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마지막 카드', 성공할까?

[인터뷰]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가 본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

지난 3월 9일, 유럽중앙은행(ECB)은 1년 이상 만지작거리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저성장과 저물가로 인해 디플레이션 형 경기 침체의 깊은 늪에 빠진 유로존의 '마지막 카드'로 불리는 이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가 세계 경제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의 약 3퍼센트대의 높은 GDP 성장률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이 6년여에 걸친 대규모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고, 일본의 '막대한 돈 잔치'인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가 아직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시점에 시작된 유로존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한국 경제도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로존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한국의 금리와 환율, 수출과 증권 시장에 끼칠 영향을 사전에 철저히 분석하고 진단해 시의적절한 처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박영철 전 원광대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로부터 유로존 경제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3월 초부터 중순까지 이뤄졌다. 아래는 박 전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이제야 시행하는 까닭


전희경 : 유럽중앙은행이 3월 9일 발표한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유럽연합(EU, 28개 국가) 전체가 아니라 유로존(Eurozone)의 19개 국가에만 관련된 정책이지요?


박영철 : 좋은 지적입니다. 유로 단일화를 사용하는 나라는 유럽연합 회원국 중 19개 국가입니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주요한 국가는 영국, 스웨덴, 덴마크와 폴란드 등입니다. 유로존의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입니다.


전희경 :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박영철 : 유럽연합의 총 GDP는 2014년 세계 총 명목GDP의 24퍼센트로 미국보다 더 큽니다. 그보다 회원국이 적은 유로존(19국)의 총 GDP도 2014년 세계 총 GDP의 17퍼센트로, 1위인 미국(22퍼센트) 다음이며 3위인 중국(13퍼센트)보다 큽니다. 유의할 점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 이 네 나라의 GDP가 유로존 전체 경제 규모의 76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최근의 유로존 경제 상황을 요약해주십시오.


박영철 : 2014년의 주요한 경제 지표를 보면 GDP는 12조7500억 달러, 성장률은 0.3퍼센트,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6(2005년=100), 실업률은 11.2퍼센트입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22.9퍼센트)이 높습니다. 재정 적자는 -2.9퍼센트 GDP, 정부 부채는 90.9퍼센트 GDP, 경상수지 흑자는 2퍼센트 GDP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유로존 전체와 주요국의 GDP 대비 적자를 보여줍니다. 마이너스는 적자를 나타내는데, 2009∼2011년에 적자 폭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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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 이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유럽중앙은행이 왜 '마지막 카드'로 알려진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철 : 그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중요한 이유는 유로존의 최대 경제 국가인 독일의 경제 이념 때문입니다. 독일은 '자유시장 경제'를 철저히 신봉하는 국가로 중앙은행의 유일한 임무는 '물가 안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균형 재정을 목표로 한 '긴축 정책'을 통한 경기 회복을 강요합니다. 따라서 '유로존을 유지하는 데 동의하지만, 그 조건은 독일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양적 완화의 효과를 자신하는 유럽중앙은행 총재


전희경 : 잘 알겠습니다. 이번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규모 : 매달 600억 유로(약 660억 달러) 상당의 자산 매입을 단행하는 바 프로그램의 총액은 1조1400억 유로가 될 것이다.

2) 기간 : 2015년 3월 9일부터 2016년 9월 31일까지이나, 필요한 경우 그 기간을 늘릴 수 있다.

3) 범위 : 매입 자산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유로존 국가 은행이 발행한 채권, 정부 기관이 발행한 증권, 민간이 발행한 채권 등을 모조리 사들일 예정이다. 다만 회사채는 제외한다.

4) 목적 : 프로그램의 목적은 저성장과 저물가의 늪에 빠진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규모의 자산 매입과 그에 따른 저금리의 지속적인 유지를 통해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동시에 현재 제로 또는 마이너스에 머무는 인플레이션을 3년 안에 2퍼센트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015년에는 제로 인플레이션 탈피, 2016년에 1.5퍼센트 인플레이션, 2017년에 1.8퍼센트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한다. 2퍼센트 미만의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여 실물 경제에서 투자를 촉진하고 생산성을 향상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노동 시장을 개혁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하여 GDP 성장률을 2015년에 1.5퍼센트, 2016년에 1.9퍼센트, 2017년에 2.1퍼센트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www.tradingeconomics.com/euro-area/indic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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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 대단히 야심만만한 프로그램인데 이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박영철 : 거의 모든 전문가가 세계 경제의 장래를 위해 이 프로그램이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봅니다. 그러나 실패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관할 유럽중앙은행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당연히 가장 대표적인 낙관론자입니다. 그는 양적 완화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믿는 사람입니다. 2012년 6월 26일에 행한 드라기 총재의 연설은 소위 '드라기 독트린'으로 불립니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Whatever it takes)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드라기 총재는 거기에다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이유로 이 프로그램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 저유가가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저유가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이것은 하늘이 내린 보너스다. 물론 저유가는 양날의 칼이다. 소비자에게 일종의 세금 감면으로 소비를 촉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상승을 저해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2) 유로의 실효 환율이 약세로 지속할 것이다. 특히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날 경우 그 수혜 폭이 더 확대될 것이다. 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3) 최근 실시한 유로존의 제한적인 통화 정책이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4) 유로존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었다고 본다.


일부 전문가들이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이유


전희경 : 저는 드라기 총재의 희망대로 되리라고 보기에는 현재 유로존의 경제 상황이 너무나 어렵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비우호적이라고 봅니다. 또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이전에 시행한 다른 나라의 경우,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이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마저 최근 미국 경제 회복과 높은 GDP 성장률이 반드시 이 양적 완화 정책의 결과라고만 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부작용, 특히 날로 심화하고 있는 소득 양극화가 큰 사회적 및 정치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 성공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박영철 : 주가 예측보다야 조금 나은 편이지만, 유로존과 같이 큰 경제 블록의 경제 정책의 실효성을 예측한다는 것은 적중률이 일기예보보다 매우 낮습니다. 특히 유의할 사항은 유로존 회원국이 보는 성공 기준이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튼튼한 독일과 같은 나라에는 이번 조치가 일종의 경기 순환적인 부양책이지만, 그리스나 남유럽 국가들에게는 이번 양적 완화의 성공이 유로존 탈퇴 여부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 같은 한계점을 유의하면서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간략히 종합해보겠습니다. 주로 실패할 가능성을 추정하는 의견입니다.


1) 하버드대학 교수 로렌스 서머스는 '구성의 오류' 때문에 이번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구성의 오류란 '개인의 입장에서 유리한 행동이라도 전체가 따라서 그 행동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흔히 드는 예가 극장 안에서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다른 관객들이 다 일어서면 이 행동은 아무 효과가 없게 됩니다. 서머스 교수의 뜻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일본이 대대적인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수년간 해오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종종 금리 인하와 환율 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세계 경제라는 극장 안에서 수십 명이 벌써 서 있는 상황인데 이제야 유로존 국가들도 여기에 동참한다면 연극이 더 잘 보일까? 나는 그 효과에 매우 회의적이다." 다시 말하면 기대하는 양적 완화의 효과가 절감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2) 서머스 교수가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성공을 낮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재정 확대 정책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머스 교수는 최근 재정 확대 정책과 구조조정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3) 미국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한 논쟁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이 성공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 성공에는 다른 요인들이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다수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은행 분야의 금융을 위한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을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 적극적으로 추진한 점, 둘째 셰일 가스 및 정유 에너지 산업의 호황, 셋째 제한적으로 시행한 재정 확대 정책 등입니다.


4) 2008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건전한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유로존의 경우 이 같은 생산성 증가를 가능케 할 요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5) 유로존의 장·단기 금리는 현재 너무 많이 내려와 있어서 더 내려갈 여지가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전희경 : 교수님은 비관적인 편이신가요?


박영철 : 그런 편입니다. 이번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보다 유로존의 경제 구조 자체에 대해 걱정이 더 큽니다. 최근에 제임스 갤브레이스가 저서 <정상의 종언(The End of Normal)>에서 주장했듯이 이제 세계 경제, 특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에서는 기존의 경제 성장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정부와 기업의 의지와 목표가 너무 초단기적이고 이기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나 다국적 기업 간의 공조와 협력은 말치레에 그치는 상황입니다. 벌써 국제 투기꾼들이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허점을 찾아 맹공을 준비하고 그리스가 아직 유로존 탈퇴 카드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씁쓸하지만 냉혹한 현실입니다.


전희경 :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원광대에서 은퇴한 후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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