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김윤태 칼럼]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정치 비교하기

다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이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모든 복지제도는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특정한 복지제도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정당의 선거 전략과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준다. 대중적인 여론의 지지는 급진적인 개혁과 가혹한 복지축소에 맞서 복지국가를 보호하는 주요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이다. 정당 정책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듯이 여론과 복지국가는 쌍방향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정부의 정책과 복지국가의 제도적 발전은 복지국가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한다. 동시에 복지국가에 대한 여론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일 때 친복지적인 정책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길, 스웨덴의 길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영국과 스웨덴에서 동일한 이념 성향의 중도보수 정부가 집권했지만 정책 방향은 매우 달랐다. 캐머런과 라인펠트는 젊은 정치인으로 서로 친밀한 사이임을 과시했지만, 정책 기조는 매우 달랐다.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의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은 집권 첫 해부터 '긴축'을 정책 기조로 정했다. 반면에 스웨덴에서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온건당 주도 중도우파 연정이 집권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오히려 복지재정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가?

무엇보다도 영국과 스웨덴 국민의 복지태도는 두 나라 중도우파 정부의 복지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주기적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은 대중의 생각과 동떨어진 정책을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이한 복지제도와 대중의 복지태도가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혜택의 범위가 좁고 급여와 서비스의 수준이 낮은 선별적 복지는 부정적 복지태도와 상관관계가 높다. 반면에 복지혜택의 적용 대상이 광범하고 복지 수준이 관대한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는 긍정적 복지 태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최근 복지태도를 주제로 하여 조사가 이루어진 유럽사회조사(European Social Survey) 2008년 자료와 국제사회조사(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 ISSP) 2009년 자료를 보면 흥미 있는 결과가 드러난다.

먼저 유럽사회조사 자료를 보면, 영국에서도 노인의 생활수준과 환자를 위한 보건의 정부 책임을 지지하는 의견은 스웨덴보다 높았다. 그러나 실업자의 생활수준 보장과 일하는 부모를 위한 아동 돌봄 서비스에 대한 지지도는 상당히 낮았다. 또한 증세와 복지 확대에 대한 지지도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캐머런 총리가 왜 실업자에 대해서 강력한 복지축소를 추진하는 반면에, 노령유족과 상병의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스웨덴 국민이 영국 국민보다 복지 급여와 서비스의 빈곤 예방과 불평등의 완화, 일과 가정 균형에 대해 더 많이 지지한다. 영국 국민은 스웨덴 국민보다 복지 급여와 서비스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며, 대다수 실업자들이 구직 활동 대신 복지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영국의 보수-자민 연정이 급격한 복지 축소를 시도하면서 주로 저소득층에 대한 자산조사형 급여의 삭감을 밀어붙이는 이유이다.

왜 영국 사람들은 빈곤층 지원을 반대하는가?

비록 영국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먼저 복지국가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가장 빈곤율이 높은 나라이다. 1980년대 대처 총리가 자산조사를 통한 선별적 복지를 대거 도입하면서 소득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빈곤층을 지원한 복지에 인색하다. 왜 그럴까?

2009년 국제사회조사(ISSP) 자료에서 영국과 스웨덴의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소득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보면, 영국과 스웨덴 국민들의 차이가 별로 없다. 두 나라에서 모두 소득 불평등이 지나치게 높다는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의 완화에 대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에 대한 높은 소득세율 인상에 대한 지지는 오히려 영국에서 약간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영국에서 실업과 빈곤에 대한 인식은 스웨덴보다 매우 부정적이다. 영국 국민들은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스웨덴 국민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에도 우호적이지만,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빈곤층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영국인의 복지태도는 주로 실업자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조사형 급여의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 중산층과 저소득층 사이에 복지 혜택의 분절이 뚜렷하게 발생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중산층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빈곤층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최근 <영국 사회태도 조사>(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를 보면, 1997년 이후 블레어 정부가 집권한 기간에 증세와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영국 국민의 비율은 60% 수준에서 30%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복지 급여의 삭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0% 선에서 40% 선으로 하락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비율도 50% 선에서 30% 선으로 낮아졌다. 반대로 같은 기간 실업 급여의 수준이 너무 높아 근로 의욕을 저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 선에서 60% 선까지 높아졌다. 80%가 넘는 영국 국민이 다수의 부정 수급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노동계급과 노동당 지지자들의 실업과 빈곤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나빠졌다. 반면 95%가 넘는 영국 국민은 여전히 정부가 적절한 연금과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제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복지태도의 분절과 전반적인 여론의 악화는 근로윤리를 강조하며 근로연계복지(workfare)와 빈곤층만 겨냥한 표적화(targeting)를 통한 자산조사형 급여를 강조했던 블레어 정부가 만들어 낸 정치적 결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머스가 지적했듯이, 선별적 복지가 빈곤층에 대한 스티그마와 낙인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왜 스웨덴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가?

영국과 달리 스웨덴의 중산층은 여전히 국가가 제공하는 폭넓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으며, 복지국가의 축소를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2010년에는 전체 16~64세 스웨덴 인구의 54%에 해당하는 320만 여 명의 인구가 아동 가족 급여, 건강 급여 또는 장애 수당의 혜택을 받았다. 스웨덴 국민들은 상당히 많은 세금을 내지만,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가구도 직접적인 현금급여로 연간 4만 크로나(약 5백~6백만 원에 해당)에 가까운 복지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우수한 질의 보육, 교육, 간병 서비스를 큰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보편성은 전체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서재욱이 출간한 '금융위기 이후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정책의 변화' 논문(<유럽연구> 32권 4호, 2014년 12월)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스웨덴의 중위소득자의 생애 평균 소득에 대한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55.6%에 이른다. 중위소득의 0.5배, 1.5배 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도 각각 70.2%, 67.9%로 중산층이 많은 혜택을 받는다. 반면 영국 중위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37.9%로 매우 낮다. 중위소득의 0.5배, 1.5배 소득자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55.8%, 22.5%에 불과하다. 중위소득 0.5배 소득자의 소득 대체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1.0%)보다 낮지만, 중위소득자와 중위소득 1.5배 소득자의 소득 대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각각 57.9%, 48.4%)에 훨씬 낮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SDP)에 이어 온건당 주도 연정의 집권을 거치면서 영국과는 반대로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복지태도가 증가하였다. 보건의료와 노령연금과 아동가족 지원, 중등교육 뿐 아니라 공공부조, 고용정책에 대한 지지도 높아졌다. 스웨덴 사회학자 스바포르스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공공부조를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겠다는 의견은 25%에서 40%로, 고용정책을 위해 세금을 더 납부하겠다는 의견은 31%에서 54%로 증가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꾸준히 공급 측면의 실업 대책이 강화되고, 공공부문 내부의 경쟁이 강화되고, 사회서비스의 민영화가 확대되었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사회민주당은 2006년과 2010년 총선에서 연달아 패배하였지만, 중도우파 진영까지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로 선회하여 사실상 중산층이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가진 복지국가에 이념적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총선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온건당은 모두 증세와 복지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

보편적 복지가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복지태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선별적 복지는 전체 인구의 자산조사를 해야 하며, 복잡한 수급 조건 때문에 행정 비용도 많이 지출한다. 복지 사각지대, 부정수급, 복지의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선별적 복지는 직접세 납세자와 복지 수혜자가 다르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중산층의 불만이 누적된다. 중산층은 자신이 납부한 세금에 비해 제대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는 납세자와 수혜자를 통합하고, 기여를 통해 혜택을 받는다는 원칙을 통해 모든 국민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영국에서 보편적 복지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노령연금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복지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동시에 대중의 정치적 지지도 중시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복지제도는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도,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복지제도가 장기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바로 모든 국민에게 공짜로 현금을 나눠주는 '무상복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기본 원칙은 기여를 통한 혜택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스웨덴의 전체 고용률과 여성 고용률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동시에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은 가장 낮다. 이 점은 좋은 일자리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친화적 복지국가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이루는 동시에 기여를 통한 혜택이라는 원칙이 보편적 복지의 핵심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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