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 끝 내몰린 강정마을…15시간 울분 토했다

[언론네트워크] 20개월 만에 행정대집행 충돌…24명 연행, 4명 부상

1000여 명의 공권력이 제주도 서귀포시의 아름다운 해안마을 '일강정'을 강제 진압하자 장장 15시간 동안 마을주민들은 울분을 토했다. 곳곳에 상처만 남았고 9년째 이어진 해군기지 건설 갈등은 여전히 분노와 아픔으로 치달았다.

2013년 5월 이후 20개월 만에 강정마을은 다시 행정대집행과 마주했다. 맨손으로 맞선 주민들의 비명과 울음이 다시 마을을 뒤덮었고 해군과 경찰에 이어 이번에는 사설 용역까지 투입됐다.

국방부는 31일 오전 5시 전경대를 현장에 배치한 뒤 오전 7시 30분 김희석 소령이 대집행 통지서 고지와 함께 곧바로 행정대집행에 돌입했다.

강정마을회와 평화활동가들은 이날 새벽 천막 옆에 넓이 3미터, 높이 7.5미터의 철재 구조물을 설치하고 주변에 나무를 쌓아 철조망을 둘러 보호벽을 만드는 등 행정대집행에 대비했다.

오전 11시에는 천막 옆 난로 등 시설물을 철거하며 계속 시위대를 향했다. 이후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오후 1시10분 용역들은 기습적으로 철조망 제거 작업을 벌였다.


무차별적인 진압에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철조망이 처진 나무 방호벽에 기대 격렬히 저항했다. 용역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위대를 끌어내 폴리스 라인 밖으로 밀어냈다.

절단기를 든 용역들의 행정대집행이 강행되면서 평화활동가 1명의 이마가 찢어져 119구조대의 치료를 받았다. 주민과 종교인 2명도 철조망에 걸린 채 쓰러져 부상을 호소했다.

젊은 용역 한 명은 영화평론가 양윤모 감독를 향해 욕설과 함께 멱살을 잡아 옷을 잡아채거나 목을 치는 등 폭력까지 행사해 지켜보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현장에 함께한 문정현 신부는 "도민들이 무슨 희망을 볼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해군은 거짓말과 사기, 폭력의 행태를 보였다"며 "강정주민과 우리들이 힘이 있나.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통탄했다.

주민들이 바리케이트로 친 철조망을 들어낸 국방부는 오후 2시10분 텐트촌을 밀어내고 30분 후 메인 천막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천막에 기대 격렬히 저항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 31일 오후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농성천막을 철거하려하자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철조망에 올라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 31일 오후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농성천막을 철거하려는 경찰과 용역이 절단기를 동원해 철조망을 자르고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끌어내고 있다. ⓒ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 국방부가 행정대집행 8시간여 만인 31일 오후 3시 25분 천막과 병호벽을 모두 철거하고 수십여명의 강정주민 및 평화활동가들을 끌어 냈다. 마지막 시설물인 버스와 망루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경찰까지 투입돼 시위대를 몰아내자 해군은 펜스를 설치하며 공간을 계속 확보했다. 이어 오후 3시25분 천막을 완전 철거하고 100여명의 시위대를 망루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용역 한명이 강정마을 주민을 두 손으로 거세게 붙잡고 "XX새끼, 너 따라 나와"라며 욕설을 하면서 시위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반나절 넘게 망루를 지킨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평화로운 강정마을에 군관사 설치를 용납할 수 없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마을회장으로서 끝까지 맞서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시위대 밖으로 밀려난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망루로 재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은 2미터가 넘는 인간벽을 쌓아 시위대의 진입을 막았다.

그 시간 국방부와 경찰은 철재 빔으로 세워진 7미터 높이의 망루로 향했다. 구조물 밑에 세워진 소형버스 유리창을 망치로 깨고 들어가 다시 진압 작전을 펼쳤다.

▲ 31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망루를 철거하려하자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망루에 올라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 31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망루와 농성천막 철거 과정에서 망루에 올랐던 농성자가 망루 아래 매트로 떨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 31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해군 측이 행정대집행 영장을 보이며 농성중인 주민들에게 자진철수를 경고하다 강제연행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경찰은 버스 안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남성 5명과 여성 4명 등 9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하는 등 오후 7시까지 14명을 연행했다.

진압작전이 이어지자 조경철 강정마을회장과 고권일 부회장 등 강정주민과 평화활동가 11명이 망루에 올라 고공시위를 이어갔으나 오후 4시 58분쯤 평화활동가 1명이 안전매트로 추락했다.

오후 8시까지 망루에는 9명이 시위를 이어갔으나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현장을 찾으며 협상 분위기가 조성됐다. 강 주교는 거침없이 버스에 올라 망루를 향했다.

이어 경찰이 마련한 버스에 올라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수차례 전화통화도 했으나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어 강 주교는 버스 위에 다시 올랐다.

잠시 대화가 이어지자 망루에 있던 9명이 연이어 시위를 중단했다. 조경철 회장은 "주교님의 도움으로 연행된 인원 중 10명이 석방되고 우리도 조사만 받고 나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 31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용역들이 버스 유리창을 망치로 부숴 안에 있던 여성과 평화활동가들을 연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31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군 관사 공사장 입구. 국방부가 포클레인 등 중장비까지 동원해 농성천막에 이어 망루를 철거하려하자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망루에서 끝까지 저항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별취재반
망루에 있던 9명이 내려오자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모두 연행했다. 이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된 인원은 모두 24명이다. 그리고 망루는 곧바로 철거됐다.

강우일 주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행자에 대해 예외 없이 빨리 석방해야 극한 투쟁을 중지할 수 있다고 말했고, 경찰은 최대한 노력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 주교는 이어 "올라가 있는 사람도 힘들고 경찰도 힘들고 더 이상 끌다가는 극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상황을 빨리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해군은 2014년 10월14일부터 강정마을 9407㎡ 부지에 72세대 규모의 군관사 건립을 추진중이다. 주민들이 이에 반발해 10월25일부터 출입구를 막으면서 3개월째 공사가 중단됐다.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은 공사 강행을 위해 지금껏 5차례에 걸쳐 자진철거를 위한 계고장을 전달했으나 강정마을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강우일 주교의 설득으로 망루에 올랐던 조경철 강정마을 회장 등 9명이 17시간여만에 망루에서 내려오고 있다. ⓒ제주의소리
▲ 31일 밤 8시께 강정마을에 도착한 강우일 주교가 경찰 관계자들에게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행정대집행의 중단과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2월 1일 오전 4시 20분 현재 강정마을 해군기지 군 관사 앞 모든 시설물과 물건들이 철거돼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프레시안 교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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