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아까워 해고?…경비원들의 추운 겨울

내년 '최저임금 100% 적용' 앞두고 대량해고 초읽기

"월급이 오르면 뭐하나요. 당장 잘리는 게 문제인데." (아파트 경비원 김인준 씨)

직장인이라면 임금 인상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월급이 오르는 게 두려운 사람들도 있다. 경비 노동자들이다.

최근 입주민의 지속적인 모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고(故) 이만수(53) 씨 사건을 계기로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경비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부터 걱정하는 형편이다.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100% 적용'을 한 달여 앞두고 경비원들의 대량해고 사태가 임박한 탓이다.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경비 노동자들은 지난 8월 현장 소장으로부터 5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보통 1년마다 계약서를 새로 써왔는데, 이번엔 계약 기간이 8월부터 12월 31일까지 5개월로 돼 있었다. 이 '이상한' 계약서를 놓고, 경비 노동자들은 내년 최저임금 적용을 앞두고 임금 인상을 회피하기 위한 '해고의 포석'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2012년에도 대량 해고…경비원 무급 휴게시간 늘리는 '꼼수'도

이런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지난 2011년까지 최저임금의 80%가 적용되던 경비 노동자들은 2012년부터 월급이 최저임금의 90%로 올랐다.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100% 적용' 시행을 앞두고 경비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3년 전처럼 임금 인상으로 인한 대량 해고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그러자 곳곳에서 대량 해고 사태가 바생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추산으로도 전체 아파트 경비원 중 최소 10% 이상이 해고됐다. 경비원 임금 상승에 따른 관리비 인상을 우려해, 곳곳에서 인원 감축이 이뤄진 것이다.

인원 감축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선, 경비원들의 무급 휴게시간을 늘렸다. 아파트 관리비 인상을 막기 위한 입주자대표회의의 '꼼수'였다.

그렇다고 경비원들이 그 시간에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휴게 시간임에도 순찰과 건물 내 소등은 물론 법적으로 경비 노동자들의 업무가 아닌 택배 업무와 주차 관리도 일상적으로 담당해야 했다. 노원구의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는 "최저임금 90%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취침하라고 하는데, 그 시간에 30분 씩 단지 내 순찰을 들고 전 층의 복도 전등을 꺼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우려는 현실로 임박하고 있다. 최근 입주민의 모욕으로 분신 자살한 고(故) 이만수 씨가 일하던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의 경우, 지난 20일 현재 일하고 있는 경비 노동자 전원에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냈다. 통보장에는 오는 12월 31일부로 해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 기사 : 압구정 신현대아파트,경비원 전원 해고)

해고의 표면적인 이유는 현재 업체와의 계약이 12월 31일로 종료되는 만큼 새로운 업체로 변경하겠다는 것이지만, 이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용역업체는 15년 넘게 이 아파트와 계약을 이어왔다. 이만수 씨의 분신으로 인한 '아파트 명예 훼손'과 함께 최저임금 적용이 해고 통보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아파트에서 8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인준 씨는 "업체 변경을 통한 해고를 막아달라고 16일부터 경비원들이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조차도 하지 못하게 해 중단됐다"면서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 하나.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하게만 해 달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전국적으로 25만 명에 이르는 경비 노동자들 중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대량 해고 대상자가 4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급 오르는 게 두려운 사람들…"커피 한 잔 값이면 경비원 일자리 지킬 수 있어"

논란이 커지자 정부도 대책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24일 60세가 넘는 경비원을 채용하는 사업주에게 '고령자 고용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2017년까지 3년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인한 대량 해고 사태가 우려되는 만큼, 한시적으로 도입된 이 제도를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실한 대책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이 제도를 연장한다 해도 60세 이상 아파트 경비원을 고용할 경우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보조금은 월 6만 원 정도다. 고령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최대 지원 인원 역시 전체의 6%인 3194명에 불과하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경비 및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 및 근로조건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내년 1/4분기 중 경비업체들에 대한 집중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해고가 끝난 마당에 점검에 나서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헌법에 보장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한다는 것은 법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면서 "3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고, 이번에도 해고 사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내년 1/4분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예상되는 대량 해고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윤 변호사는 "주택법 시행령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고용관계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 고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위법한 만큼 위법 사항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노총과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은 25일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대책 마련 및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를 발족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에서 열린 발족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해고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한편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부담이면 우리 아버지들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며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식 전환을 호소했다. 아파트 경비 등의 고용 문제는 입주민들의 찬반 투표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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