이 완전히 철수한 것은 1976년이었다. 1975년 베트남 통일(4월)과 라오스인민공화국의 수립(12월)으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그들의 임무는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미국 본토나 하와이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일본으로 '복귀'(1972년)한 오키나와로 거처를 이전했다. 이로써 오키나와는 세계 최대의 미 공군 기지가 되었다.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오키나와 문제의 불씨를 더욱 키운 것이다.

군항기가 떠난 돈므앙만큼은 민항기의 전성기를 맞았다. 미군이 전투의 고단함을 달래고자 방콕을 휴가지로 삼았던 전쟁기의 유산(Rest & Recreation)이 관광 산업 부흥이라는 역설을 낳았다. 초창기 손님들은 거개가 미국과 유럽 출신이었다. 동양에서의 유흥과 환락을 탐했다. 1980년대부터는 일본,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배낭족들도 방콕을 찾았다. 명실상부 동남아 여행의 허브이자 배낭 여행의 메카가 된 것이다. 새 천년에는 단연 대륙의 요우커(旅客)들이 몰려들고 있다.

하여 돈므앙만으로는 더 이상 여객들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2006년 규모를 대폭 늘린 수완나품 공항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돈므앙 공항은 국내선 전용으로 2007년 재개장했다. 그러나 태국을 찾는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신공항의 수용 한계치를 훌쩍 넘어서버렸다. 특히 아세안 내부의 인구 교류가 확대일로이다. 2000년 이후 매해 두 자릿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아세안 창구를 따로 두었을 정도이다.

역내 인구 이동의 폭발로 아시아 저가 항공사들도 활황을 누리고 있다. Air Asia, Nok Air, Orient Airline, Viet Jet 등 다양하다. 돈므앙은 아시아 역내 교류를 주도하는 저가 항공사들의 허브 공항으로 탈바꿈하였다.

돈므앙의 주요 연결망을 보노라면 그 성격이 한층 도드라진다.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호치민, 양곤, 충칭, 자카르타, 광저우, 우한 순으로 연결 빈도가 높다. 아세안과 남중국이 하나의 권역으로 엮이고 있는 것이다. 이 하늘길을 오고가는 사람들도 왕년의 정부 관료, 대기업 임원, 교수 등이 아니다. 보따리 장사부터 가족 여행까지, 쇼핑과 관광이 대세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놀고 쉬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변동, 생활 감각의 변화이다. 당장 나만 해도 저가 항공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사회주의 티를 낸답시고 베트남은 외서 반입에 유독 까탈이다. 검열에 세금까지 왕창 매긴다. 해서 영어와 일어, 중어 책을 구하려면 방콕이나 싱가포르에 다녀오는 편이 낫다. 왕복 10만원 남짓이니, 해외 배송에 견주어 남는 장사이다. 게다가 서점 또한 기노쿠니야(紀伊国屋). 도쿄 유학 시절 애용했던 일본 대형 서점의 해외 지점이다. 여러모로 아시아가 하나의 생활 세계가 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Global 春節

돈므앙 공항은 붉게 치장되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거리도 온통 홍색 물결이었다. 때는 마침 설날 무렵, 중국식으로 '春節(춘절)'이었다. 최고 기온 37도, 방콕의 새봄맞이가 한창이었다. 우연찮게 차이나타운도 통과했다. 규모와 발전 면에서 동남아 으뜸을 자랑한다는 야오와라트(Yaowarat) 거리를 지나갔다.

200여 년 전부터 이주가 시작되어 지금은 50만 명의 화교/화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조상들은 시암의 왕궁과 사원을 짓는 건설 노무자였다. 후세들은 선조들의 이동로를 따라 남중국과 동남아를 잇는 상업망과 무역로를 발전시켰다. 거개가 광둥성(廣東省)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조주화(潮洲话)가 통용되었다. 광둥성 동편의 토박이말이다.

▲ 태국(타이) 방콕의 차이나타운. ⓒ이병한

올해 춘절은 특별히 남달랐다. 중국 문화부 부부장 쟈오웨이쉬(赵维绥)가 몸소 중국 8개 지역의 예술단을 이끌어 방콕을 방문했다. 거리는 홍등으로 장식되고 용춤 퍼레이드도 펼쳐졌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신춘(新春) 고객들에게 새해 운수를 봐주며 홍색 봉투를 선물했다. 대륙 못지않게 흥이 올랐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매력 공세였다.

기실 태국에서 음력설은 공휴일도 아니다. 중화 세계의 외부였던 것이다. 춘절은 차이나타운의 마을 행사에 그쳤을 것이다. 올해로 본토 예술단 방문 5년차, 이제는 1~2월 방콕 여행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방콕 시민들은 물론이요, 태국을 찾는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는 만인의 축제가 된 것이다.

각국의 여행객들은 동방의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밤새도록 붓고 마셨다. 현지의 태국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절과 사원을 찾아 부처님께 새해 복을 빌었다. 2015년, 조선이 陽曆(양력)을 도입한 지 어언 120년이다. 지난 세기 양력의 유입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전 지구적 축제가 되어갔다. 그러하면 이번 세기, 춘절이 세계적인 봄맞이 행사로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갈 것인가?

차이나타운의 한자 표기는 '唐人街(당인가)'. 당인들의 거리라는 뜻이다. '당인'이란 애당초 종족도, 민족도, 국민도 아니었다. 대당 제국에 거주하는 만국(萬國)인들, 세계 시민(cosmopolitan)의 원조였다. 내 가방 속에는 <대당 제국과 실크로드>라는 일본 책이 들어 있었다. 수도 장안의 일상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어렴풋이 21세기의 지구촌이 비치는 듯했다.

런던과 뉴욕, 테헤란과 뭄바이를 붉게 물들이는 춘절을 상상해 본다. 한참 꿈 나래를 펼치던 차, 저 앞으로 "China and the AEC under the new silk road"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몽상을 거두고 이성을 깨웠다. 회의장 문을 열고 현실계로 들어섰다.

ⓒ이병한

ⓒ이병한

대중화 공영권?

해양 실크로드 구상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13년 브루나이에서 열린 16차 아세안-중국 정상 회의였다. 리커창 총리는 경제 발전과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전략적 신뢰와 이웃애를 증진시키자고 역설했다. 시진핑 주석 또한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의회 연설에서 해양 실크로드 건설을 주창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운명 공동체"라고 말을 보태었다.

두 지도자가 임기를 다하는 2022년까지 '一帶一路(일대일로)'는 열쇠 말이 될 것이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중국 고위인사들이 참여하는 숱한 회의에서 줄기차게 듣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아세안 또한 올해 또 한 번의 역사적 획을 긋는다. 오는 12월, 인구 6억의 단일 시장 AEC(ASEAN Economic Community)로 진화하는 것이다. 마침내 무비자, 무관세의 장벽 없는 경제 공동체가 출범한다. 특기할 점은 아세안 국가 간 장벽 허물기에도 중국의 역할이 다대하다는 것이다. 미얀마-태국 간 도로 건설을 지원하고, 태국과 라오스 간 다리를 놓으며, 라오스와 베트남을 잇는 철도를 보수해주고 있다.

실로 중국은 아세안의 최대 교역국이다. 또 아세안은 유럽연합과 미합중국에 이은 중국의 3대 교역 상대이다. 2014년 중국과 아세안의 교역은 8.3% 증가했다. 평균 4.9%를 훌쩍 상회하는 수치이다. 양자의 교역액은 4800억 달러, 올해는 5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2020년에는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면 산출 표기가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일지 모른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는 중국과 교역이 가장 많은 국가들이며,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은 중국과 교역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또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 싱가포르는 중국의 투자액이 가장 많은 국가들이기도 하다. 중국과 아세안의 상호 투자는 2020년까지 1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투자액 중 상당 부분이 해양 실크로드 건설에 투입될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미국의 마셜플랜(Marshall Plan)에 빗대는 경우가 있다. 마셜플랜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재건을 위한 원조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갈라치기(devide and rule)였다. 서유럽을 소련과 동유럽에서 분리하고, 자유 아시아를 공산 아시아와 분할하는 정책적 방편이었다.

유라시아의 서단과 동단을 아메리카와 접속시킴으로써 소련과 신중국을 축으로 한 유라시아를 봉쇄하는 전략이었다. 분할과 분단으로 유라시아의 통합을 가로막는 것은 지금껏 '거대한 체스판'을 다루는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방침이다. 연결과 통합을 지향하는 일대일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퍽이나 우호적인 해석이라고 하겠다.

서방의 지역 통합(NAFTA, EU)과 중국의 일대일로를 구분 짓는 견해도 제출되었다. 서구형 지역 통합은 '경제적 자유화'를 핵심으로 삼는다. 다자 간 협정으로 교역과 투자를 위하여 국가 간 법률과 제도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일한 규칙과 표준을 마련한다. 자본의 운동을 최대화, 최적화할 수 있는 '평평한 세계'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지역 통합은 '교류의 촉진'에 있다. 시장의 연결망을 더욱 확대시킴으로써 교역과 투자를 강화한다. 가령 교통망과 통신망의 확충, 인적 교류의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라시아를 순환하는 범대륙적 회랑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특정한 제도와 가치, 표준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체 통합 과정을 규율하며 '체제 이행'(Regime Change)을 요구하는 초국가적 관료 기구도 필요치 않는 것이다. 역시나 꽤나 호의적인 평가이다. '대중화 공영권'에 대한 우려로 치열한 난상토론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다소 김이 빠졌다.

세대 교체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겠다. 이 학술회의는 태국의 중앙은행인 태국은행이 주최했다. 그런데 태국은행을 좌지우지하는 막후 자본가들이 화교/화인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태국 인구의 14%에 불과하지만, 태국 돈줄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화교/화인 자본이 중국의 개혁 개방에 일조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쌓인 대륙의 부가 이제는 주변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태국 및 동남아의 화교/화인 자본가들이 중국의 해양 실크로드 구상에 호의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아니, 그들이야말로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선구자라고 자임할 법도 하다.

정치적으로도 무척 미묘한 시점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파행을 거듭하던 태국 정계는 지난해 다시금 군부가 전면 등장했다. 내년 초까지 한시적인 계엄령 상태이다. 미국은 조기에 민간 정권으로의 이행을 독촉하고 있는 반면에, 군사 정권은 태국에는 태국의 사정이 있다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특히 2월에는 양국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다니엘 러셀이 태국의 한 대학 강연에서 현 상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육군 참모총장 출신 프라윳 총리가 반박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태국은 미국의 오래된 맹방이다. 양국의 우호 조약은 1833년에 체결되었고, 방콕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미국 대사관이 자리한다. 그만큼 태국 정부가 미 대사를 직접 소환하여 항의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중국이 파고드는 형세이다. 의례 '내정 불간섭'이라는 '신형 대-소국 관계'의 원칙을 앞세웠다. 사사건건, 시시콜콜, 시비를 걸지 않는다. 서구식 민주주의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식 일당 통치를 따르라고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중국 문화부는 양국의 우의를 기리는 춘절 선물이라며 태국 정부에 백옥 사자상을 선물했다.

이에 화답하듯 왕실의 둘째 공주 시린돈(Sirindhorn)은 중국식 전통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차이나타운을 방문하여 문화 행사를 관람했다. 시린돈 공주는 노환이 깊은 푸미폰(Bhumibol) 국왕이 세상을 등지면 왕관을 물려받을 수 있는 유력한 후보이다. 태국은 여왕 계승을 인정하는 법률 개정을 진즉에 마쳤다.

작금의 군부 통치 또한 '민주화로의 재이행'보다는 두 공주와 막내 왕자 사이의 알력을 조정하여 왕위 계승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밀실 정치라는 설이 유력하다. '태국의 사정'이란 것도 이러한 정황을 말하는 것일 테다. 전통적으로 태국 군부는 정권보다는 왕실에 충성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왕가는 지속된다. 국군보다는 황군에 가깝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즉위부터 현재까지 오롯이 미국의 패권기와 함께 일생을 보냈다.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의 혁명에 맞서 미국 편에 가담했던 것도 자유 민주주의 수호보다는 입헌 군주제의 보위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욱 합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동남아 혁명을 옹호했던 신중국은 푸미폰 국왕의 주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기에 그의 딸이 직접 차이나타운을 방문하여 춘절을 즐기는 현재의 모습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에도 능통하며 태국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이기도 하다. 태국 왕실에 흐르고 있는 남중국계의 핏줄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세기가 바뀌고 세계가 변화하고, 그 달리진 세상을 이끌어갈 세대도 교체되고 있다.

그 변화하는 세계의 단적인 단서로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출범을 꼽을 수 있다. 태국은 2014년 베이징에서 일찌감치 AIIB 가입을 공식화했다. 돈므앙 공항과 방콕 시내를 잇는 고속도로에도 'Global Financial Bridge'라는 중국공상(工商)은행의 광고판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전 지구적 금융 질서가 가파르게, 확, 달라지고 있다. AIIB의 역사적 의미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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