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이 남긴 것들

[한반도 브리핑] 신해철이 무능한 야당에 준 메시지는

마왕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났다. 1988년부터 26년간 신해철은 우리들의 아픔, 기쁨,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였다. 한반도의 정세를 분석하고 논하는 이 지면에서 어느 한 뮤지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신해철이 한 번도 한국 정치 그리고 남북문제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26년간의 족적과 그가 꿈꾸던 이상을 살펴보면, 무능력의 대명사와 같이 되어 버린 야당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아직도 반북(反北) 대결의식에 고취되어 흡수통일을 기대하는 위정자들과 보수세력에게는 진정한 통일의 상(狀)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일개 가수의 삶과 그가 그리는 이상에서 무슨 희망을 찾아, 그것도 정치에서 또 통일의 길을 찾느냐고? 범상치 만은 않았던 그의 족적을 잠시 뒤돌아보자.

▲ 고(故) 신해철 ⓒKCA 엔터테인먼트

신해철은 1988년 '무한궤도'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MBC <대학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타면서 가수로서 데뷔하게 된다. 원래 신해철은 대학교 1학년 때 MBC <강변가요제>에 나가서 예선을 통과했지만 결선에 가서 떨어지고 말았다. 가수가 되어 음반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신해철에게는 큰 충격이며 실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해철은 낙담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어떤 곡이 대상을 받는지 파악되었고 필승카드를 준비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고 계기였다고 한다.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강변가요제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가요제에서 성공하는 곡들에 대해 연구·분석하고 "8비트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간다" 등 8가지 성공비결을 파악, 이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어 1988년 대학가요제에 나가 그의 말대로 대상을 받았다. 즉 신해철은 '기획'을 통해 대상을 받게 된 것이며, 이 기획은 현실을 철저히 그리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을 배경으로 이루어 진 것이었다.

현재 야당은 야당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정치적 환경을 살리지 못하고 2008년 대선부터 번번이 선거에서 참패를 하고 있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전문가들은 야당의 참패원인에 대해 유권자들의 마음에 다가오는 유세를 하지 못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마음에 다가오는 유세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읽고 받아 공약으로 함축적이고 강력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유세를 전략적으로 기획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기획이 부족하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러한 조직적인 기획 없이 여당이 많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어부지리로 표를 얻겠다는 바램만으로 선거에 임했고, 이러한 안일함과 준비 부족이 야당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선거를 치러도 번번이 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신해철은 마니아 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어가지만 (물론 신해철 사망 원인이 논란이 되는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신해철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포탈 사이트의 많은 영역을 점령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의 원조 격인 신해철이기 때문에 팬이 많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데뷔한 지 26년째인 중년의 신해철에게 아이돌시절보다 오히려 더 많은 마니아 팬들이 있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신해철은 1991년 아이돌 가수의 역할을 그만두고 (즉 솔로 가수로서 자신을 청산하고) 넥스트 (N.EX.T)라는 밴드를 조직한다. 그의 이상은 아이돌가수가 아니라 밴드로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넥스트를 조직하고 팬들과의 교감 상호작용을 통해 넥스트를 이끌어 갔던 과정이다. 당시 신해철은 하이텔과 같은 PC 통신 통해 대중들 그리고 팬들과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대화는 ‘방가방가’의 수준을 넘어 음악에 대한 폭넓고 깊은 토론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신해철은 이와 같은 만남과 토론을 통해 대중들이 어떤 음악을 듣기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리고 세밀하게 파악하였다고 한다.

신해철이 넥스트에서 기타리스트를 뽑는다고 했을 때 PC 통신 동우회 회원들은 "블루지하고 소울있는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외국 기타리스트에 비교하여 우리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으니, 레코딩에서도 (소위 말해) 삣사리가 나는 것은 듣기 싫다. 빨리 치고 정확히 치는, 한국 사람이 이 정도는 된다"는 정도의 기타리스트를 요구한다고 하여 신해철은 여기에 준해 기타리스트 (이 기준에 합당한 기타리스트는 한국에서는 김세황밖에 없었다고 한다)를 선발했다고 한다.

N.EX.T는 'New Experiment Team'의 약자였는데 밴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넥스트는 당시 대중가요에서 듣기 어려웠고 누구도 잘 하지 않았던 메탈과 록발라드,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실험적인 밴드였다. 넥스트 2집은 비주류음악이 방송홍보가 전혀 없는 가운데서도 50만 장 이상이라는, 당시로써는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우는데 여기에 대해 신해철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PC 통신을 통해 대중들의 요구를 읽었고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판매는 사전에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대중들과의 끊임없고 격이 없는 대화를 통해 대중들의 요구를 읽고 끌어냈으며, 이러한 소통은 대중을 단순한 팬에서 마니아 팬으로 발전시켰다.

신해철은 2001년부터 MBC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 (이하 <고스>)이라는 방송을 시작하는데 <고스>는 외국의 유명 밴드 및 국내의 인디 밴드를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을 초보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신해철은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거리낌 없이, 때로는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선명히 밝히면서, 그 어디에도 들을 수 없는 해외 밴드에 얽힌 이야기와 이에 대한 해설 또 어지간해서는 들을 수 없는 국내의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소개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고스>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자 팬 서비스 프로그램이었다.

<고스>를 통해 신해철은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는데 이 별명은 그의 입지와 인기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고스>를 통해 신해철의 마니아 팬의 저변은 엄청나게 확대 되었다. <고스> 사이트 회원은 한때 20만 명이 넘었고 회원수가 8만 명 이었을 때 유료회원이 90%가 넘었다고 한다.

신해철은 기획을 통해 대학가요제의 대상을 따낼 만큼 현실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즉 대중의 요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해철은 대중 그리고 팬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대중들에게 숨겨진 또는 표현되지 않은 (아니면 표현할 줄 모르는) 잠재된 요구가 있음을 감지하고 이것을 끌어낼 자유로운 공간인 <고스>를 만들고 진행했던 것이다.

<고스>를 통해 신해철이 마왕이라는 다소 신비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신해철 역시 <고스>를 통해 그의 마니아 팬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고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고스>를 11년간 진행한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늘 열린 마음을 갖고 폭넓은 학습과 연구 그리고 대중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중의 요구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여당의 실수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안일함에 젖어있고, 대중의 숨은 또는 잠재된 요구를 파악하지 못하고 표면에 나타난 대중의 요구를 작대 없이 쫒아가는 ‘대중 추수주의’적 모습을 보이며 여당의 제2중대로 전락되어 버린 작금의 야당은 위와 같은 신해철의 <고스> 활동 등을 통한 끊임없는 대중들과의 소통 그리고 그들의 조직화에서 교훈을 찾고 희망을 얻어야 할 것이다.
신해철은 2008년 밴드 넥스트(N.EX.T) 6집 <666 트릴로지 파트1>(Trilogy Part I) 이후 6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고 그의 말에 의하면 ‘어쩌다 보니 이러다 보니’그냥 6년이 갔다고 하는데 신해철은 공인으로서의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안 이제 중년에 접어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또 한편으로는 청년이 아니라 장년으로서 자신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하여 고민했던 것 같다.

신해철은 2014년 6년여 만에 다시 솔로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1>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다시 출발하는 신해철은 밴드 넥스트를 새롭게 재건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언제든 멤버가 바뀔 수 있고 여러 장르와 다양한 포메이션이 존재하는 구성이었다.

신해철은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하나의 축구팀으로 보면 그 안에 다양한 포메이션이 존재하는데 포메이션 K가 국악, 포메이션 M이 메탈,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릴 계획"이라며 "넥스트라는 이름이 음악집단으로 인정받았으니, 넥스트 유나이티드로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펼쳐볼 생각이다"라고 소개했다. 즉 넥스트 유나이티드는 록 밴드인 넥스트를 플랫폼 (platform)으로 국악그룹, 헤비메탈그룹 등 장르가 다른 음악그룹과 결합하여 음악을 하겠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융합화 되어가고 있는 현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름에서도 나와 있지만, 넥스트 유나이티드에서의 융합은 자신의 록 밴드 넥스트를 기본 플랫폼으로한 융합이다. 다시 이야기하여 자신의 정체성 (identity)마저 버리지 않고 또는 상대방의 정체성을 짓밟으면서 융합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상대방과 어울리고 통할 수 있는 공통 요소를 찾아내어 자신 그리고 융합하는 상대도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흑백논리에 빠져 북한과의 대결의식에 빠져 있는 위정자들과 보수세력에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통일은 남 그리고 북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남과 북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그것부터 융합시키며 모두 더 풍부해지고 이러한 공유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로 융화되어 가는 과정이지, 상대방과 반목하고 대결 구도로 가서 상대방의 붕괴를 유도하여 (또는 붕괴시켜)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신해철은 최근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 시점에서부터인지 팬들이 저를 원망하더라고요. 네가 선동 질을 해서 고단한 삶을 시작하고 했는데 이게 뭐냐? 그리고 너 역시 뭐 그렇게 행복한 것같지 않던데, 너는 뭘 알고 그런 거냐? 제가 이들에게 해줄 다음번에 이야기들이 있지 않다면 내가 콩나물 대가리로 이루어진 음악만을 들려주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냥 다른 음악만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 내가 노랫말을 만들고 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거라면 내가 이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지 이제 6년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은 별다른 것이 아니고 아프지나 말라고 그거더라고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힌트역시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왔었는데(...)

우리 모두는 소명이니 뭔가 해서 최대한의 스펙을 뽑아내고 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것을 요구받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그런 땅에서 살자나요. 한국이란 곳이. 그런데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최대화를 요구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죠. 행복의 최대화. 한껏 양만큼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니가 어떤 사회적인 사이즈에서서 최대화되기를 아빠는 원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이야기해 줄 부모 그리고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해줄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네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하든 한 사람의 개인으로 아니면 한명의 아빠로 괜찮은 사람이라면 너는 늘 내 친구야!라고 이야기 해줄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정말 모자란 이야기는 무엇이 정의냐? 무엇이 옳은 것이냐? 이런 것들이 늘 중요하긴 한데, 너는 잘못되지 않았어(...) 이렇게 편들어 주는 사람 그러니까 질책하는 사람이 아니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러한 베이스하에 그 다음에 우리가 무었을 갖고 싸울 것이고 무엇을 갖고 좀 더 놀아 볼 것이고 이 모든 것은 다 이거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에요"

그의 성찰은 예전의 그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슴에 파고들고 마음을 울린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떠나기 전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그의 꿈과 이상은 우리 가슴속에 다시 희망의 씨앗이 되어 남아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씨앗은 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마왕 신해철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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