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 농민들 가슴에도 대못 박았다!

[우석훈 칼럼] 무상급식을 넘어 공공급식으로

10여 년 전에 몇 명이 모여서 '농업공부모임'이라는 작은 조직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 모임에선 농지 제도와 직불제 같은 것들을 주요 주제로 공부했다. 작은 조직이었지만, 여기서 논의된 것 중 현실이 된 것이 많다. 직불제도 도입이 되었고, 도시민들의 대규모 농지 투기를 열어주는 농지법 개정안을 막아냈고, 그 대신 농지은행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10년 전 농업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는 그룹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 같이 논의된 것이 급식 문제였다.

그 시절, 초창기의 급식 논의는 주로 3대 급식에 관한 얘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학교 급식이었지만, 작업장 급식, 군대 급식에 관한 것도 같이 논의됐다.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형 작업장의 급식을 어떻게 하면 국내 농업과 연결시킬 것인가, 혹은 군인들이 먹는 군대 급식을 친환경급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한가, 이런 게 주요 논의주제였다. 일부 대학에 있는 학생생협과 학교 급식 체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도 같이 논의됐다. 어쨌든 학교 급식 논의 초창기에는 농업에 관한 논의가 기반이 됐었다. '무상' 혹은 '의무'라고 불리는 급식 비용에 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국내 농업과 급식을 연결시킬 것인가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급식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가 됐다. 잘 나가는 정치인 중 일부는 급식을 늘릴 것이냐,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이냐 등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기도 했다. 경기도 교육감이었던 김상곤 교육감도 걸었고, 오세훈도 걸었고, 지금은 홍준표도 걸고 있다. 급식 문제는 복지의 최전선이기도 하고, 정치의 최전선이기도 했고, 보수와 진보의 갈림길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돌아보고 나면 사회적으로 급식 논의가 지나치게 비용 문제로만 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있다.

급식의 초창기 논의에는 '한국 농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강했다. 점점 고령화 되어가는 농가에 안정된 수요를 사회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과 유기농 등 친환경농업의 비율을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같이 있었다. 농업이라는 거대한 산업과 비교하면 학교급식의 비용 자체는 오히려 소소한 측면이 있다. 쌀에 관한 여러가지 보조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업예산을 조금만 급식 쪽으로 돌리면 학교는 물론 군대까지도 친환경 급식을 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복지예산이나 특히 지자체의 예산을 가지고 부모가 돈을 낼 거냐 아니냐, 그런 식으로 논의가 흘러가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급식에 관한 조치는 솔직히 어이 없는 일이다. 여당 내에서 '서민정치인'을 내세웠던 홍준표에 대해서는 반값 아파트 시절에 아주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무상급식 관련 조치를 취하면서 교육 예산만을 보며 급식과 '학습'이라는 틀을 걸었다. 그러나 농업이라는 관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보자. 예를 들면, 경남도의 농민들에 관한 다양한 지원방식, 혹은 '로컬푸드' 같이 그 지역의 농산물을 도내의 근거리에서 소비하는 문제로 눈을 돌려보면 홍 지사의 조치는 반농업적이고 반생태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0년, 한국에서 단체 급식도 다양하게 진화해 왔다. 학교에서만 밥을 먹는가? 그렇지는 않다. 노인들과 관련된 복지시설에서도 밥을 먹고, 어린이집도 밥을 먹는다. 유치원?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다양한 공공의 시절들에서 밥 먹는 것을 통칭 '공공급식'이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의 공공급식 1번지는 서울 성북구다. 학교급식과 관련된 유통과 거래 등을 총괄할 기구가 필요하다보니 학교급식센터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기왕에 만든 시스템을 활용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도 원가절감과 함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모을 수 있는 것을 모아내면 농민에게도 도움이 된다. 연간계약을 늘리면 늘리수록 농민들도 편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절약된 돈을 가지고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지원을 늘릴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성북구 바로 옆동네 종로구에서는 어린이집의 급식은 안전한 급식 정도를 보장하려고 하고 있다. 아직 친환경급식까지 전면적으로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아기 키우는 아빠로서, 나도 당연히 우리 아이들에게 친환경급식을 주고 싶다. 이건 아직 공공이 하는 일이라서, 돈 더내고 우리 아기들만 좋은 거 주세요, 이렇게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바로 옆동네인 성북구로 이사가는 일인데, 쉬운 선택은 아니다. 빨리 종로구에도 친환경급식 체계가 좀 더 발전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이런 게 시행되고 안정화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학교 무상급식은 급식 논의의 출발점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가 다음 단계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급식의 틀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 국토생태의 건전성 강화 등을 도모할 수 있는지가 다음 단계이다. 로컬푸드는 완주, 전주 등 농업이 강한 지역과 그 주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된 상황이다. 경남도라고 이런 곳과 다를 이유가 없다. 학교급식을 무상에서 유상으로 하는 것은 그냥 복지 시스템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로컬푸드 등 지역 농업에 대한 미래의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다. 사소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급식과 농업 그리고 식량의 미래를 지우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준표는 경남도의 부모들에게만 못할 일을 한 게 아니라 경남도 농민들에게도 못할 일을 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급식 자체의 발전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미래의 방향을 재검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경남도에도 어린이집도 있고, 유치원도 있고, 농민도 있지 않은가? 몇 년 지나면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많은 어린이집이 친환경급식으로 전환될 것이다. 경남도만 무상급식이냐 아니냐, 현 단계의 논의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성북구나 종로구 같은 곳보다는 경남도가 친환경급식을 저렴하게 하기에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리적 조건만 보면 경남도가 성북구보다 먼저 어린이집에 대한 친환경급식을 추진하는 게 맞다. 멀지도 않고, 보관도 쉬운 것, 그게 로컬푸드의 경제적 장점 아니겠는가?

급식 자체만 놓고 무상이냐 유상이냐, 이건 오히려 좁은 질문이다. 급식의 지역 농업에 대한 기여, 경남도가 이런 문제를 재검토하기를 희망한다. 학교 가기 전 유아와 어린이들, 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 왜 경남도의 아동들만 차별받아야 하는가?

* 경제학자 우석훈 씨의 칼럼을 다시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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