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강제입원, 이대로 놔둘건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강제입원 비율 76%, 최대 40년까지 입원

'행동에 문제가 있는 자녀가 경제, 신체, 심리적인 위험에 처할 경우 부모가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도 자녀를 공공병원에 위탁할 수 있다'.

이는 지난달 국내에 개봉한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15년 '가상'의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다. 캐나다 정부는 위 내용을 담은 'S-14'라는 법을 만든다. 즉 질환이나 장애로 행동에 문제가 있는 자녀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 없이 바로, 부모가 자녀를 병원에 강제로 보낼 수 있게 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캐나다의 보건 정책이 어떤 상태이기에 돌란 감독이 이런 배경을 발명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돌란 감독이 영화에서 설정한 가상 배경이 한국에서는 현실이다.

캐나다에선 영화 속 가상이 한국에서 현실

돌란 감독이 가상한 'S-14' 법은 한국의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과 매우 닮은꼴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신질환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의사가 판단하고, 가족 등 보호의무자가 동의하면 정신질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제25조)도 가능하고, 또한 제26조는 자해,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경찰 등의 동의로 '응급입원'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법조항들은 판단하기에 따라 타당해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음의 수치들을 보자.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입원 환자 수는 2012년 8만569명인데, 이 가운데 자의 입원은 24.1%이고 나머지 75.9%는 비자의 입원, 즉 강제 입원에 해당한다.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통계치다. 프랑스의 강제입원율은 12.5%, 독일은 17.7% 이탈리아 12.1%, 영국 13.5% 등 소위 선진국의 비자의 입원비율은 10%대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자의 평균 입원기간도 우리나라가 월등히 길다. 독일 26.9일, 영국 52일, 프랑스 35.7일, 이탈리아 13.4일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평균 입원 기간이 247일이다.

정신요양시설 장기 입원자들을 모아 통계를 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재원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정신요양시설 59개소에 대한 장기 입원자 현황'을 보면, 장기입원자 가운데 타인에 의해 입원한 이들은 90%에 달했다. 가족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59.1%,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이 30.5%를 차지했다.

40년 이상 정신요양시설에 입원한 사람도 있어

또한 이 현황에 따르면 정신요양시설 59개소에 입원한 1만951명 가운데 무려 40년 이상 입원한 사람이 26명, 30~40년이 501명, 20~30년 1518명, 15년~20년 1139명으로 나타났다. 15년 이상 장기 입원해 있는 환자가 전체의 29%에 달한다. 즉 정신요양시설 장기 입원자는 10명 중 9명이 강제로 입원됐고, 10명 중 3명 정도는 15년 넘게 입원해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장애인계에서는 정신보건법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들은 비자의 입원이 가능하게 하는 법 조항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적 절차나 공공의 엄격한 판단 없이도 위험성을 이유로 가족 등 타인에 의해 강제입원이 가능하다보니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또한 강제입원 과정에서 저항하는 환자와 이송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고도 무시할 수 없고, 한 번 들어가면 장기 입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 등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인권침해 문제는 폭넓다. (한국정신장애연대 카미(KAMI)의 팟캐스트를 통해 당사자들의 경험과 주장에 대해 들을 수 있다. ☞ 바로 가기 : http://m.podbbang.com/ch/episode/8294?e=21514693) 이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그룹은 정신보건법 24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영화 <마미>, 과잉행동장애를 지닌 스티브 이야기

이런 한국의 현실 탓에 영화 <마미>의 이야기는 가공한 드라마를 넘어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영화에선 'ADHD증후군'으로 표현)가 있는 스티브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디안의 아들인 스티브는 분노 조절이 잘 안 되고 폭력성이 종종 나타나는 ADHD가 있는 10대다. 아빠가 죽은 뒤로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진 스티브는 엄마 디안과 떨어져 보호시설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보호시설에서 화재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마저도 퇴소 '당'하고, 문제아 중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한다.

스티브의 화재사고 직후 사고 수습차 보호시설에 불려간 디안에게 시설 직원은 S-14 법을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직원은 보호시설에서도 적응 못 하는 아이를 병원에라도 보내지 않으면 그 다음에 갈 곳은 감옥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디안은 그러한 "비관적인" 입장들에 맞서며,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스티브와 디안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다.

디안은 스티브에 대해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매력이 넘치지만, 위험하기도 한 아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티브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 이 때문에 엄마와 끝없이 갈등한다. 스티브의 분노가 조절되지 않을 때엔 엄마도 스티브를 피해 도망쳐야 한다. 스티브는 욕설과 폭력으로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위협하며, 일상을 한순간에 불안과 두려움 속에 뒤섞어버린다. 이것은 이 아이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문제적인 상태다. 이 때문에 스티브는 보호시설에 있었고, 병원에 갈 것을 제안받는다.

만약 당신의 아이라면?

▲ 영화 <마미> 포스터.
스티브가 당신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당신이 스티브라면?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의 시야가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어려운 문제에서 원인이 '스티브의 상태'뿐인가? 스티브같이 문제로 지목된 사람들만이 문제일까?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스티브라는 문제 인물 하나로만 귀결할 때 우리는 덫에 걸린다.

문제 인물에 대한 '치료'와 '보호'는 당사자 입장에서 '격리'와 '추방'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스티브는 보호와 치료라는 명목으로 일상의 삶에서 분리돼 갇혀 지내도록 명령받지만, 이에 저항한다. 더욱이 S-14나 한국의 정신보건법처럼 사회와의 분리 과정에 적절한 사회적 개입이 없다면 추방의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적절한 치료와 보호에 이어 '사회복귀'가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할 때, '치료'를 이유로 30년씩 정신의료기관에 갇히고 '보호'를 이유로 요양시설에서 평생을 지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는 우리나라가 잘 보여주고 있다.

강제입원 비율이 10%대인 나라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강제입원 비율이 75.9%로 높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마 한국 사회엔 강제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나 위험한 인물이 더 많다는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정책과 복지서비스의 방향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병원으로 요양시설로 내쫓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 공동체와 지역사회, 국가가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S-14'보다 만족할 만한 사회적인 지원 방식을 찾았으면 한다. 강제입원이 불가피한 이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치료와 더불어 사회복귀를 분명하게 목표로 하는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얼마 전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모여 '정신장애인 권리보장법' 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비스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정신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많은 예산이 투여되지만,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살 수 있게 지원하는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보건법에서 선언한 정신장애인의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는 '강제적 입원치료를 받을 의무'로 치환되어 인권 억압의 도구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정신장애인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이에 합당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권리지원법 제정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말한다(2014.12.1. 가톨릭대 이용표 교수).

강제입원으로 마침표를 찍는 <마미>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가슴이 턱 막혔다. 영화를 본 이들의 감정 상태는 대체로 나와 비슷했다. 영화에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키는 엄마가 나온다. 엄마는 아등바등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보려 했지만, 엄마가 손 뻗을 수 있는 공동체는 너무도 폭 좁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S-14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식을 병원에, 시설에 보내는 가족의 마음은 전쟁터다. 그러하기에 나는 우리가 더욱 S-14와 같은 길들여진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함께 살기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당신의 대답이다. 당신은 스티브와 같은 '행동에 문제가 있는' 사람과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함께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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