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확대가 답이다

[복지국가SOCIETY] 보편 복지·증세 요구하는 정당도 목소리 내야

지난 11월 21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비례대표 확대 운동을 지금까지의 학술적인 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시민정치 운동으로 시작하는 출정식이 열렸다. 함세웅 신부와 최병모 변호사 등이 공동대표인 '비례대표 포럼'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을 모아 정치개혁 시민운동으로 출범했다. 정의당과 녹색당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치인들, 언론인, 종교인, 학자 등 다양한 분들이 함께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청년과 노인, 장애인들도 비례대표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개혁을 위해 매달 기부금을 내고, 자신들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비례대표 확대하여 정치 개혁 완성하자, 비례대표 확대하여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구호를 통해 정치 개혁의 시작과 복지국가의 완성이 모두 '비례대표 확대'라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현재 예견되는 정치 개혁의 우울한 전망

2016년 4월 총선까지 상당기간 선거가 없다. 이때가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정치제도 개혁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이미 과반수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개헌국회의원 모임도 출범하였고,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집권 후반기의 권력 누수를 우려하는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개헌 논의를 제기하고 있고, 제1야당도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도 현재 3 : 1로 되어 있는 선거구의 인구 비율이 위헌이라고 판정하고, 2 : 1 이하로 줄이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조정해야 하는 선거구가 62개나 되어, 전체 246개 선거구 중에서 약 25%가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결국, 정치 개혁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정치 개혁의 논의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내부적으로 결론이 상당 부분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즉, 개헌의 내용이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제로의 전환이나 5년 단임제인 현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내용, 그리고 외교와 국방 등을 담당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담당하는 책임총리제도로 나누는 2원집정부제로의 개헌 등 권력 분산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의 논의는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현재 정치권이 보여주는 무능과 무책임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 국민의 삶에도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조정해야 하는 바, 선거구 획정의 실무를 선관위에 주든지, 국회 외부의 별도 기구에 위임하든지에 상관없이 기존의 선거구를 이리저리 쪼개고 붙이는 수준에서 논의가 끝날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의 삶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도 유명 정치인들의 재선 보장만 공고히 해줄 뿐이고, 심각한 지역주의 정당의 문제가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농어촌 지역의 의석수 감소를 염려하는 의원들에 의해 기존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축소하고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쪽으로 개편하자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비례대표 확대가 진정한 새 정치

현재의 선거제도가 가진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답답한 정치 현실의 상당 부분은 선거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우선, 기존의 소선거구제도는 지역에서 몇 %를 득표했던지와 상관없이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면서 전체 투표의 절반 정도는 항상 사표(死票)가 된다는 것이 문제다. 현행 제도에서는 19%를 얻어서 당선되든, 49%를 얻어서 낙선되든, 한 표라도 더 얻어서 당선되는 것이 중요해진다. 당선자가 아닌 후보에게 던진 표는 모두 사장되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정책과 생각이 달라도 거대 양당의 한 부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개별 정치인이나 특정 계파가 가진 정책과 이념은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되니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의 결과는 항상 51 : 49 같은 적은 차이로 결정되고, 떨어진 후보나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당선자에 대해 반발할 수밖에 없고, 당선된 정당이나 후보도 힘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정치인들은 정책의 내용이나 방향이 아니라, 뉴스에 자신의 투쟁 모습이 보도되는 데 더 주목할 수밖에 없고, 양대 정당도 소모적인 극한 대립을 늘 재연하게 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도의 다른 문제점은, 지역의 경조사를 열심히 쫓아다녔던 후보자들은 당선되고, 정책을 준비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했던 전문성 있는 후보들은 당선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또 소선거구 제도에서는 당선되고 나서도 국가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 지역의 이익에 우선하여 법안이나 예산을 심의하게 된다. 물론 지역 이익의 총합이 국가의 나아갈 방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역의 이익이 국가 전체의 이익과 반드시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도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의 이익에 우선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작은 나라가 아니다.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를 넘고,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20/50 클럽에 속하고, 수출 규모는 이미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지 오래인 큰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인이라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데, 현재 지역구 의원들이 그런 준비가 된 분들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일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는다고 정치권을 비난하고 중요한 정책 현안에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하면서도, 그런 의원들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방치하면 해마다 그런 비난을 되풀이하는 것 이외에 우리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를 앞당기는 비례대표 정치 개혁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복지국가를 외치며 구체적인 복지국가 공약을 내걸었으나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축소 또는 폐기하고 있고, 낙선한 제1야당은 복지국가 공약을 외면하고 여당의 공약 폐기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지난 대선에서 표를 주었던 국민은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나 되고, 내수가 침체되어 경제가 어려워지는데도,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늘 들어오던 이야기이다. 복지국가 공약의 실천은커녕 신자유주의 '줄․푸․세' 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민생은 더 불안해지고, 민심이 흉흉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구조적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땜질식 처방은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제도 자체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결국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정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보장하고, 다양해진 사회의 구성과 다원화된 요구에 맞도록 각각의 국민들이 자신의 대표를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비례대표를 약 100명의 규모로 확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의 대표만 국민의 대표인 것은 아니다. 직능과 계급 및 계층의 대표도 국민의 대표이다. 

적어도 선거를 통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복지국가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해 낼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증세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정당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워진 청년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국민 안전을 위한 예산을 요구하고 제대로 된 규제를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요구할 수 있는 정치인도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대안적 에너지 개발에 국가 재원을 투입하면서 30년이나 50년의 기간 내에 원전을 축소하거나 폐쇄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가진 정당도 국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것은 새 정치가 아니다.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세비가 아까우면 현재 세비의 총액 내에서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가 되려면 복지국가를 추진하려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출현해야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국회 다수당이 어느 당이 되든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복지국가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필수적이다. 정치의 낙후성과 후진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중산층과 서민들이다. 역으로, 정치를 바꾸면 가장 큰 득을 보는 사람이 바로 대다수 국민이다. 

이제 정치 개혁을 위해 보통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현재의 정치제도에서 득을 보고 있는 기존의 정치인들이나 양대 정당은 이런 선거 및 정치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반대하고 지연시키려 들 것이다. 이런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깨고 나아가는 길은 국민적 요구로 '비례대표 확대'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례대표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개혁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정치개혁의 힘을 모아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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