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공단 소탐대실…장관이 나서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개성공단 임금 5% 상한선 폐지 요구는 자충수"

북한이 지난 6일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의 연간 임금 상한선인 5%를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11월 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의 10여 개 조문을 개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남북 합의 위반"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성공단을 만드는 초기에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토대로 '개성공업지구법'을 만들어서 임금을 연간 5% 이상 올려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걸 법으로까지 규정하면서 10여 년 동안 지켜왔는데,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이 원칙을 훼손하려 한다는 평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임금 인상 폭 철폐 배경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외화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으로는 임기 3년 차로 접어든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노린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남측 정부가 유연한 자세로 나올 때에 대비해 북한이 고지를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일단 질러 놓고 보자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자신들이 제시한 안보다 임금 상승 폭이 작더라도 남측이 유연하게 나오면 조금이라도 임금 상승이 가능하고, 그렇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렇게 눈앞의 이익만 쫓아가서는 외국 자본의 투자를 통한 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이런 조치를 강행하면 공단에 진출해있는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을 몇 푼 더 올려줄 수는 있다"며 "하지만 더 이상 북한에 투자하려는 남한 기업이나 외국 기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소탐대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정부에 "'개성공단 인건비 문제는 절차와 방법을 존중하면서 협상하고 결정해야 한다, 일방적 조치는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 기업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 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장관이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전 사례를 참고해 북한을 설득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2000년대 초반, 당시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200만 킬로와트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공사를 했을 때의 일화를 꺼내 놓았다.

당시 북한은 100달러 수준의 임금을 600달러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100달러로 고용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동자들을 작업에 투입했다. 결국 북한 노동자들의 자리를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메우게 됐는데, 정 전 장관은 "개성공단 초기 임금 협상 때도 이 사례를 꺼내 들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시켰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지난 6일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 인상 상한선 연 5%를 철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개성공단의 인건비를 인상하겠다는 건데, 일단은 외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절실히 필요하니까 일단 개성공단이라도 짜보자는 심산이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개성공단 개발을 시작할 때 남북이 합의한 원칙을 위반하는 겁니다.

제가 통일부 책임을 맡아 일하고 있던 2003~2004년 초, 개성공단 개발 공사를 시작하면서 개성공단 운영에 관한 협상을 병행했습니다. 그때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토대로 자기들이 '개성공업지구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10여 년 전 북한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은 연간 5% 이상 올려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걸 법으로까지 규정했었지요. 우리 기업들의 개성공단 진출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임금을 북한 맘대로 올린다? 이번에 북한이 고쳤다고 하는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중 임금 인상률에 관한 것은 개성공단 개발과 운영의 원칙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제기를 하고 견제구를 날렸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년에 임기 3년차로 접어들면서 남북관계 긴장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려고 할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의 이번 조치는 이를 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5.24조치 해제를 큰 틀에서 맞바꾸는 식의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 정부가 유연한 자세로 나올 때에 대비해서 고지를 선점해 놓는다는 차원에서 일단 질러 놓고 보자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보다 임금 상승 폭이 다소 작더라도 그게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이렇게 나오게 된 이유가 공단에 진출한 기업 측에 있다는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더군요. 북측 입장에서는 개성공단 진출 남한 기업들이 상당한 이득을 거두고 있으면서도 엄살을 부리면서 북측에 세금을 안 내려고 뭘 숨기는 것 같다는 낌새가 보이니까 인건비를 후려치면 달러를 좀 더 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즉 북한은 "기업들이 더 많은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남쪽 당국과 합의하지 않고 밀어붙인다고 해도 이미 기업들이 개성에 기계설비 다 가지고 왔는데 기업 입장에서 별다른 수가 있겠나? 전단 문제로 남북대화도 못하고, 그래서 남한 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해치우자" 하는 배짱으로 밀어붙이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 중에는, 언제 또 출입 제한 조치가 나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다 재미를 보는 건 아니지만, 제법 재미를 보는 기업도 있답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는 '비 오는 날'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득을 비축해 놓고도 엄살을 부릴 수도 있지요. 그런데 기업이 이렇게 이득을 비축하는 데는 북한 책임이 큽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 문제를 가지고 한두 번만 애를 먹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개성공단에 언제 또 몇 달씩 출입 금지 조치가 내려져 막대한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 운영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으로서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하지요. 지난해처럼 출입이 막혀서 물건을 쌓아놓은 채 가지고 나오지도 못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업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금고에 뭐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북한은 기업들의 이런 행태가 자신들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법으로 뺏어볼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움직이는 셈이지요.

프레시안 : 북한이 이런 식으로 공단을 운영하면 추가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힘들지 않을까요?

정세현 : 물론 추가 투자 유치는 당연히 어려워질 겁니다. 북한이 이렇게 자기들 맘대로 임금 상승 상한선을 없애버리면 앞으로 누가 개성공단에 들어가려고 하겠습니까?

북한이 이런 조치를 강행하면 이미 개성공단에 들어가 있는 기업들은 그동안 투자해 놓는 것이 아까워서라도 일단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을 몇 푼 더 올려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확대는 어렵고 더 이상 북한에 투자하려는 남한 기업이나 외국 기업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겁니다.

개성공단은 기본적으로 남북 경제교류협력의 현장입니다만, 우리로서는 남북 경제협력 심화를 통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나가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개발을 하고 지원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개성공단을 소위 '달러 박스'로만 생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진출 기업이 무슨 인질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북한이 거기까지 밖에 생각을 못 한다면, 앞으로 북한은 자국의 경제발전에 절대 필요한 외국의 투자 유치를 못 하게 됩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외화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개성공단을 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성공해야 북한이 남한 이외의 외국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자기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 그런 능력은 갖추고 있는지를 다른 나라들로부터 예의 주시 당하고 있는 곳이 개성공단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이런 식의 일방적 조치를 취하면 다른 나라에서 북한에 투자하려고 하겠습니까? 북한이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개성공단을 이렇게 맘대로 하는 것은 하나만 일고 둘은 모르는 행동입니다. 자충수(自充手)입니다. 설사 임금을 올리고 싶다고 해도 남쪽과 합의해서 만들어야지, 일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제3국에게 "북한과 거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북한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원인

프레시안 : 북한이 외부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과 관련해 개혁개방을 추진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시각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저는 한중 수교전인 1989년부터 중국의 여러 곳을 보고 다녔습니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텐진(天津), 선양(瀋陽)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도 많이 가 봤습니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숨 가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았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이 북한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북한과 중국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거의 40년 정도 북한이 뒤쳐졌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북한은 1970년대 그대로 남아있지만 중국 경제는 그 이후로 가파른 상승을 해서, 미국 다음으로 부자나라가 됐습니다.

2년 전 8월 초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열흘 가까이 답사할 때 강의 남쪽인 북한과 북쪽인 중국을 보면서 북한은 언제 중국처럼 경제발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중국 푸졘(福建)성 샤먼(廈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북한과 중국의 발전격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80년대 초 중국의 대표적 개방도시였던 샤먼 같은 곳은 서울 못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발전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습니다. 중국의 경우 외국의 자본을 끌어다 쓰고, 자본주의 국가들과 거래하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원칙과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노하우를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것을 잘 모르고, 성공사례를 배울 생각도 안 하면서 눈앞의 떡만 보고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나진-선봉 자유무역·경제지대' 개발을 위해서 외국 투자를 유치할 때, 북한은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은 안 하고 자기네 요구만 들이대대가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번 건도 투자자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자기네 입장만 밀어붙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2003년, 2004년 개성공단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인건비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북측 사람들이 첫 협상에서 북측 노동자 1인당 월 300달러 정도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통일부 책임을 맡고 있던 때라서 협상단의 보고를 받고 우리 측 협상 대표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개성공단에 들어갈 기업들의 사정에 대해 북한 대표에게 정확히 알려주라"고 말입니다.

당시 개성공단에 들어갈 만한 기업들은 국내 인건비 상승의 압박으로 인해 중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로라도 나가 볼까하는 중소기업들이었습니다. 국내 인건비가 달러로 환산했을 때 이미 1000~1500달러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인건비가 100달러 전후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중국의 연안도시인 칭다오, 옌타이 등으로 기업을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중국도 경제력이 올라가면서 국민소득도 올라가니까 인건비 상승 요인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중국보다 적은 인건비를 주고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로 옮겨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북한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측 협상대표에게 북한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했습니다. "개성공단을 성공시키고 싶으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로 나가있는 기업들이 개성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할 생각을 해라". 북한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회주의 국가 중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해외 연수단을 보내기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300달러의 임금을 요구하길래 저는 우리 측 협상 대표에게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있는 중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돌아와서 이야기하자"고 북측에 제안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원시자본이 없는 저개발 국가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경쟁력인데, 북한이 이 원리를 알고 300달러를 달라고 하는 것인지 물어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북 권고가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북한이 임금을 65달러에서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협상장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국의 연안 도시들은 이미 임금이 130~150달러 정도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절반 정도의 임금이라면 우리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5달러에 합의하려고 했는데 북한이 얼마 후 다시 50달러부터 시작하자고 자진해서 나왔습니다. 그때 "아, 이 사람들이 말을 하면 알아듣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건비 문제가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된 남북 협의 사항 중 가장 난제였는데 이 문제가 풀리니까 그다음부터는 특별한 문제없이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개성공단이 이렇게 북한의 일방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면 북한 경제에 주는 영향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북한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요즘 북한 전역에 13~14개나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면서 외국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들어갔다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 북한이 이런 식으로 기업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주게 되면 북한은 자국 경제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외부에서 북한으로 투자가 들어오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말로는 북한 경제가 좀 나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평양 주변 얘기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외부로부터 투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북한은 경제를 더 이상 발전시키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북한이 가끔 '내부 예비'라는 말을 쓰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내부예비까지도 총동원하자고 할 때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숨어있는 자재나 자원, 자금을 찾아내서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것인데, 북한은 이제 이런 내부예비까지 몽땅 다 써버린 상황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핵과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이른바 '병진노선'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외부 지원이나 투자 없이 북한 내부 자원이나 재화만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입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투자가 들어가기는커녕,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도 해제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습니까? 병진노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북한이 경제건설을 제대로 하려면 외부 투자를 끌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얘기했듯이 북한 내부 자원은 이미 고갈돼버렸습니다.

물론 북한이 우리보다 지하자원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외국 자본과 기술이 들어와야 합니다. 남한이 아닌 제3국도 북한에 투자해서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해서든지 매력적으로 만들어서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외국 기업도 개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할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맘대로 인건비 규정 고쳐버리면 북한에 투자할 제3국은 없어지는 겁니다.

남북 화해협력에 도움 안 된다는 사실, 북에 명확히 전달해야

프레시안 : 어쨌든 북한이 일방적으로 규정을 바꿔버렸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정세현 : 정부가 좀 격이 높은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개성공단에 진출해 잇는 우리 기업들을 응원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무게를 실어서 북한에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대변인보다는 장관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띄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남북관계 잘해보려고 하는데 북한의 이런 조치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개성공단 인건비 문제는 절차와 방법을 존중하면서 협상하고 결정해야 한다, 일방적 조치는 인정하지 못한다, 이런 걸로 우리 기업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 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우리 기업들을 응원하고, 장차 임금 문제 협상에서 북한에 고지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이전의 사례를 참고해서 현명하게 판단하라는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북측에 전달할 필요도 있습니다. 개성공단 진출 기업들도 과거 사례를 적시할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2000년대 초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200만 킬로와트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공사를 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동취재단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1997년부터 우리가 공사비의 70%를 대주는 형식으로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케도(KEDO,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처음에는 100명 미만의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다가 점점 늘어나서 나중에는 300~400명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부 밖에 잠시 있을 때라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2000년인가 2001년인가에 북한이 갑자기 1인당 월 100달러였던 인건비를 600달러로 올려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근거는 "남쪽에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200~300만 원, 즉 2000~3000달러를 받는다는데, 북쪽 노동자들이 아무리 일을 못해도 남쪽 사람들의 3분의 1도 못한다는 거냐? 같은 민족끼리 이럴 수 있느냐?" 라는 논리였습니다.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노동의 질, 숙련도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당이 10만 원인 경우도 있고 5만 원인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워낙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한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인 600달러로 임금을 올려달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좀 강하게 나갔습니다. 100달러로 구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 얼마든지 있고, 당신들이 600달러를 고집하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우즈베키스탄에서 100달러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북한이 아쉬웠나 봅니다.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100달러 줘도 일을 할 테니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케도 사업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까지 함께 벌이던 사업이다 보니 4자의 합의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600달러로 올려달라고 했다가 100달러라도 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메워버렸습니다.

개성공단 조성 초창기 때 1인당 300달러를 내라고 하는 북한에게 우리가 이 이야기도 했습니다. 600달러 달라고 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치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도 그러려고 하는 것이냐고. 이런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에 협상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측면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가 내년에 남북관계를 좀 풀어보려고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는데요. 북한이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면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당연합니다. 통일부가 내년부터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자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려는 것 같은데, 북한의 이런 조치는 통일부의 이런 정책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정부 내 대북 강경론자나 부처들이 통일부의 그런 정책을 반대하도록 힘을 실을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북한사람들과 협상할 때 썼던 논리가 있었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쌀도 가고 비료도 가는데 당신들이 자꾸 군사적으로 긴장된 상황을 만들면 남쪽에서 남북 화해협력 추진하는 사람들 정말 어려워 진다. 당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운 문제를 좀 풀어주고 싶어도 우리 같은 사람이 나설 수 없게 만드는 거다. 두 수, 세 수를 내다보고 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눈앞의 이익만 보고 그거 챙기려고 이렇게 남북 간 장애를 조성하면 나도 화해협력 정책 추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이번 조치로 인해 이미 개성공단에 진출해있는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남북 접촉과 대화를 통해 북한을 잘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관계 일선의 실무자들은 북한에게 이전 사례를 이야기해가면서 충분히 잘 설득하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대북정책의 결정권을 가진 권력자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생각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겁니다.

다만 현재 남측 정부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임금 협상 문제를 가지고 실무접촉을 하자고 제안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5.24조치 해제를 맞교환 하는 식으로 큰 판부터 새로 짠다고 하니까, 그런 점에서 일의 순서상 지금 개성공단 임금문제 협상을 하지고 제안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원칙적인 이야기부터 해놓고,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재가동 과정에서 합의한 '남북 공동위원회'에서 인건비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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